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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운 Sep 06. 2021

망운산

마지막 산행

“올해 몇 살이냐?”

“오십O 살입니다.”

“뭐라? 무슨 나이를 그렇게 먹었냐?”

아버지는 아들 나이에 놀라고 아들은 아버지 반문에 놀랐다.

 귀향한 그해 봄, 망운산 등산 채비를 마치고 서재에 계신 아버님에게 인사차 들렸다. 말씀 끝에 같이 가자며 선뜻 일어나시게 아닌가. 저 연세에 무리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예전에도 자주 다녀왔던 산이라 모시고 가기로 했다.   


 망운산은 해발 786m로 남해의 진산이다. 등산 들머리는 여러 갈래가 있지만 아버님에게 익숙한 화방사 뒤로해서 오르기 시작했다. 보폭을 줄여서 보조를 맞추고 자주 쉬어가며 올랐다. 가다가 너무 힘들어하시면 바로 회귀하는 것으로 나름 복안을 갖고 있었다.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외로 잘 등반하셔서 ‘역시 우리 아버님이셔!’하고 내심 뿌듯했다. 새벽마다 학교 운동장을 조깅한 결과물로 받아들였다.    


 9부 능선 망운사 인근에 당도하니, 예전처럼 두 갈래 길이 나왔다. 망운사 경내를 통과해 뒤로 오르는 코스와 곧바로 올라 임도를 만나고 산철쭉 군락지를 관통하며 오르는 코스다. 그중에 경사도는 비슷하나 산철쭉 길은 나무 데크, 통나무 계단 그리고 주위 경관들이 좋아 후자를 택했다.


 아직 피지 않은 군락지를 지나 정상이 마주 보이는 곳까지 올랐다. 앞서 가던 등산객들이 길옆으로 비켜준다. 오육십 대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할아버지가?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올해 여든둘입니다.”

“네에?”

 아차! 뭔가 뇌리를 스쳤다. 누가 봐도 무리한 산행임에도 내가 너무 낙관한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밀려들었다. 어쩌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천천히 앞섰다.   

 

 망운산 정상에 도착했다. 가없는 창공, 어디론가 길 떠나는 하얀 구름들. 파안대소하시는 아버님 모습에 수고로움을 넘어 보람을 느꼈다. 팔십 초반 아버님과 언제 이곳에 또 오겠는가!

 멀리서 우리 부자를 반기노니, 지리산 천왕봉부터 사천 앞바다, 삼천포 시가지, 고흥반도, 여수, 광양 산단, 한려수도 노량까지 도열해 있다. 망운산은 지리산을 빼닮은 듯하다. 천왕봉 바라보기 하며 아침마다 노량 앞바다 들여다봐서 그럴까.


 망운(望雲)이란 구름을 바라본다는 것이겠지만, 예로부터 군주를 흠모하거나 고향 부모를 그리워하는 뜻으로도 쓰인 모양이다.


 남해도에는 과거 유배객들이 많았다. 그중에 조선 후기 문신인 약천 남구만도 있다. 위리안치로 노도 섬에 갇힌 서포 김만중에 비해, 아들과 금산도 오르고 망운산까지 왔던 모양이다. 이때가 1679년(숙종 5년, 51세)의 일이다. 약천집(藥泉集/第二卷/詩)에 그 기록을 남겼다.    


《망운산에 오르다》     


덩굴과 돌을 잡아가며 가파른 산에 오르니

산이 뜻밖에 이 이름과 같아 감동하네.

백성들이 요 임금을 그리워한 뜻이 아니라면

적인걸이 부모를 사모한 정이 아니겠는가.

흰 구름 외로이 날아가니 고향이 아득하고

...

(登望雲山 - 捫蘿攀石上崢嶸 爲感玆山偶此名 莫是堯民懷帝意 將非狄子戀親情 孤飛白遠迷鄕井...)

   

 하산은 계단 길을 피해 망운사 뒷길로 잡았다. 가까이 붙어서 천천히 내려가다 보니 시간은 꽤 걸렸으나 별 탈 없이 망운사가 보이는 곳까지 왔다.

 흙길을 지나 크고 작은 돌들이 많은 구간을 지나는데 갑자기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것 같았다. 손 쓸 틈이 없었다. 다행히 나무 잔가지를 붙잡아 어깨와 머리는 바닥에 부딪치지 않았다.

 간담이 서늘했다. 살펴보니 다친 곳은 없어 보였지만 앞으로가 문제였다. 한참을 더 내려가야 하는데 걱정이 됐다. 망운사에서 쉬었다가 다시 하산 길에 들었다.   

 

 무사히 원점인 화방사 주차장과 불과 5~600m까지 왔다. 흙길이지만 경사가 급하고 빗물에 토사가 쓸려 얕은 물고랑이 많은 구간이다. 외마디 소리 동시에 미끄러지더니 흙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는 것이다.     

 주저앉아 등을 내밀었다. 이제는 내 등에 업히시라고. 아버님은 한사코 반대하시며 끝까지 자력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뒤돌아보니 잔뜩 일그러진 표정에 뭐라 중얼거리며 자책하고 계셨다. 자식 앞에 나약한 모습을 보여서, 아니면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이토록 시원찮아서..


 지켜보는 아들 입장에서 너무 속이 쓰렸다. 이제는 자식 어깨에 기댈 수 있는 연세고 흠결도 아닌데 아직 당신의 자존심이 놓아주지 않는 모양이다.  

  

 내일모레 이 주기가 다가온다. 큰방 장롱 안에 보관된 영정을 꺼낼 것인데, 올해는 어떤 모습일까. 기제사에 올릴 축문을 다시 다듬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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