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밖은 공기부터 달랐다. 나는 신선한 바깥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이제 아빠 호랑이의 포효 소리, 엄마 호랑이의 질책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큰오빠 호랑이의 감시하는 눈빛도, 작은오빠 호랑이의 불만 어린 얼굴도 나와 상관없었다.
‘나는 운이 좋은 토끼야.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거야.’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호랑이처럼 어슬렁거리며 걷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바보! 난 토끼인데 어슬렁거리면 안 되지. 아무리 점잖은 자리에서라도 토끼는 폴짝폴짝 뛰잖아. 이제 나는 토끼답게 살아야 해.’
‘깡충깡충’ 정신없이 뛰었다. 저 멀리서 풀을 뜯어 먹는 하얀 토끼가 눈에 들어왔다. ‘앗, 토끼다!’ 호랑이 굴을 나와서 처음으로 토끼를 보았다. 수컷 토끼였다. 부드럽고 새하얀 털, 총명하게 보이는 쫑긋한 두 귀, 티없이 맑은 빨간 눈동자, 아래턱을 좌우로 흔들며 오물오물 풀을 씹어 먹는 모습이라니. 검고 거센 호랑이 가죽만 보아오던 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얘, 너 정말 멋지구나.” 나는 내 특기인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세상 물정을 모르기는 이 수컷 토끼도 마찬가지였다. 수컷 토끼는 처음 맡는 암컷의 페로몬 냄새에 어지러워했고, 애교 섞인 혀 짧은 목소리로 구애하는 내게 한눈에 반한 것 같았다.
수컷 토끼가 긴장한 표정으로 앞발을 내밀었다. 그의 앞발에는 토끼풀을 엮어 만든 목걸이가 들려 있었다. 조심스레 목걸이를 걸어주는 수컷 토끼의 심장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나는 내 귀가 이상해진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젊은 우리는 매일같이 사랑을 나누었다. 토끼풀을 먹다 질리면 당근밭이나 양배추밭에 갔다. 수컷 토끼는 가르쳐 주었다.
“인간의 밭은 위험해. 개나 고양이가 보초를 서고 있을지도 모르니 교대로 망을 보며 먹기로 하자.”
수컷 토끼는 모르는 게 없는 멋진 토끼였다. 하얀 털로 가려진 내 피부는 남몰래 발갛게 달아오르고, 조그만 내 코는 저절로 실룩거려졌다. 내 심장은 수컷 토끼의 것보다도 더 큰 소리를 내며 주책없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