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토끼야. 사실은 나는 굴토끼란다. 내 고향은 저 멀리 섬나라야. 이곳은 잠시 여행을 온 거라서 나는 곧 돌아가야 해. 내가 사는 섬나라에는 토끼가 많이 있고, 먹을 것도 넘쳐나. 나랑 함께 섬나라로 가지 않을래?”
수컷 토끼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이 멋진 수컷 토끼가 굴토끼라니. 산에서만 산 내가 땅 밑에 굴을 파고 살 수 있을지, 다른 토끼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하기는 호랑이와 함께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 그 정도야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산에서 발견되기는 했지만, 어쩌면 나는 굴토끼였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억지스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수컷 토끼야. 섬나라에는 어떻게 가는 거야? 난 좁은 곳에서만 살아서 오래 뛸 수 없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는 큰잠자리를 타기만 하면 돼.”
큰 잠자리? 왜 큰 잠자리를 타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수컷 토끼의 늠름한 모습에 용기가 났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너와 함께할 거야. 묘흥.’하고 행복에 겨워 나도 모르게 호랑이 소리를 내고 말았다. 수컷 토끼는 내 소리를 못 들은 건지,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 건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나는 호랑이하고 살았던 내 비밀을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다.
며칠을 뛰고 또 뛰자, 광장이 나타났다. 광장에는 잠자리를 닮은 엄청나게 큰 쇳덩이가, 하나도 아니고 수십 개가 떼 지어 있었다. 쇳덩이는 큰 소리를 내며 하나씩 날아오르기도 했다. 나는 털이 곤두서고, 새빨간 두 눈은 더욱 충혈되었다.
“수컷 토끼야, 저게 뭐야? 나 너무 무서워.”
“저게 바로 큰잠자리야. 덩치는 크지만, 땅을 박차고 하늘을 날기도 하지. 우리는 저 큰잠자리의 배에 올라타기만 하면 돼. 큰잠자리는 우리를 잡아먹지 않고 무사히 섬나라로 데려가 줄 거야.”
몸을 웅크리며 무서워하는 나에게 수컷 토끼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인간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조심조심 큰잠자리의 배에 올라탔다. 한참을 기다리자, 아빠 호랑이의 포효보다도 더 큰 소리를 내며 큰잠자리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얼마를 날았을까. 큰잠자리는 또다시 우당탕탕, 끼기기긱하는 소리를 내지르며 광장에 내려앉았다. 큰잠자리의 배가 열리자, 어디에 저렇게 많은 인간이 숨어 있었나 싶을 만큼 많은 인간이 우르르하고 내렸다. 수컷 토끼와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조용히 기다렸다. 이윽고 큰잠자리는 모든 날갯짓을 끝낸 듯 조용해졌다. 수컷 토끼는 ‘이때다’ 하는 듯이 앞발로 신호를 보내며 깡충하고 재빠르게 뛰어내렸다. 정말 믿음직스러웠다. 나는, 시선은 수컷 토끼에게 향한 채로 정신없이 깡충하고 뛰어내렸다.
광장을 나와 얼마를 뛰었을까. 숨이 헉헉 차도록 한참을 뛰니까, 어디서 나타났는지 드넓은 풀밭이 나타났다. 수컷 토끼는 어깨를 활짝 펴고 말했다.
“이곳이야.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