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두고 가는 사랑

by 재희

초록빛 비가 울창하게 내리던 장마였습니다. 그해 여름 이후로는 당신을 담은 문장을 한 자도 쓰지 않았고요. 당신께서 차가운 빗방울처럼 떠나가주신 덕분에 저는 무탈히 잘 지나왔습니다. 사랑이 아니었다 말하기엔, 저는 당신을 너무 오래 깊이 앓았어요. 당신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저는 그랬습니다.


우리의 이별이 당신을 마침내 안온한 곳으로 이끌어줬다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애인이나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떠나서 제가 당신이라는 사람 자체를 꽤나 사랑했거든요. 제 곁이 아니라도 잘 지내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에요.


많이 사랑했어요. 이제서야 꺼내 보이는 마음이지만, 당신의 불안과 우울, 모든 슬픔들을 다 가져와 대신 품어주고 싶을 만큼. 속절없이 사랑했어요. 그날 밤 덥석 당신의 손을 잡고, 폭삭 품에 안겼던 일은. 그러니까 망설임 없이 당신을 따라 걸었던 일은 결코 가볍고 단순한 하룻밤의 사랑이 아니었다는 뜻이에요.


쉽게 이별을 고하는 사람을 무람없이 믿지 못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무수한 상처를 떠안고 하루를 겨우 연명하듯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더더욱이요. 사랑보다 이별을 더 자주 이야기하는 사람을 무람없이 사랑하는 건 아무래도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상처들을 덕지덕지 기워가며 당신을 사랑했어요. 무너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두 눈을 질끈 감고서 빈틈없이 당신을 끌어안으며 그렇게 오래, 깊이 사랑했어요. 눈이나 비가 힘겨우리만치 쏟아져내려도, 물속이어도 불속이어도 다 견디겠다는 마음으로요.


당신이 알아주지 않으셔도 혼자 알아가며 괜찮아지는 마음이 있어요. 덕분에 저는 미련이나 후회 같은 걸 가져와 짊어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고마워요. 품었던 사랑을 남김없이 당신께 건네주고 올 수 있게 해 주어서. 마침내 저도 괜찮아질 수 있었어요.


잘 지내고 있지요? 저도 당신을 따라 마침내 안온한 사랑에 다다랐어요. 아마 이번이 마지막 편지가 될 것 같아요. 사랑한다는 말보다 사랑했다는 이야기가 가득한 편지에 애틋한 마음이 담기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이 편지는 그런 마음으로 적었어요.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이 말이 하고 싶었어요.

사랑했어요 당신, 너무 많이. 너무 오래요.


잘 지내세요. 부디 조금 덜 아프며 다정히 잘 지내기를 바라요. 당신의 행복을 진심으로 소망하며 이 편지를 마쳐요. 마지막 사랑을 담아,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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