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불과 counterpoint
선수부 수련을 신청하고 며칠 뒤, 관장님께서 사무실로 나를 부르셨다. 내가 어떤 이유로 시합에 나가려고 하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곧 서른을 맞이해 인생의 새로운 경험을 만들기 위해 시합에 나가려고 한다고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 관장님의 탐탁지 않은 표정이 기억난다. 나중에 시합이 끝나고 뒤풀이를 하며 들은 사실이지만, 그는 내가 시합에 나간다고 했을 때 의아하셨다고 한다. 2021년에 실전 태권도장으로 적을 옮긴 후로 2022년 하반기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도장 출석에 게을렀기 때문이다. 그다지 성실하게 수련하지 않았기에 관장님께서는 나의 의지를 점점할 필요성을 느끼셨나 보다. 더구나 나와 관장님 사이에는 내 신뢰도를 떨어트리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도장 수련생의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는 일을 자원해서 맡았었는데 앞선 글에서 언급한 깊은 우울증과 이에 따르는 나태로 인해 마감 기한을 한참 넘겨 파일을 전송한 것이다. 그간 죄송한 마음에 도장도 자주 나오지 않았던 터였다. 아무튼, 관장님께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약간 얹어 나를 선수부 훈련에 집어넣으셨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에는 지혜가 있다. 수련을 시작하고 3일 후 관장님께 복부를 맞고 주저앉았다. 하루에 3-4 시간 남짓한 고강도 훈련 속 유종의 미를 거둘 뻔한 바디샷이었다. 짧은 순간 집에 가야 하나 생각했다. 압도적인 공포에 질린 채 배를 움켜쥔 채 함께 수련하는 동료들의 얼굴을 보았다. 이미 시합 경험이 있는 몇을 빼고 다들 겁에 질린 표정. 처음 겪어보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아, 나는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이후 첫 시합까지 32일 정도, 끙끙 앓아눕던 주말까지 포함하면 약 두 달을 수련해 우린 첫 시합에 나갔다. 그때까지의 기억을 돌이키기 위해 평소에 쓰던 수련 일지를 찾아보았다. 처맞고 쓰러지고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생긴 마음에 대한 기록이 눈에 밟혔다. 특히, 맞불 훈련에 대한 기록이 많았다. 근거리 난타 훈련을 일컫는 말이다. 발 붙이고 싸운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문자 그대로 서로 물러서지 않고 치고 박는 훈련이다. 맞불 상황은 킥복싱 아마추어 시합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상황이기에 오랜 시간을 들여 훈련할 필요가 있는,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훈련이다.
맞불 상황을 연습하며 하단 차기를 많이 맞아 허벅지에 멍이 들고 가끔씩 코피도 쏟아내면서 이 상황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겨루기 상황에서 코너에 몰리면 처맞는 건 언제나 내 쪽이었다. 이번 상대인 P군은 시합 경험과 실전 태권도 경험이 나보다 많은 도장 선배. P군의 압박에 당해 도장 코너에 몰렸다. 덜 맞기 위해 가드를 바짝 올렸다. 비를 피하는 달팽이처럼 자기 껍질에 숨어버렸다. 폭우가 지나가길 간절히 바랐지만 웬걸… 폭풍우가 몰아쳤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 훈련을 한 지 2년 정도 되어가는 지금도 이때의 기억은 너무 뚜렷해 잊지 못한다.
다음은 P군에게 두들겨 맞은 날 쓴 기록이다.
2023년 1월 9일
제목: 코너에 몰릴 때
스파링을 하다 코너에 몰렸다. 주먹을 몇 대 피하다 보니 나도 모른 채 사각에 몰렸다. 날아오는 훅을 막기 위해 가드를 단단히 했다. 그러자 더 많은 주먹과 하이킥 세례가 이어졌다. 어떻게 구석에서 빠져나올지 고민할 때 즈음 강력한 뒷차기가 복부에 꽂혔다. 머릿속이 아찔했다.
수련이 끝나고 스파링 했던 P군이 다가와 코너에 몰릴 때 팁을 가르쳐주었다. 가드만 하는 상대만큼 좋은 먹잇감은 없다. 그가 도망칠 구멍이 없음을 알기에 상대는 무제한으로 공격을 날린다 구석에 몰린 사람의 기세는 이내 꺾인다. 두려움을 상대 눈에서 발견하면 공격은 거세진다.
이때 방어자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주먹을 뻗는 태도다. 내가 아직 꺾이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상대를 공격하는 건 쉽지 않다. 함께 싸우다 보면 구석에 몰린 이에게 카운터의 기회가 올 수도 있다. 혹은 클린치로 몸의 방향을 바꿔 내가 상대를 구석으로 몰 수도 있다.
서른이 되어 깨달은 것이 있다. 살다 보면 수없이 많이 구석에 몰린 나를 경험한다. 하고 싶은 일이 좌절되고, 빚이 쌓이고, 원활할 것 같은 인간관계가 꼬이기 시작하면 기세는 주춤한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가드를 단단히 한다. 방문을 걸어 잠그면 공포가 끊임없이 문을 두들긴다. 이때 취해야 되는 자세가 맞불인가 보다. 함께 맞서 싸우다 보면 언젠가 내가 두들겨 팰 날이 올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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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클래식 음악을 만들기 위한 이론 중 ‘대위법’이라는 것이 있다. 나는 영어식 표현이 더 와닿는데 영어로는 이를 counterpoint라고 한다. 점 두 개가 맞붙는다. 메인 멜로디를 다른 선율들이 뒷받침하는 화성법과 달리 대위법 안에서는 전혀 다른 두 선율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균형을 이룬다. 오른손의 선율이 왼손의 선율을 압박하다가 때를 기다리던 왼손이 오른손을 치고 올라온다. 나는 counterpoint가 적용된 음악을 들을 때면 왼손이 밀릴 때 가드를 단단히 하고 가끔씩 주먹을 뻗는 그림이 떠오른다.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때를 기다린다. 언젠가 그의 선율이 오른손을 압도하는 순간이 분명 오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내가 무언가에 원사이드 하게 밀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가드를 잠그고 팔뚝 안으로 숨으면 나를 압박하는 대상은 포식자의 마음으로 몰아 친다. 두들겨 맞다가도 함께 주먹을 뻗어야 counterpoint를 이룰 수 있다. 위대한 음악가 Bach의 invention 시리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