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옳은 음인가 그른 음인가?
태권도에서는 품새를 하기 전 준비 자세를 취한다. 주먹을 쥔 채 호흡을 끌어올리며 4초 정도 주먹을 올렸다가 잠시 멈춘다. 다시 4초. 깊은숨을 뱉는다. 인간은 하루 평균 20,000~25,000번 정도의 숨을 마시고 뱉는다고 한다. 이만 번 중 단 하나의 숨이지만 이때만큼은 그것이 지닌 의미와 무게가 남다르다. 숨쉬기가 이렇게 길고 어려웠나 싶을 정도로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주먹을 내리며 한 획의 호흡이 끝나고 몸과 마음의 준비를 마친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감상하다 보면 지휘자가 곡을 시작하기 전 지휘봉의 끝을 올리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 순간만큼은 뭉툭한 지휘봉 끝이 잘 갈고 닦인 검의 날처럼 날카롭다. 봉을 내리치면 멈출 수 없는 연주가 시작할 것이다. 모두의 이목이 그의 손 끝을 향한다. 품새를 준비하는 태권도인처럼 한 번의 손짓으로 준비를 마친 지휘자가 봉을 내리치자 얼음장 같은 적막에 금이 가고 그 틈새로 음악이 새어 나온다.
처음으로 링 위에 오르기 전 나 또한 몇 달의 준비 기간을 거쳤다. 아마추어 첫 시합 전 두 달의 선수부 훈련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선수 훈련에 들어갈 마음을 먹기 위해 내게는 패배감이라는 준비물이 필요했다.
음악을 꽤 좋아했고,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것을 만드는데 이르렀다. 깊은 지하 작업실에서 음악을 만들며 울고 웃었다. 나이가 이십 대 중반을 넘어가 대학에서 졸업할 즈음 음악을 팔아 먹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직업 작곡가로서 필요한 태도와 역량이 부족했다. 소중한 돈을 들여 내게 곡을 맡겨주신 감사한 분들께 어떻게 보답할지 생각지 않고 이 곡 작업은 내 색깔에 맞나, 내 이름을 높여줄 수 있나, 친구들은 어떤 작업을 하나 등등 주제 파악이 안 되는, 프로페셔널 마인드가 부족한 창작자였다. 야망을 이루기 필요한 노력도 충분히 기울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격투 선수로 치면 챔피언이 되고 싶어 하면서도 눈앞의 샌드백은 대충대충 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찌 저찌 부끄러운 실력으로 남들을 속여 가며 근근이 곡 작업을 했다. 다행히도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했다. 그러나 불행은 음악과 나의 관계에 찾아왔다. 나는 더 이상 음악을 들으며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어떠한 영감도 얻을 수 없었고 위로도 받을 수 없었다. 스물아홉 여름의 나의 귀를 스치는 모든 음악은 나를 혼내고 있었다. 너는 왜 이런 음악을 만들지 못하는가? 그들은 소리를 지르며 나를 압박했다. 아!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겠구나 싶은 마음이 떠올랐다. 비싼 장비로 가득한 스튜디오의 공기, 무거운, 그 적막을 깨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그토록 쫓던 직업 작곡가의 삶에서 도망치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게 아니면 나는 뭐지? 작곡가가 아니면 나는 누구지?
20대의 벼랑 끝에서 나는 업의 의미를 잃고 스튜디오를 도망쳤다. 몇 달간 열심히 도망치다 보니 돈이 떨어져 먹고살기 위해 한 이런저런 일, 우울증 약, 지옥을 견디려면 지옥을 바라볼 필요도 있기에 은사님과 함께 읽은 단테 신곡 중 지옥 편 덕분에 다행스럽게도 방을 벗어날 수 있었다.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는데 몸은 매일 술을 마시던 습관으로 인해 무거워졌다. 평소에 술을 즐기지 않는 내가 몇 달 동안 거의 매일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음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아 마시던 술을 구멍을 막은 후에도 들이붓고 있었다. 술만 마셨겠는가. 기왕 혼자 술을 먹는 거 맛있게 먹으면 좋으니 양꼬치, 돼지 곱창 등 야식을 곁들여 마셨다. 불어난 몸무게와 더불어 카드값도 불어나고 있었다.
마음 건강이 한창 안 좋을 때는 수련비를 결제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던 태권도장에 다시 주 2회 정도 가기 시작하던 어느 날, 도장 카톡방에 공지가 올라왔다. 아마추어 시합을 위한 선수부를 모집한다는 것이다. 수련 기간과 태권도 단증이 일정 이상 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한번 도전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격투 시합에 나가려면 체중을 빼야 할 테니 이를 빌미로 다이어트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배달과 공연 기획사 아르바이트 등 최소한의 돈만 벌던 때라 시간적인 여유도 충분했다. 한국 나이 서른을 맞아 할 수 있는 좋은 인생 경험인 것 같기도 했다. 큰 고민 없이 지원했다.
돌이켜보니 만약 내가 작곡 일에서 도망치지 않았다면 과연 시합에 나갈 결정을 했을까 싶다. 두 날개가 꺾여 날 수 없다는 기분을 매일 느꼈다. 울기도 하고 화도 내다가 지쳐서 주저앉고 포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이제는 아무거나 해도 상관없다는 이상한 용기를 얻었다. 아무도 내 삶에 관심이 없음을 깨닫고 포기할 때 바깥을 향하던 시선이 안으로 돌아온다.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상이 사라질 때 자신이 쌓아 온 이름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동시에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을 자각한다. 진정한 자유는 자폐의 늪을 지나 상처투성이가 되었을 때 찾아오나 보다. 수풀을 지나며 찢기고 멍이 든 날개가 끊어질 때 새 싹이 돋아나는 것이다.
재즈 역사의 획을 몇 번 바꾼 마일스 데이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틀린 음은 없다. 다음에 칠 음이 그것을 옳거나 그르게 만들 뿐이다.
틀린 하루는 없다. 틀렸다고 생각한 하루 뒤에 찾아 올 새 날이 하루의 성격을 정한다. 음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옳고 그름이 정해진다. 듣는 이의 해석에 그것의 의미가 달린 것이다. 그것이 메이저인지 마이너인지. 조성음악인지 무조음악인지. 밝은지 슬픈지. 절망인지 희망인지. 음의 성격을 정의하는 존재는 음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밑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한 연결을 이루는 여백이다.
실패한 나날이라 여겼던 도망의 세월이 링에 들어서기 위한 준비 동작이었음을 기억한다. 과연 그날들은 옳은 음인가 그른 음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