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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사칠 Oct 27. 2024

출전

아쉬움으로 얼룩진 첫 시합

2달 동안 피 땀 눈물을 흘려 난생 처음 링 위에 섰다. 다음은 첫 시합이 끝나고 나서 쓴 기록이다.




2023년 2월 23일에 기록


두려움에 대하여


2달간 준비한 첫 시합이 끝났다. 하루 네 시간의 시간이 쌓여 몇 분 안에 결정이 났다. 2:1로 판정패를 했다. 경기 영상을 보니 아쉬움만 남는다.


관장님 말씀대로 아마추어 데뷔전은 투지와 체력 싸움이었다. 긴장을 많이 한 탓인지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이 떨어졌다. 연습했던 전술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맞불 놓는 훈련을 더 많이 할걸… 후회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 영상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다. 두려움이 나를 짓눌러서 펀치 거리를 제대로 재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대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한두 번 맞아 본 시합용 편치가 나로 하여금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내가 상대의 사정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은 그도 마찬가지다. 그도 자신의 펀치 거리 안에 들어온 내가 무서웠을 것이다. 맞는 건 피할 수 없으나 맞고 또 때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한 번이라도 더 손발을 던지는 자의 투지가 빛을 발한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선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내가 거리 안에 들어오면 그 또한 두렵긴 마찬가지다. 결국 마주할 싸움이라면 두 눈 뜨고 맞는 게 낫다. 공포의 대상이 되기 위해선 공포를 무릅써야 한다.




도장 동료들이 찍어준 시합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체감했던 분위기와 실제 퍼포먼스는 너무도 달랐다. 중학교 때 한창 힙합과 랩에 빠져 있었을 때 처음 녹음을 하고 경험한 실망감과 비슷했다. 밤에 쓴 가사를 낮에 봤을 때 찢어 버리고 싶었던 마음과 비슷했다. 20대 때 스스로의 공연 영상을 보았을 때 느낀 당혹감의 갑절이었다. 두 달 동안 정말로 힘들었는데. 이렇게 허우적 대기 위해서 두 달을 준비했다는 말인가.


시합이 끝난 후 곧바로 도장에서 소주로 패배감을 털어내고 며칠 동안 이 기분에 관해 곱씹었다. 훈련 말미에 버핏 점프 등 가장 힘든 체력 운동을 하는데 채우지 못한 몇 개의 점프가 떠올랐다. 충분하게 차지 못한 샌드백도 떠올랐다. 계속해서 주먹을 내지르는 ‘탕탕 미트’라고 부르는 훈련을 했는데 팔이 아파 설렁설렁 주먹을 질렀던 몇 초가 떠올랐다. 티끌이 쌓여 업보가 되어 돌아왔다.


만약 첫 시합에서 이겼다면 나는 한 번 더 시합에 나갈 결심을 했을까? 패배가 선물한 아쉬움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 시합을 준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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