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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격하는지혜 Mar 30. 2020

'작은 아씨들' 로맨스가 전부여도 혹은 전부가 아니여도

“내 꿈이 네 꿈과 다르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건 아냐”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2019), 스틸컷1


19세기나 지금이나 여성에게 주어지는 문제는 한결 같다.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일구어 나갈지 아님 장밋빛 로맨스로 치장을 했든 장삿속이든 결혼이란 걸 할지. 현 세계에 이르러 후자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관점으로 가치 절하를 당하고 있다만,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이 지닌 가장 놀라운 대목은 전자를 선택했든 후자를 선택했든 여성을 세계가 건넨 난제 앞에서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인 하나의 존재로서 그려내는 데 충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2019)에서 ’조’(시얼샤 로넌)의 소설 ‘작은 아씨들’에 푹 빠진 편집장은 작가로서 찾아온 그녀에게 다짜고짜 묻는다. 조(소설 속 주인공)가 왜 옆집 청년의 청혼을 거절했냐는 거다. 그녀의 답은 아주 단순했다. 그 청년은 후에 조의 동생과 결혼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 이에 편집장은 말한다. 로맨스가 없는 이야기는 팔리지 않는다, 여성이 주인공이라면 당연히 결혼식으로 결말을 맺어야 한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로맨스란 아담과 하와가 만나는 그 순간부터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어 왔으니까, 어찌 보면 로맨스가 부재한 이야기가 재미 없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오늘의 우리를 잠시만 대입해봐도 금방 알 수 있지 않나. 하지만 문제는 앞서 편집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로맨스란, 인간이 본래 지닌 것이라기보다 남성 위주의 사회가 좀 더 원활하게 굴러가기 위해 재탄생되고 길러진 것이란 데 있다. 즉, 여성이란 그저 남성에게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살 수 있는 존재로서 규정짓는 하나의 틀이란 것.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2019), 스틸컷2


“내 꿈이 네 꿈과 다르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건 아냐”

그러니 제 인생은 스스로 만들 거라는 조에게 ‘그러한’ 로맨스는 마음에 들 리 없고, 이는 언니 메그(엠마 왓슨)의 결혼을 말리는 장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하지만 메그는 조를 비롯한 자매들과 함께 누구보다 짓궂고 경쾌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조와 다른 꿈을 가진, 다른 사람이었다. 주어진 현실을 깨뜨리기보다 그 안에 놓인 자신의 욕망(자신의 집과 가족을 만들고 싶은)을 발견하고 실현하는 걸로 족했으며, 그 욕망을 함께 겪어가고 싶은 남자를 만났을 뿐이었다. 결국 조는 메그의 선택을 존중하며 축복을 빈다.


다른 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것, 이는 ‘작은 아씨들’ 전체를 아우르는 맥락인 동시에 감독 그레타가 세계와 그 세계 속 두 성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려면 역시 조와 끊임없이 비교될 수밖에 없는 인물,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크게 될 게 아니면 안 하고 싶어.” 로마에 가서 세계 최고의 화가가 되겠단 꿈을 가졌으나 에이미가 파리에서 겪은 현실은 자신은 그만한 재능이 없다는 거였다.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2019), 스틸컷3


“사랑은 선택하는 거지,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게 아니야”

네 자매들 중 가장 영리한 현실감을 보여주는 에이미답게, 이제 자신에게 남은 건 가족에게 도움이 될 만한 풍족한 가문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는 일밖에 없다고 여긴다. 그러던 중 오랫동안 좋아했으나 언니 조에게 마음이 있단 걸 알기에 포기했던 옆집 소년, 이제는 가문의 풍요로움을 이어야할 청년이 된 로리(티모시 샬라메)에게 뜻밖의 구애를 받고 결혼에 이른다.


조건의 충족은 물론이고 로맨스에서 촉발된, 편집장의 말을 빌리자면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로서 최상의 결말을 맺은 것이다. 사실 이러한 결말 때문인지 에이미는 오랫동안 다수의 독자들에게 얄미움을 받아오기도 했는데 흥미롭게도 그레타의 ‘작은 아씨들’에서 에이미는 이전과 다른 설득력을 지닌다. 그저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매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려 노력해오던 그녀가 어느날 찾아온 로맨스 앞에서, 어쩌면 그녀의 현실감에 반하는 또 다른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라고. 모든 순간 본인의 삶에 대해 주체가 되었을 지언정 로맨스로 자신의 존재를 규정짓지 않았다는 의미다.


“여자도 감정만이 아니라 생각과 영혼이 있고, 외모만이 아니라 야심과 재능이 있어요”

‘작은 아씨들’에서 네 자매의 삶과 선택은, 그녀들이 어떤 사랑을 하고 어떤 결혼을 하던지, 아니면 홀로 남아 있던지, 모두 이해와 지지를 받는다. 가장 선량한 마음을 지녔으나 이르게 찾아온 죽음으로 해당 세계에서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는 베스(엘리자 스캔런)의 짧은 삶마저, 제약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 삶이 주어진 하나의 존재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로써 19세기에 태어난 ‘작은 아씨들’이 여전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데 감독 그레타의 탁월한 시선의 결과라 하겠다.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2019), 스틸컷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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