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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콤S Apr 27. 2022

보건교사의 점심시간

급식 or  도시락

1시 반이다.

학생들이 귀가한다.

오늘은 오후 활동이 없는 수요일이라 하교시간이 이르다.


아이들이 다 갔을테니 나도 이제 점심을 먹어야겠다.


평소 11시 30분이면 점심을 먹는다.

나도 원래 급식을 먹었다.  

나는 급식을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초기

확진자 동선조사가 매우 철저하던 때

확진자가 급식실에서 밥을 먹었다면

동시간대 학생과 교사 모두가 PCR을 받아야 하고,

그 대상자를 보건교사가 추려내서 검사를 보내고

주민번호와 주소록을 작성해서 제출했다.

그렇게 검사를 받은 학생과 교사는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학교에 올 수가 없었고,

그중에 또 확진자가 나오면

그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해서

또 검사를 보내는 뫼비우스의 띠같은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혹시나 검사를 받게 될까봐

전면등교가 시작된 이후 급식을 먹지 않고 있다.

내가 뭐 그까짓 콧구멍 속 펜싱같은 PCR 검사를 무서워해서는 아니다.


첫 확진자가 나오던 날,

우리 학교는 확진자가 나온 학년과 교직원 전체가

PCR을 받기로 하였고,

다른 학년 학생들은 바로 귀가하기로 하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말고

결정된 대로 검사를 받고

재택근무를 하는 것이 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나의 판단을 믿고

절대 동선이 겹치지 않았다는 판단 하에

조용히 홀로 검사를 받으러 가지 않고,

모두가 떠난 학교에 남아 방역업무를 처리했다.


이미 보건소의 방역업무도 꽉 찬 상태였어서

애타게 기다린 역학조사관은

다음날에나 방문한다고 했고,

모든 교직원이 검사결과를 기다리며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날까지 재택근무였다.

그러나 나는 검사를 받지 않은 사실을 숨기고,

검사를 받지 않았으므로 

당당히,

홀로,

조용한 학교에 출근해서

기약없는 역학조사관을 기다렸다.

교육청과 보건소의 전화와 공문에 응대하며

이런저런 업무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가장 성가신 업무는

검사대상자인 교직원과 학생들의

주민번호와 주소를 모으는 것이었는데

교직원 정보를 모아주셔야 할 교감선생님은

끝내 출근하지 않으셨고,

급식실 직원 정보는 급식실에 따로 연락해서 받으라며

냉정하게 행정실 직원 것만 추려서 주던

행정실 주무관의 무심함이 제일 섭섭한 일이었다.

아무도 오지 않아서

곧 도착할 테니 학교문을 개방해달라는

역학조사관의 전화에

학교문을 지키며 서있던 시간은 오후 3시였다.


그전부터 이미 급식을 포기했지만,

나는 이날 이후로 쭉 급식을 포기하였고,

현재는 코로나19의 2급 감염병화가

완전히 정착될 때까지

급식을 포기한 중이다.


그런데 나는

원래도 급식실에서 밥먹는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수시로 학생들이 밥먹는 나를 찾으러 급식실로 왔고,

내가 밥먹고 나서 돌봐도 되는 경우거나,

내가 아니더라도 일반 교사의 처치가 가능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를 찾는 학생이

급식실에 나타나면

아묻따 단호히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수련이 부족한 나는

보건교사를 찾는 이유의 위중도보다,

내가 학생들을 대하는 모습이

다른 교직원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더 신경쓰이는 탓이다.

일단 학생들이 급식실까지 찾아오면,

이따가 다시올 수 있겠니? 하는 그 말을 하기가 참 어렵다.

그냥 수저를 놓고 일어서는 모습이

모두가 기대하는 보건교사의 모습임을 잘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간에 밥을 멈추고 나면

다시 급식실에 가기도 싫고,

식은 밥을 먹기도 싫다.


도시락을 먹으면 이런 괴로움은 없을 줄 알았는데

오늘보니 이것도 아니다.

급성 불안증상으로

교실에 못 들어가겠다는 아이가

오전 내내 나와 함께 보건실에 있었다.

다행히도 급식을 먹으러 가보겠다기에,

혹시나 다시 안좋으면 보건실로 오너라 하고

격려해서 보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길어진 90분의 점심시간을

다 기다리도록 아이는 오지 않았다.

밥을 먹었든 안먹었든,

다시 보건실에 올 정도는 아닌 상태로 귀가했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도시락을 먹으려는 순간,

2층 생활지도부실에서 연락이 온다.

생활지도 중인 학생이 불안정해 보이니

옆에 있어달라는 부장님의 부탁이다.


나는 얼른 옥시메트리와 혈압계를 챙겨들고

학생 옆으로 달려간다.

왕진이 잦은 요즘이다.


오늘 점심은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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