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업일치, 이게 맞아?
퇴사 후 발리에서 한 달, 그리고 곡성에서 일주일간의 워케이션을 끝으로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디론가 떠나지 않고 집에 머무르며 일을 한지 딱 한 달. 이 기간에 프리워커로서 일과 삶의 루틴을 잡아보자고 다짐했는데, 뭔가 이상하다.
일과 삶의 경계가 없어진 느낌이다. 나에겐 일이란 세 가지로 나뉜다.
1. 당장 돈을 벌어다 주는 일
2. 앞으로 돈이 될 일
3.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내가 재밌어서 하는 일
당장 돈을 벌어다 주는 일은 외주인데, 이것의 절대적인 양은 많지 않다. 주 3회만 바짝 집중해서 일하면 끝낼 수 있는 정도다. 그런데 나는 주말에도 일을 놓지 못하고 있다. 정말 이상하다. 대체 뭐 때문에...?
한 달간 내 생활을 돌아봤다. 그리고 그 이유를 발견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에 2, 3번을 끊임없이 잡고 있던 것이다. 처음엔 일놀놀일, 덕업일치라고 생각하며 즐겁게 일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소소한 성취들도 있었다. 그 소소한 성취들이 원동력이 되어 여기까지 왔는데, 그게 반복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궁극적으로 얻으려는 게 뭐지?"
"장기적인 내 비전과 목표는?"
이게 없었다. 그래서 불안했고, 뭐라도 계속해야만 할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왠지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회사 밖 나를 책임질 사람은 나뿐이라 생각하며 끊임없이 협업 거리를 만들어 냈고, 콘텐츠를 생산했다. 들어오는 협업 제안도 마다하지 않았다. 단기적인 성취만을 이루며 달려왔다.
"고정된 일터에서 '해방'되는 것이 기쁜 소식이기만 할 리는 없다. 불안정성을 그 대가로 받아들여 얻은 능동적 자유가 어떤 사람에게는 골치 아픈 숙제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필연적으로 다가올 현실이라면 몸도 마음도 준비해 두는 편이 낫겠다. 불안정성을 감수하며 능동적 자유를 선물로 받아들이려면 자신의 욕망과 현실을 동시에 이해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며, 그 좋아함이 어떤 조건 위에서 작동할 수 있는지 미리 고민해 두는 편이 현명한 일이다."
- 제현주,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요즘 읽고 있는 책의 한 구절이 많은 울림을 주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에서 흥미와 성취를 느끼는지 잘 안다. 이제 그 좋아함이 어떤 조건 위에서 더 잘 작동할 수 있을지 따져봐야 한다. 지속 가능성을 생각해야 할 때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건 괴롭고 힘든 일이다. 그런데 이건 아마 평생 해야 할 일인 듯싶다. 하나의 고민이 사라지면 또 다른 고민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마 나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또 다른 부류의 고민을 하고 있겠지.
그동안 깊은 고민들을 통해 성장과 변화를 거쳤다. 그래서 안다. 이 고민들이 성장을 위한 점프대라는 것을. 그래서 괴로워하기보다는 이 과정을 즐겨보기로 했다. 이 고민들이 나를 또 어디로 데려다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