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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고르 Feb 11. 2022

친구들에게 귀촌한다고 하니 이런 반응이...

귀촌은 모두의 합의가 필요하다.

촌밍아웃을 하고자 할 때 가장 두려운 대상은 어른들이다. 세상에 우리 부부만 존재했다면 단지 결심만으로 시골에 갈 수 있었을 테지만 인간은 다양한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어 촌밍아웃을 어떻게 할지 깊이 고심했다. 다행히 지금은 가족 대부분을 설득한 상태다. 우리 부부는 간이 크지 않아서 가족들이 결사반대했다면 귀촌 계획이 무산되거나 딜레이 됐을 것이다. 같은 핏줄의 의견은 이토록 고려 대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친척 외 주변 친구들의 의견도 상당히 중요하다. 세대 차이 등의 이유로 어른들의 의견은 별로 신경 쓰이지 않지만 오히려 지인들의 경우 이들의 한마디가 우리의 사고방식에 크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시골 가면 뭐 먹고 살래?'라는 말을 어른들이 할 때와 우리 또래들이 할 때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비슷한 경제적 상황에 처해있어 어찌 보면 더 현실적인 물음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촌밍아웃을 했을 때의 반응은 반반으로 갈렸다. 그리고 그 반응은 친구냐 아님 그냥 지인이냐에 따라 상반됐다. 




1) 불x 친구들(10~15년 지기)


"야. 우리 시골 가서 살려고."


친구에겐 설득의 과정이 필요 없으므로 편하게 말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시골? 웬 뜬금없이 시골?"


"너도 알다시피 와이프나 나나 옛날에 해외 농촌 생활한 적 있잖아. 그 기억이 너무 좋아서."


"아~ 그랬었지.이야 대단한 결정했네? 야 근데 네 시골 가면 또 잘 못 보겠네... "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세세하게 알고 있는 이 친구는 새삼 놀라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 수 있음에 아쉬워할 뿐이었다. 20대 초반부터 친구들에게 워낙 많은 커밍아웃을 해서 그런가 보다. 갑자기 과거가 생각난다.


"야. 나 미국 간다. 9개월 동안 어학연수."


"뭐?!?! 휴학하고??"


3년 후


"야. 나 네팔 간다. 해외봉사하러."


"뭐?! 취직 안 하고??"


이렇게 되짚어보니 친구들은 이미 커밍아웃 상황에 굉장히 적응했을 거란 합리적인 판단이 선다. 그래서 나의 촌밍아웃에도 별다른 이견이 없었을 거다. 더구나 남자라서 그런가. 서로의 인생에 크게 관심이 없다. 가서 어떻게 먹고살지 같은 흔한 태클도 걸지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기 때문에 부가적인 설명은 필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얘네들을 아낀다. 




2) 그냥 지인들(베이킹 클래스 등)


"저 창녕으로 이사 가요"


"잉? 왜? 왜?"


"귀촌하러요."


"지금 나이에???! 에이 말도 안 돼. 아니 가서 뭐 하려고?"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이다. 그냥 친분만 있는 지인들은 나의 역사를 모르기 때문에 반대 입장을 먼저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은 촌밍아웃에 적극 반대했지만 난 크게 영향을 받지도,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예를 들어 고3 짜리 학생이 수능 보지 않고 바로 취업하겠다고 하면 나도 처음엔 의아할 것이다. 이런 것과 같은 맥락이겠지. 반대 의견을 내주는 것도 어쩌면 나를 위한 걱정일 수도 있겠다. 


분명한 것은 지인의 경우 우리의 촌밍아웃에 자기의 삶을 투영한다는 것이다. 남들과 다른 독특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우리 부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들이 하는 걱정과 핀잔의 의도만 감사하게 여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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