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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고르 Feb 12. 2022

백수인 내가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법

우씨, 백수도 인간이다!

'빠빠 빠빠 빰~♬ 빠빠 바빠~♪'


오전 7시. 나는 잠귀가 예민해서 기상 알림음이 울리면 바로 일어난다. 남들은 알람이 울리자마자 벌떡 일어나는 나를 보고 참 신기하다고들 했다. 


'아... 너무 피곤한데 10분만 더 자고 일어나자.'


내가 백수가 됐다는 게 실감 나는 때가 바로 아침이다. 직장에 다닐 때만 해도 10분만 늦게 일어나자란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는데. 아 참. 백수인데 왜 7시에 일어나냐고? 백수가 됐다는 건 내가 통제해야 될 시간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인간은 본디 게으른 동물이기 때문에 직장이나 학교처럼 환경적으로 내 시간을 통제할 기회가 없으면 끝내 느슨해지고 만다. 인간에겐 잠자는 시간 빼고 하루 17시간이 주어지는데 이는 따지고 보면 정말 긴 시간이다.


게으른 백수가 되지 않는 나만의 방법은 남들이 직장에서 돈을 버는 시간에 똑같이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난 딱히 외출 계획이 없어도 정성스럽게 샤워를 하고 위아래를 갖춰 입는다. 머리까지 말리고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나면 이제 뭔갈 시작할 준비된 느낌이다. 그런 다음엔 미뤄뒀던 설거지를 하고 소파나 탁자 위를 정리한다. 밤에 하는 정리와 아침에 하는 정리는 느낌적으로 다르다.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으로서의 정리는 기꺼이 하게 된다.


환경이 모두 준비가 됐으면 노트북을 켠다. 매일 아침 행하는 의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먼저 세상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기 위해 네이버 뉴스를 본다. 대학교 때 정치에 관심을 가진 이후로 정치/사회 기사는 꾸준히 챙겨 본다. 대선이 코앞이라 두 대선 주자들이 어떤 뻘짓을 하고 있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요즘엔 경제공부를 하고 있어 경제 파트도 유심히 본다. 내가 넣어놓은 주식 종목 기사들을 검색까지 해서 챙겨본다. 이런 것들, 의외로 재밌다.


그러다 보면 배가 아파 화장실을 간다. 이것도 늘 하는 성스러운 행위다. 거사를 치르면서 내가 넣은 주식이 얼마나 빠졌는지 본다. 많이 빠졌을 때면 화가 나서 자연스럽게 힘을 잘 줄 수 있다.


노트북 앞에 다시 앉아 내가 하는 SNS들을 모니터링한다. 그래 봤자 블로그와 브런치뿐인데 요즘 부쩍 이웃과 구독자가 많아져서 기분이 좋다. 브런치는 약 3주밖에 안됐는데 글 2개가 브런치 메인에 뜨는 바람에 조회 수가 떡상해버렸다. 구독자도 좀 늘었다. 블로그는 가장 먼저 수익을 확인한다. 보통 하루 10~15원인데 운이 좋으면 5천 원까지 나온다. 꽤 쏠쏠하다. 정성스럽게 댓글을 달아주는 이웃님들이 있다. 그럼 나도 감사한 마음으로 대댓을 달아드린다. 블로그가 여기까지 성장하는 데 1년이 걸렸다. 내가 매우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블로그 글을 브런치에 옮기다 보면 아내가 일어나서 출근할 준비를 한다. 지금은 백수라 아내를 직장까지 매번 태워주고 있다. 밥 먹고 똥만 싸는 기계가 되지 않기 위해선 돈 버는 아내에게 이렇게라도 기여해야 한다. 아내를 데려다주고 오면 그때부터 나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글을 써야 한다는 욕구와 유튜브로 편하게 경제공부를 하자는 욕구가 대립한다. 난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꽤 큰 에너지를 쓰는 작업이기 때문에 시작이 쉽지 않다. 그래도 시간 많은 백수이니 하루에 글 2개는 쓰자고 다짐했다.


주식, 코인, NFT를 공부하다 보면 어느새 12시가 되어있다. '아.. 글 못썼네'. 못 쓴 게 아니라 안 쓴 거지만 공부는 했다고 합리화하며 오후를 기약한다. 점심은 밥과 반찬으로 대충 때운다. 17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통제하기 위해선 전략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하루 종일 한자리에만 앉아있으면 이내 지루해진다. 그래서 오후는 집 근처 카페에 출근한다. 환경을 바꿔주는 게 내 시간을 쉽게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다. 계속 집에만 있으면 편한 침대와 소파가 나를 계속 유혹하기 때문이다.


카페에선 이상하게 글이 잘 써진다. 내 블로그에 있는 250개의 글을 써가면서 깨달은 건, 글 쓰는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와 같은 어른들은 백수가 카페 가서 글 쓴다고 하면 분명 딴지를 걸 것이다. 하지만 라떼들이여. 당신들은 나를 평생 이해 못 할 것이다.


카페에서 꽤 오랜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고 나면 아내가 오기 전에 집에 가서 저녁 준비를 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꼴 보기 싫은 백수가 되지 않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 최대한 아내의 의견을 반영하여 밥을 준비하고 아내가 오면 함께 대화하고 소통하며 저녁을 먹는다.


나는 가족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아내와 있는 시간의 절댓값을 확보하려고 한다. 아내에게 '나한테 너무 무심해'라는 말을 듣지 않는 게 나의 목표다. 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또 아내 입장에선 잘 모르겠다. 항상 사랑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더 노력해야지.


저녁시간은 끝내 나와의 싸움에 져버리는 형국으로 간다. 마음만 먹으면 저녁시간조차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지만 직장인들이 하루를 마치고 쉼을 즐기듯, 나도 저녁시간을 루즈하게 보내버리고 싶은 것이다. '한 시간이면 괜찮겠지'하며 이상한 옛날 게임을 켜고 일정 시간을 할애한다. 최근엔 넷플릭스 '그해 우리는'과 '지금 우리 학교는' 두 가지 '는' 드라마에 빠져버렸다. 이러다 보면 3시간은 그냥 증발해버려 경미한 죄책감을 느낀다.


요즘 내 생활은 위와 같은 패턴으로 흘러간다. 한 달쯤 백수생활을 하니 점점 몸의 긴장이 풀어지면서 게을러지고 있다. 난 그럴수록 나를 채찍질한다. 이런 강박이 있는 내가 썩 맘에 든다. 지금도 설날에 제사를 보내고 와서 잠시 짬이 나 글을 쓴다. 내일 올라갈 글이 없거든. 이번 글은 좀 가볍게 써봤다. 재밌게 읽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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