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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고르 Feb 03. 2022

지친 사회복지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위로, 공감의 글

1) 행정업무


조밀조밀 모여있는 사무실 안이 너무 조용하다. 타자 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늘 이런 분위기인 듯 아무런 어색함 없이 다들 행정업무에 열중한다. 


회의감의 첫 시작은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이럴시간에 주민들을 만나야 되는 거 아닐까?'


'책상 앞에서 무슨 사회복지를 하지?'


처음 입사하고 몇 주간은 책상 앞에 죽치고 있는 동료 복지사들이 게을러보였다.


하지만 몇 개월 후, 처리해야 될 서류가 많아서 나 또한 업무시간의 80%는 책상 앞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국가 세금을 월급으로 받고 종이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2) 세금낭비


"샘. 올해는 사업비 전부 다 소진해야 됩니다?"


"아... 네. 근데 굳이 왜 사업비를 다 써야 하나요?"


"사업비를 활발하게 썼다는 증거가 되니까요. 내년에도 사업 선정되려면 꼭 다 써야 해요"


일은 많고, 돈은 써야 되고, 사업 종료까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남은 돈들은 사업의 효과성에 부합하지 않는 항목에 급하게 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복지사들 중 일부는 사업비를 그냥 펑펑 써댔다. 


난 그런 것들을 지켜보는 것조차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국가 세금이 얼마나 낭비되는지 몸소 깨달았던...




3) 여초 사회


"아 진짜 그 샘..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에요?! 완전 자기 생각만 한다니까!"


"인성이 왜 저렀는지 모르겠어요.. 저분은 제가 보기에 여기 쭉 있으면서 밑에 직원들 괴롭힐 것 같아요"


"샘 저 샘은 진짜 조심해야 돼요. 언제 뒤통수 칠지 몰라요"


참고로 난 남자지만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준 페미니스트다.


하지만 과거 경험으로 쌓은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보통 험담, 정치질에 특화돼있는 부류는 여성들이었다.


사람을 미워하고 매도하는 행동은 주위를 매우 피곤하게 한다.




4) 고인물들(상사들)


나는 부산에 위치한 어떤 복지관에 근무하면서 과장한테 한번 찍혀본 경험이 있다.


상사에게 한번 찍히면 답도 없다. 


그 상사는 내가 결재를 받을 때마다 뚱한 표정으로 서류 내용에 대해 퉁명스럽게 슈퍼비전을 줬다. 


그 밖에도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다른 직원들에게는 안 그러지만 나에게는 그런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이 과장과 더불어 참 많은 팀/과/관장들과 인연이 있었지만 본받고 싶은 사람은 단 1명도 없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사회복지 바닥에 유독 거지 같은 상사들이 많다고 한다. 


상사들이 독하다고는 생각한다. 이 힘든 복지관 업무를 5년 이상 버텨냈으니까.


하지만 상사에겐 자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사가 깨어있지 않으면 밑의 직원이 개고생 한다.


직책이 너무도 힘든 나머지 사람을 바꿔 놓을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글쎄.


직책이 오히려 사람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5) 야근... 또 야근... 또또 야근...


지역사회복지관의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간단한 프로젝트 하나에도 사업계획, 중간보고, 결과보고 등 서류들을 작성하고 결재받아야 한다. 자칫 운이 나빠 프로포절 작성이라도 맡게 되면 3주간 야근은 따놓은 당상이다.


내가 진짜 사회복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일에 보람을 느낀다면 야근이 즐거울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고작 종이 쪼가리 몇 장 만든다고 야근을 한다는 것이 나를 힘들게 했다.


퇴근 후의 삶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사람이 피폐해지고 예민해지고 못나졌다.




6) 사회복지에 대한 원론적인 회의감


사회복지사는 인간의 인생을 다루는 일을 한다.


인생은 사실 함부로 건드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이 맡은 사업이 오히려 클라이언트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지 고심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도시락 배달 서비스 사업을 진행한다. 어떤 어르신의 몸이 불편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하여 서비스를 연계해드렸다. 


하지만 이 서비스는 어르신의 이웃관계를 끊어버렸다. 평소 이웃들이 어르신의 식사를 챙겨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웃관계가 형성돼있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면 결국 사회복지는 필요없다. 이웃들이 사회복지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서비스는 주위 사람들과의 상생관계를 망쳐버릴 수 있다. 사회복지사는 서비스의 이러한 이면을 고려해야 한다.


사회복지사도 자신이 사업을 잘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야 한다. 그러니 실적, 사진, 보고서 내용 부풀리기에 혈안이 되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실적 때문에 지역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사회복지사를 한, 둘만 본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의 잘못일까? 아니면 우리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사회복지사 바닥이 문제일까.


사회복지에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사람은 피폐해져 간다. 주민들도 일일이 만나야 하고 행정도 완벽하게 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야근은 기본이다. 과연 그런 넓은 그릇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7) 사회복지사는 전문가인가?


사이버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딴 사람들까지 합하면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사회복지사가 될 자격을 갖춘 것이다.


사회복지사가 전문가라면 이러한 분들까지 다 전문가인 셈이다.


사회복지사가 전문가라고 하면 왜 상사들마다 주는 슈퍼비전 내용이 다른가?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제공하는 사회복지 서비스가 달라져도 되는 건가. 몇 년에서 몇십 년을 근무한 상사들조차 문제에 대한 해답이 각자 다르다면?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까.


보통 전문가라고 하면 한 분야에 통달한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 분야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공부하여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른 사람.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아쉽게도 사회복지사가 전문가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사회복지 바닥은 어느 정도 컴퓨터만 다룰 수 있으면 누구나 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주구장창 종이 쪼가리나 만들고 있는데...


서류를 유독 잘 작성하는 동료가 있었다. 그럼 이분은 전문가에 가까운 분인가?


지역사회복지관 입사하면 받는 1호봉 연봉이 대략 2500~2700만원이다. 


중소기업에 입사하면 그 회사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사회복지관에선 지역주민의 복지를 위해 일한다. 사회복지사들은 과연 저 연봉만큼 복지를 실현하였는가?


2700만원을 쪼개 지역상품권을 만들어서 지역주민들에게 나눠준다고 하자. 이것이 더 효과 있는 사회복지인가, 아니면 사회복지사를 고용하여 하루 70%를 종이 쪼가리를 만들게 하는 것이 효과가 있겠는가?




8) 사회복지 회의감에 치를 떨고 있는 당신에게


앞서 말한 것들이 건방져 보일 수 있겠다. 모든 것은 내 주관적인 생각이며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를 수 있다.


나는 사회복지를 극단적으로 낭만적이게 생각했던 게 틀림없다. 사회복지를 하며 평생 남을 돕고 살겠다는 지나치게 단순한 로망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나처럼 이렇게 회의에 절어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복지에 대해 지나치게 순수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일 테다.


허나 회의감에 쩔어 있어 봤자 사회복지 바닥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다 사회복지 바닥을 떠나는 건 '나'다.


찐 사회복지사를 외쳤지만 회의감에 쩔어 결국 이 바닥을 떠나는 '나' VS 사회복지사도 그저 직장인일 뿐이라며 대충 덤덤하게 일하다가 25년 뒤에 관장이 된 사람


이 둘 중 지역주민에게 더 도움이 된 사람은 누구겠는가?


진짜 사회복지를 하고 싶다면 아무리 현실의 벽이 높더라도 남아있는 것이 맞다. 그게 정말 찐 목표였다면 말이다.


사회복지현장은 그냥 존재했을 뿐인데 나 혼자 실망하고, 화내고, 짜증내고 떠나버렸다.


아무도 나에게 사회복지가 뭔지 정확하게 정의해 주지 않았으며 다만 내가 멋대로 사회복지가 뭔지 정의했을 뿐이다. 


그건 지극히 내 잘못이다.


나는 현재 다른 진로를 준비하고 있다.


남을 돕고 살겠다는 목표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낭만과 로망은 잠시 피어있는 불꽃과 같았다.


모든 것은 다 '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한 선택도 나에게 달렸다고 생각한다.


1. 사회복지 현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불만 없이 살아간다. 


2. 과감하게 사회복지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한다.


당신이 만약 사회복지에 대해 큰 회의감에 빠져있다면 이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얼른 선택했으면 한다.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회의감에 빠져있다는 것은 정체되었다는 것이다. 정체된 시간은 최대한 줄이는 게 맞다.


사회복지 바닥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더 빠른 방법은 '나'를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어쨌건 화이팅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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