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따라 읽다 보면..
제2장 `하루 공부의 힘`을 믿는다 <영어>
퇴근 후 아이와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한 후 영어 공부는 딱 15분만 하기로 정했다. 타이머로 시간을 맞췄다. 공부를 처음 시작한 아이의 나이가 7살이었고 아이가 영어를 싫어했기 때문에 정해진 짧은 시간 내에 속도를 내 영어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5분이 지났다고 해서 하던 공부를 접지는 않았다. 15분내에 맞춰서 하도록 스케줄을 짜되 15분에 너무 구애를 받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공부는 시간보다 해야 할 분량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맞다.
문제는 이 짧은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까에 있다. 일단 유치원 영어 공부를 따라가기 위해 시작한 공부인 만큼 유치원에서 배운 책들을 같이 읽어나갔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가져왔지만 집안에 쳐 박아 두고 거들떠도 보이 않았던 책들을 하나씩 읽어나갔다.
방법은 내가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쳤던 방식과 유사했다. 짧은 책들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내가 먼저 읽고 아이가 따라 읽는 방식이었다. 당시 아이의 영어 수준은 A, B, C, D 등 알파벳만 겨우 아는 정도였다. 파닉스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 40분씩 공부하는 영어센터에서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단계였다. 유치원에선 파닉스를 넘어 영어 단어나 문장 등을 배우는 듯 했다. 아이를 둘러싼 영어 환경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었다. 그냥 짧은 영어 책을 골라 그 영어 문장을 따라 읽게 하는 정도였다. 내가 한 번 읽으면 그대로 아이가 따라 읽는 식이다. 발음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헷갈리는 발음이 있다면 검색하면 금방이다. 아이는 유치원이나 영어센터에서도 영어를 배우기 때문에 내 콩글리쉬 발음을 따라오진 않았다. 오히려 나한테 발음을 가르쳐줬다.
아이의 영어 수준이 아직 초보였던 만큼 처음 책 한 권을 떼는 데 오래 걸렸다. 나는 아예 `이 책을 1년 동안 매일 읽어보자. 설마 그때도 모를까`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그렇지 않으면 ‘왜 매일 반복해서 하는 데도 아직도 모르지’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그러면 그것은 아이에게 지적질로 이어진다. 그렇게 처음 책 한 권을 아이 스스로 읽어 나가는데 한 달 반이 걸렸다. `1년은 걸릴 줄 알았는데 그것 치곤 빨리 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달리 먹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 후 두 번째 책을 스스로 읽어 나가는 데는 2~3주로 줄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책 읽기를 반복하자 긴 책도 2주 정도만 읽으면 아이가 스스로 읽어 나갈 수 있었다. 나는 아이와 주 5일만 공부를 했기 때문에 사실상 나와 아이가 한 권의 책을 읽은 것은 10번이었다. 10번의 읽기 내에 아이 스스로 읽기가 가능했단 얘기다. 어차피 영어의 어휘는 이 책 저 책 반복해서 나오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이 스스로 읽는 어휘가 늘어난다. 그러니 오롯이 아이 혼자서 읽게 되는 기간을 쉽게 단축할 수 있다.
아이와 공부를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자 유치원 책으론 부족했다. 그 뒤론 서점에서 중고 영어책을 사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온 짧은 영어 동화책들을 활용했다. 아이가 책을 90% 혼자 읽을 정도가 되면 책을 바꿨다. 해당 책을 100% 완벽하게 읽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비슷한 단어나 문장들이 다른 책에도 반복해서 나온다. 10%포인트 차이를 줄이기 위해 계속 같은 책을 읽도록 강요하는 것은 영어 공부를 지루하게 할 뿐 이었다. 실제로 아이는 정말 지루한 책들은 “너무 재미없어. 안 하고 싶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할 때도 지루한 책들이 있었다. 두 세 번 밖에 읽지 않았는데 그냥 읽기 따분해지는 책들이었다. 그러면 과감히 접고 새로운 책으로 넘어갔다. 유사한 수준의 영어 표현인데도 이상하게 재미있는 책, 재미없는 책들이 구분됐다.
이런 방식으로 책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6~7분에 불과했다. 초반에 읽었던 책들의 분량이 워낙 짧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영어 공부 시간을 20분, 25분으로 늘렸다. 그때는 책의 내용도 길어졌기 때문에 책을 읽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그래도 전체 영어공부 시간의 절반을 넘지 않았다. 이렇게 책을 읽는 것을 영어 공부의 핵심 축으로 삼았다. 책이 짧을 때에는 2권의 책을 동시에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1년 넘게 꾸준히 공부하자 아이는 처음 본 책도 내가 먼저 읽어주기 전에 60~70% 가량을 혼자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쉬운 수준의 책일 경우에 말이다. 아이는 자기 스스로를 칭찬했다. “엄마, 나 생각보다 잘 한다.”
영어 책을 고를 때면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아이가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책을 골라 읽어줬다. 그래야 흥미를 유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가끔은 아이가 느끼기에 조금 어렵다고 생각하는 책을 고르는 것도 필요하다. 일단 그런 책을 들이밀면 세 번 정도 읽을 때까지는 싫어한다. 아이는 책이 어렵다고 했다. 사실 문장 구조가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잘 모르는 어휘들이 많이 등장한 것뿐이었다. 나는 그런 사실들을 아이에게 설명해줬다. 사실 책을 더 쉬운 책으로 바꿔야 하나 고민됐다. 그러던 와중에 아이는 아이디어를 냈다. 나에게 자기가 잘 모르는 단어를 적어서 벽에 붙여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줬더니 네 번째 읽을 때부터는 어려움 없이 읽어나갔다. 그 책을 열 번 읽을 때가 다가오니 아이는 자기 자신을 너무 기특해했다. “나 이 책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안 어려워”라며 신나했다. 이렇게 가끔 좀 더 수준을 높여 책을 읽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이가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방식은 영어 욕구, 동기를 유발시킨다.
아이가 자기 전에는 아이 수준보다 높은 영어 책을 한 권씩 읽어줬다. 공부 시간에 다뤘던 책보다 영어 길이가 더 긴 책이지만 아이가 흥미를 느낄 만한 재미있는 책을 골랐다. 이런 책들은 도서관에서 빌리기도 하고 중고 서점에서 사기도 했다. 중고 서점에서 책을 살 경우 책 가격이 한 권 당 2000~3000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혀 부담이 없었다. 이런 책 역시 반복해서 읽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 권을 선택해 매일 하루에 한 번 씩 읽어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렇게 밤에 자기 전에 아이에게 영어 책을 읽어주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이를 통해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영어로 된 책으로도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정도였다. 책 읽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는 많아도 엄마가 책 읽어주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는 드물다.
매일 하는 영어 공부 스케줄 내에서 영어 단어도 공부했다. 영어 단어 카드를 빠르게 넘기면서 내가 아이에게 알려주고 아이가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대략 5~10분 이내에 최대한 빠르게 영어 단어를 반복해서 보여줬다.
이렇게 공부를 하고 나면 3~5분 정도가 남았다. 이 시간 동안에는 일주일에 한 번 가는 영어센터에서 배울 책을 예습했다. 이 역시 영어 책 한 권의 내용을 파악하고 오디오 등을 활용해 노래를 듣는 방식이었다. 새로운 영어 책을 나가기 전에 흘려듣기로 많이 들려주는 것도 아이에게 영어에 대한 관심, 자신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아이가 영어에 관심이 없었고 싫어했기 때문에 아이가 지루하지 않게 하는데 방점을 뒀다. 잠시 물을 먹고 오거나 딴 짓을 하거나 화장실을 다녀올 때는 타이머를 멈췄다. 아이에게 공부하는 동안 다른 행동을 하면 공부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놀 수 있는 시간이 계속 줄어든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얘기해줬다.
아이는 점점 영어 공부를 하는 시간을 싫어하지 않았다. 영어를 그 전보다 많이 알게 된 영향이다. 자기가 아는 단어, 자기가 읽을 수 있는 영어 문장이 늘어나면서 그 전보다 좀 더 영어가 재미있다고 느꼈다. 처음 본 책도 자기 혼자 읽어보겠다고 나서고 오늘은 특별히 영어 단어 카드를 더 많이 공부할 것이라고 했다. 일단 아이가 영어에 점점 흥미를 느낀다는 것을 높이 샀다.
그러나 이럴 때 나는 오히려 아이를 자제시켰다. “영어 단어 카드만 그렇게 많이 하면 다른 공부를 할 시간이 부족해. 네가 놀 시간이 줄어들어”라고 말했다. 오늘 기분 좋다고 공부해야 할 분량을 확 늘리고, 어떤 날은 기분이 안 좋아서 공부해야 할 분량을 확 줄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영어에서 모든 기운을 빼면 다른 공부에선 힘이 빠지고 집중력이 떨어졌다. 어느 정도는 아이의 욕구를 들어줬지만 최대한 공부의 균형점을 맞추도록 도와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