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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야 Nov 08. 2019

책을 읽는 아이, 책을 좋아하는 아이

제2장 `하루 공부의 힘`을 믿는다 <사고력 키우기>

난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책보단 텔레비전이 좋았다. 심지어 공부를 하면서도 텔레비전을 봤다. 공부는 해야 하는데 텔레비전도 너무 보고 싶어서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공부를 하는 능력?을 터득했다고 해야 하나.(물론 텔레비전을 켜놓지 않고 공부할 때보다 집중이 안 된다. 같은 문장 세 네 번 읽어야 한다.) 나의 모든 쉬는 시간들은 텔레비전과 함께였다. 한 때는 프로듀서(PD)를 꿈꾸기도 했다. 그 만큼 나는 영상물을 보는 것에 익숙하고 편안함을 느꼈던 사람이다. 


더구나 자취생활을 혼자 오래하면서 불 꺼진 집,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집에 들어가는 적적함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집에 들어가자마자 불도 켜기 전에 텔레비전을 켜놓았다. 사람들의 말소리에서 얻는 편안함과 위로가 있었다. 


그러던 나는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위해 싫어하던 책들을 강제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도 미래를 위해 먹고 살기 위해 강제로 본 것이지, 즐긴 것은 아니었다. 취업 시험에 논술이나 작문이 있었고 글을 쓰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책을 읽어야 했다. `취업을 하기 위한 몇 권의 필독서` 위주로 접했다. 


결혼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한 후에도 책을 읽기보단 `텔레비전 틀어놓기`를 즐겼다. 남편은 `넌 왜 계속 텔레비전을 틀어놔? 보지도 않으면서..`라고 말하곤 했다. 남편 말대로 텔레비전을 틀어놔도 앉아서 집중해서 보기보다 그냥 틀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어렸을 때 생활했던 게 그대로 습관이 된 영향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텔레비전도 안식처가 되지 않았다. 회사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고 온 상태에서 텔레비전을 보면 잊힐 줄 알았는데 뭔가 답답한 마음이 들었고 마음이 공허했다. 텔레비전이 아닌 책이 주는 위로와 안식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 때부턴 재미있는 책이 있으면 퇴근 후 한 동안 책만 봤다가 텔레비전에서 재미있는 드라마나 프로그램이 나오면 그 때부턴 또 한참 텔레비전을 보는 식으로 했다. 그렇게 책과 텔레비전을 오가다가 어느 순간부턴 책을 보는 기간이 더 길어졌다. 


휴가 때도 책을 챙겨갔다. 해변가에 누워 책을 보는 게 나의 로망이 되기도 했다. 주말 동안 책 한 권을 다 읽거나 직장에 다니면서도 일주일에 두 권을 거뜬하게 읽은 적도 많아졌다. 내용이 흥미롭고 재미있거나 마음에 위로, 안식을 주는 책들은 책장을 넘기기가 아쉬웠다. 재미있는 드라마가 끝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과 비슷할 것 같다. 


텔레비전에 나왔던 한 명사는 “책을 읽는 것은 쾌락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쾌락이라...책에서 쾌락을 느끼기까지 난 30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아이가 이런 쾌락을 일찍 알게 된다면 삶을 누리는 깊이가 다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내 생각일 뿐 아이 역시 내 어린 시절처럼 책을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글의 90% 이상을 뗀 이후에도 책 읽는 것은 나에게 의존했다. 혼자 책을 읽는 것은 두렵고 어려워했다. 책을 더듬더듬 읽다보니 속도가 안 나고 답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가 읽어주면 책장이 술술 넘어가니 이해도도 빨라지고 더 편했기 때문이다. 책을 자유자재로 읽으려면 한글을 100% 떼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나는 한글을 90% 뗀 아이에게 `혼자 책 좀 읽어보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때는 아는 글자가 분명히 많아졌음에도 왜 아이가 혼자서 책을 읽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아이를 독서를 잘 하는 아이, 독서를 즐기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이에게 독서 칭찬스티커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공부 관련 스티커를 다 붙인 후에 선물을 사줬는데 공부 스티커 외에 독서 스티커까지 모두 붙여야 선물을 사주겠다고 전제 조건을 바꾸었다. 아이 입장에선 칭찬스티커 성공 기준이 높아진 것이지만 거부감이 크진 않았다. 칭찬스티커를 다 붙이면 선물을 사줬던 경험들이 반복된 결과다. 


독서 칭찬스티커의 기준은 한 권 당 하나이지만 보통의 책보다 두꺼운 책을 읽을 경우엔 2개 이상을 더 붙여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책 좀 읽어"라고 말하기 전에 스스로 책을 읽었을 때는 칭찬스티커를 훨씬 더 많이 붙여줬다. 스스로 한 일에 대해선 더 크게 칭찬해주기 위한 것이다. 독서 칭찬스티커를 채워나가는 속도가 느려질 땐 한 권을 읽었을 때도 넉넉히 인심을 써 4~5개씩 붙여줬다. 칭찬스티커를 완성하는 데까지 너무 오래 걸릴 경우 아이의 의욕이 떨어질 것 같았다. 


책도 모든 경험들과 마찬가지다. 책을 읽어봐야 책이 재미있는 줄 알지, 안 읽고선 어떻게 책이 재미있는 줄 알겠느냐 말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알고, 여행도 가 본 사람이 즐길 줄 안다. 나는 책이나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냥 아이에게 책 읽는 재미를 느끼게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책을 읽는 게 갑자기 즐거운 아이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재미있는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선 더욱 그렇다. 그냥 두면 유튜브 2시간은 꿀꺽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취업전선에 뛰어들기 위해 억지로 책을 읽으면서 그래도 책이 읽을 만하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책을 읽는 즐거움도 알게 됐다.


다만 나는 아이가 나 때문에 강제로, 칭찬스티커를 붙이기 위해 억지로 꾸역꾸역 읽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책을 읽기를 원한 것이지, 책에 있는 글자를 읽길 원한 것은 아니다. 즉, 책의 내용이 뭔지를 파악하고 최소한 재미없다, 재미있다 또는 슬프다, 기쁘다, 불쌍하다 등의 느낀 점이 있기를 원했다. 


나는 일종의 확인 작업이 필요했다. 나는 아이에게 책을 읽은 다음에는 나한테 책의 내용을 대충 설명해달라고 했다. 그만큼 나는 아이를 믿지 못했다. 단순히 칭찬스티커를 채우기 위해, 나한테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책에 있는 그림이나 글자를 읽은 것인지, 정말 책을 읽는 것인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한글을 더 잘 읽기 위해 독서를 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이럴 필요성을 못 느꼈다. 부지불식간에 아이가 정말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어느 날 도서관에 가서 2시간 내리 책을 읽고 나더니 변해있었다. 두꺼운 책도 거부감 없이 읽겠다고 덤볐다. 그러니 나는 더 이상 그 책이 무슨 내용이냐고 확인할 필요가 없어졌다. 물론 아이가 이렇게 변하기까지는 내가 본격적으로 아이와 공부를 시작한 후로부터 1년, 책 읽기를 강조한 이후로부터 반년 가량이 지나서였다. 


아이도 모든 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모든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찾기 어렵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책을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됐던 것은 학습만화도서 `와이(Why)`를 읽으면서부터였다. 만화책이다. 만화책이지만 무지 길다. 그리고 만화책이지만 재미가 없다. 와이 시리즈 모두를 좋아했던 것도 아니다. 와이 시리즈 중에서 아이는 나라와 관련된 것만 좋아했다. 만화책의 세계로 온 것인가 싶었지만 그 뒤로는 글자가 많은 긴 책도 쓱쓱 읽어나갔다. 


책을 싫어하는 아이가 있다면 아이들이 웬만하면 싫어하기 어렵다는 `엉덩이 탐정` 시리즈 등으로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보석 도난 사건 등을 엉덩이 탐정이 해결하는 내용인데 책에 나와 있는 단서들을 종합해 범인을 추적해가는 과정을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 `수학도둑` 시리즈나 `마법천자문` 등 만화로 구성돼 있는 책들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 중 하나다. 도서관에 가면 이런 책들은 책이 너덜너덜할 정도로 닳아있다. 


일부에선 만화책만 좋아할 경우 짧은 글에 익숙해져 긴 문장을 읽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책을 읽는 자체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도구가 만화책이라면 이 역시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더구나 만화책은 대체로 일반 책보다 길다. 만화책 한 권을 아이 스스로 다 읽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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