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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야 Nov 08. 2019

한글로도 안 쓰는 일기를 영어로?

제2장 `하루 공부의 힘`을 믿는다 <영어>

내가 아이에게 영어 공부를 가르치면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곳은 유치원이었다. 영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유치원 참관수업이었고, 영어 공부의 단기 목적도 유치원 수업을 따라가기 위한 것이었다. 


아이가 7살 때 다녔던 유치원에선 하반기부터 영어일기 쓰기를 숙제로 내줬다. 한글 일기와 영어 일기를 번갈아가면서 쓰도록 숙제를 냈다. 사실 알파벳을 겨우 알게 되고 이제 조금 읽을 수 있는 아이에게 영어 일기를 쓰게 한다는 것은 내 숙제나 마찬가지였다. 혼란스럽기도 했다. 7살 아이들의 영어 수준이 도대체 어느 정도여야 하는 것인가. 보통의 부모들이 말하듯이 ‘그냥 나는 우리 아이가 평범하게 자라줬으면 좋겠어’라고 하지만 학부모가 된 이후 평범한 게 뭔지, 평균 수준이 뭔지 알기 어렵다. 사실 아이 앞에 주어진 환경에 맞춰 살아가기 바쁘다. 


일단 나도 내 앞에 주어진 아이의 영어일기 쓰기에 충실하기로 했다. 유치원에선 일주일에 두 번만 영어로 일기를 쓰면 된다고 했다. 아이에게 오늘 일기에 어떤 내용과 어떤 문장을 쓰고 싶은지 물어봤다. 한글로 말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영작을 해 종이에 써주면 아이가 그 알파벳들을 순서에 맞춰 따라 쓰는 식으로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당시 아이의 영어 수준은 알파벳 대문자, 소문자를 읽고 쓸 줄 알았다는 것이다. 


처음 아이는 영어 일기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한글로도 맞춤법, 띄어쓰기를 제대로 못해 일기를 혼자서는 못 쓰는 판에 영어로 일기를 쓰려니 막막했던 탓이다. 나는 나중에는 영어일기 쓰기와 관련된 책 한 권을 샀다. 이럴 바에는 기본적인 표현을 영어일기를 통해 써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어일기에 쓰는 내용이 매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어일기를 계속 쓰다 보니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이 보였다. 처음에는 `영어도 제대로 못 읽는 아이가 뭔 영어 쓰기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강했지만 그게 외려 잘못된 교육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남동생은 유학 한 번 안 가보고 영어로 논문을 쓰고 영어로 대학생들을 가르친다. 동생한테 영어 공부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일단 `쓰기부터 해`라는 말이었다. 내가 영어 교육을 받았던 시절엔 문법부터 시작해 문제를 풀고 독해부터 했다. 그리고 쓰기는 가장 나중에서야 했던 것 같다. 사실 공교육에선 영어 쓰기는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독해를 통해 영어로 된 짧고 긴 문장들을 이해하고 문제를 푸는 정도가 전부였다. 


영어일기 쓰기의 장점은 아까 말했듯이 매일 비슷한 문장을 쓰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게 반복해서 쓰다 보니 아이가 문장의 순서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주어, 서술어, 목적어 등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학교에 갔다. 나는 유치원에 갔다` 등의 표현을 저절로 깨치게 된다. 어느 날은 내가 뭘 쓰고 싶은지 묻기도 전에 `I`를 먼저 써놓기도 한다. 어차피 ‘나는 유치원에 갔다. 나는 미술학원에 갔다. 나는 놀이터에 갔다’ 등의 문장으로 시작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기는 과거형으로 쓰는 게 보통이니 과거형 표현의 문장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유치원을 졸업하고도 영어일기 쓰기를 꾸준히 유지해주기로 했다. 일기라는 형식에서 벗어나도 상관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은 엄마에 대해 써보자, 오늘은 놀이터에서 처음 만난 친구에 대해 써보자` 등이다. 주말에 있었던 일 중에 재미있었던 일을 찾아서 쓰기도 했다. 나의 영작 수준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파파고(PAPAGO) 등의 영작 애플리케이션 등을 활용했다. 


영어 쓰기를 한 지 반년이 지나서 부턴 무조건 내가 먼저 써주고 그것을 받아쓰기보단 아이에게 어떻게 표현할지를 먼저 묻고 아이가 답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일기로 쓸 만한 내용이 생각나지 않을 때에는 영어일기 책에 나오는 표현을 살짝 바꿔 쓰도록 했다. 너무 길게 쓰면 아이가 영어일기를 쓰는데 부담을 느낄까봐 하루에 세 문장 정도만 쓰게 했다. 다 쓴 후에는 읽어보도록 했다. 자기가 어떻게 문장을 썼는지 알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영어일기를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면 20분, 짧으면 10분 정도다. 너무 길어지면 아이가 영어일기를 쓰는 그 자체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사실 영어일기를 쓰는 것은 아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 가장 싫어하는 공부 중 하나였다. 어느 날에는 ‘나는 영어 일기를 쓰는 게 싫다, 영어 일기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라고 쓴다고 해서 그렇게 쓰라고 하기도 했다.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할까?”라고 물으니 그건 아니고 “그냥 싫다”라고 쓴다고 한다. 세상에서 제일 싫다고 하면 써야 할 영어 문장이 늘어난다는 것을 알아서 일까. 아니면 정말 그 정도로 싫은 것은 아닐까. 아이가 영어일기 쓰기를 싫어하는 날에는 한 문장, 두 문장으로 줄여서 쓰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는 아이인지라 오늘 정말 쓰기 싫다고 해놓고 `이거 쓸래, 저거 쓸래` 하다 보니 문장이 길어지기도 했다. 매일 영어일기 쓰는 것이 어렵다면 번갈아 쓰거나 일주일에 한두 번 쓰는 식으로 바꿔도 된다. 다만 영어로 뭔가를 쓴다는 자체를 영어 공부 단계의 가장 마지막으로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영어로 다양하게 자극을 준다는 측면에서도 영어로 쓰는 것은 듣고 읽는 행위와 같이 가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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