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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야 Nov 08. 2019

괴물 엄마가 되지 않으려면...

제1장 나는 그저 네가 밝고 행복하길 바랄 뿐이었는데..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다보면 아이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아무래도 아이가 공부에 제대로 집중하지 않을 때 나로선 슬슬 화가 나고 짜증이 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 “참자 참자”를 외칠 때가 백 번 정도는 있는 듯하다. 결국엔 화가 나 소리를 칠 때도 있다. 


나도 최대한 화 내지 않고 기분 좋게 하고 싶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 특히  나는 아이가 집중하지 않고 성의 없이 할 때 가장 화가 났다. 어느 때는 속이 터질 듯 했다. 아마 자기 자식의 수학 문제를 한 번 가르쳐보면 알 것이다. 그러나 아이는 내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지 모르는 듯 했다. 영어 단어를 몰라서, 문제를 틀려서 등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사실 나는 그러지 않았고 그렇게 아이가 생각할까봐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는데도 말이다. 


어느 날 아이가 영어 책 읽기를 너무 대충 하기에 나는 그 행동을 지적했다. 그 뒤로 계속 집중해서 잘하다가 수학 문제를 풀었다. 아이는 수학 문제를 자기가 알아서 풀 테니까 나는 다른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그래서 알았다고 하고 수학 다 풀었다고 해서 가보니 정말 다 풀어져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문제는 사다리 타기 식으로 더하기를 하는 것인데 도대체 나조차도 어떻게 푸는지를 모르겠다 싶었다. 사다리 타기를 하는 법도 모르는 아이는 오죽했을까. 아이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냐고 물었는데 답을 못 했다. 맨 뒤에 나와 있는 정답을 보니까 다 맞긴 했다. 뭔가 찝찝하고 싸늘한 기운이 흘렀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이 문제 풀 때 답 보고 했어?” 아이의 답이 묘하다. “기억이 안나” 거짓말 하는 정치인들이나 할 법만 말을 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런데 아이는 기억이 계속 안 난다고만 한다. 방금 전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서 기억이 안 난다니..그때가 12월이었다. 나는 “엄마가 다시 한 번 물을게. 니가 지금 여기서 거짓말을 하게 되면 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 안 주실 거야. 사실 대로 말하고 답을 봤다고 해도 엄마는 절대 혼 내지 않아” 이렇게 말했는데도 아이는 계속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아니라고 하는 아이의 말을 거짓말로 취급할 수는 없었다. 일단 문제집에 맞았다고 동그라미를 쳤다. 그래도 너무 찝찝했다. 나는 아이에게 “평소에 너는 답을 보지 않잖아. 답을 안 봤으면 안 봤다고 말해야지. 왜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해? 그건 이상한 거야” 이렇게 말하고 “마지막으로 기회 줄게. 거짓말을 한 거면 크리스마스 선물은 못 받고 사실 대로 말하면 그게 답을 봤다고 해도 엄마는 절대 혼내지 않아” 라고 하니까 아이는 “답을 본 것 같기도 해”라며 울먹였다.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면서 “용기 내줘서 고마워” 라고 말했다. 아이는 혼날 줄 알았는데 내가 혼을 내지 않은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나는 다음에 같은 행동을 할 경우 혼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동시에 나는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 몰랐으면 엄마를 부르면 될 것인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답을 보면서 빈칸을 채운 아이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엄마에게 혼날까봐 그런 것인가. 나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부모가 아이에게 직접 공부를 가르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 자기 자식이라면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일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아이 공부를 학원 등에 맡기려고 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많은 칭찬과 격려가 필요한데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에는 차라리 `내 자식과 거리두기`를 하는 편이 좋다. 내가 방문교사라면, 남의 아이가 저 정도의 집중력을 보인다면 그래도 지적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할까. 


아이와 놀이동산에 간 적이 있다.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데 내 뒤에 3살쯤 돼 보이는 아이가 섰다. 기다리는 시간이 20분 정도 되니 아이가 지겨운 듯 했다. 내 다리를 툭툭 치면서 짜증을 냈다. 그리고 드디어 놀이기구를 타게 됐다. 그 놀이기구는 아이 혼자 타게 된다. 그러나 아이는 부모에게 울면서 타기 싫다는 신호를 계속 보냈다. 놀이기구를 운행하는 사람도 아이가 울고 있으니 부모에게 여러 차례 그냥 타게 둬도 괜찮겠냐고 확인한다. 부모는 괜찮다고 얘기한다. 아이가 놀이기구를 타는 과정에서 아이가 몸부림치거나 일어서기라도 하는 등 돌발행동을 할 경우 사고로 이어질 게 뻔했다. 그 아이로 인해 놀이기구 운행에 시간이 걸리기 시작했다. 놀이기구 운영자는 아이가 놀이기구를 탈 수 없다고 판단했고 결국 그 아이는 놀이기구를 타지 못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아이가 저렇게까지 울면서 놀이기구를 타지 않겠다고 하는데 저 부모는 왜 굳이 태우려할까라고 생각했다. 20분간 기다린 게 아까워서? 아이는 20분 기다리는 동안 이미 짜증이 나버렸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면 되는데 놀이동산에 와서까지 저 부모는 왜 자기들의 생각을 아이에게 강요할까.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이런 생각들을 했다.  


그러나 그게 내 아이가 되면 쉽지 않다. 아이와 목욕탕에 갔다. 아이는 냉탕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한 번 들어가게 해줬다. 아이는 또 다시 냉탕에 들어가길 원한다. 나는 안 된다고 한다. 아이는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가며 움직일 것이고 그러다가 미끄러질 수 있다, 냉탕에 오래 있다가 감기 걸리면 어쩌나, 냉탕 물은 온탕 물보다 비교적 깊은데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등등의 생각 때문이다. 아이는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시무룩하다. 나는 신경이 쓰인다. 한 번 냉탕에 들어가게 해줬으면 거기서 만족해야 하는데 시무룩한 아이를 보고 짜증이 난다. `나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줬는데 왜 아이는 자꾸 더 원하기만 할까`라는 생각까지 든다. 


나 혼자 쓴 소설에 가까운 생각들이다. 남의 아이라면 나는 이 광경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어차피 나는 때도 밀어야 하고 아이는 그동안 혼자 놀아야 한다. 어릴 때야 내 옆에 대야라도 갖다 놓고 장난감을 만지며 놀게라도 하지, 이제는 가만히 앉아서 물놀이할 나이도 아니다. `내 아이가 남의 아이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자 냉탕에 들어가게 하는 게 전혀 문제가 안 됐다. 또래 아이들도 이미 냉탕에서 놀고 있었다. `남의 아이였다면`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더 많을 것이다. 지적할 일, 혼 낼 일도 줄어든다. 그렇게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가며 열심히 놀고 나서 아이에게 이제 네가 씻어야 할 시간이라고 알려주니 군말 없이 따라온다. 냉탕에 들어가게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아이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내 기분까지 망칠 뻔 했다. 내가 아이의 행동을 보고 즉각적으로 드는 감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두기`를 하면 그 상황이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참다 참다 감정이 폭발하기 직전이라면, 판 자체를 흔들어볼 필요가 있다. CCTV로 내가 내 행동을 보고 있다면 나는 어떤 판단을 내리고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아이에게 화내고 지적할 일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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