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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야 Nov 08. 2019

엄마를 불안하게 하는 노란버스

제1장 나는 그저 네가 밝고 행복하길 바랄 뿐이었는데..

나는 아이를 위해 공부에 대한 학원을 최대한 늦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결심하게 된 것은 4살 때 사교육에 실패한 경험이 크다. 그러나 아이가 숙제를 싫어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됐다. 


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 미술학원에 다녔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5살 때부터 미술학원을 꾸준히 다녔었다. 새로 옮긴 미술학원은 1시간이나 1시간 반 정도 수업을 하는데 선생님이 우리 아이는 2시간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줬다. 아이가 1시간 반 수업을 한 후 할머니가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그때마다 아이가 더 하고 싶다고 해서 특별히 2시간을 허용한 것이다. 아이는 그렇게 미술학원에서 2시간 내리 그림을 그리고 와서도 집에서도 그림을 그렸다. 팬과 종이만 있으면 어떤 그림이든 그린다. 우리 아이한테는 이게 놀이고 재미다. 


이럴 정도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가 유치원에서 숙제로 내주는 그림일기 쓰기는 싫어했다. 그림일기는 글자를 쓰는 것은 몇 줄 안 되고 그림 그리는 게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데도 뭔가 주어진 상황에 강제로 그려야 하는 것은 아이도 싫은 듯 했다. 더구나 그게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라도 말이다. 내가 아이에게 `대충 그려, 대충 써, 그냥 오늘 쓰지 마` 이렇게 말해도 선생님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인지 꾸역꾸역 해나갔다. 이런 아이에게 벌써부터 각종 공부와 관련된 학원에 다니게 하며 산더미처럼 쌓일 숙제를 생각하니 암담했다. 그나마 좋아하게 된 공부도 아예 거부감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됐다. 


나는 워낙 시골에서 자라 학원이라고 다녀본 것은 피아노 학원 정도가 전부였다. 공부와 관련된 학원은 아예 다녀보질 않았다. 그런데도 학교 공부를 하는 데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이런 나의 경험 때문인지 아직은 자기 스스로 하는 공부가 더 필요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정말 자기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꼈을 때 학원을 보내도 늦지 않는단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결심을 지켜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해서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이가 7살 가을이 되면서 어머님을 통해 유치원 친구들이 하나 둘씩 일찍 하원해 학원에 다닌다고 들었다. 어머님이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가면 대여섯 명 남는다는 것이다. 그 전까진 2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같이 하원했는데 4분의 3이나 되는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사고력 수학이나 초등 대비 영어학원 등으로 흩어졌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 영어를 배우지 않는다고 엄마들이 영어학원에 보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치원 때 영어 공부를 열심히 시키다가 초등학교 1, 2학년 때 안 하니까 영어를 공부했던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시킨다. 어차피 초등학교 3학년 때 배울 것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부터 배우면서 차차 아이들의 실력을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유치원 때 하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다시 하니 또래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겠다. 당연히 아이가 어느 정도여야 또래에 비해 크게 뒤처지지 않을까에 대해 혼란이 생긴다. 그러다보니 이런 기준을 알 수 있는 곳은 당연히 학원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가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되면 좋을 텐데 그런 게 사라지니 학원에서 배우는 영어가 가이드라인이 된다. 학원에서 정한 7~8세 수준이 아이들의 영어 수준이 되는 것이다. 이는 당연히 학교에서 정할 때보다 그 기준선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학교 주변으로 노란 학원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고 마을에 다양한 노란 버스들이 수시로 돌아다닌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 아이가 학원에 가지 않고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심지어 초등학교 입학 전 유치원 겨울 방학이 다가오자 단기 영어캠프를 떠나는 친구들도 생겼다. 일부에선 어렸을 때 영어를 모두 끝내놓고 정말 시험이 중요해지는 시기에 암기 과목 위주로 접근해야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아이 초등학교 입학이 다가오자 내 마음이 더 불안, 초조해졌다. 굳건했던 마음들이 흔들리면서 판단력도 흐려졌다. 정작 아이는 괜찮다는데 엄마인 내가 초조해졌고 이런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분명히 이런 나의 감정들은 아이에게 티가 날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 아이는 나로 인해 얼마나 불안해할 것인가. 아이에게 또 미안해졌다. 


천천히 한 걸음 뒤에서 생각해봤다. 앞으로 이런 일이 얼마나 숱하게 일어날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럴 때마다 이렇게 불안하고 초조해할 것인가. 나는 좀 더 초연해질 필요가 있었다. 현실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일단 돈이다. 부모 세대에서 해결이 안 돼 할아버지의 재력이 필요할 만큼 `옛날부터 부자, 원래 부자`여야 사교육비 충당이 가능한 게 현실이다. `이쪽으로 갔더니 아닌가봐, 그럼 그쪽으로?, 그것도 아니면 저쪽으로 갈까` 등 실패했을 경우에도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만큼의 재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 같은 소시민은 사교육비에 모든 것을 쏟고 그 결과가 실패로 끝날 경우엔 대안이 없다. 아이의 교육비 뿐 아니라 내 노후까지 걸린 일이다. 사실 성공했을 경우라도 아이가 잘 되는 것이지, 내 형편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아이 인생이 잘 되는 것이지, 나는 더 가난해질 것이다. 


장기전이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게 무엇이 됐든 지속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를 믿고 지지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흔들릴 때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이 상당히 중요하다. 또래 아이를 키우는 다른 엄마들의 얘기도 중요하겠지만 이런 불안한 마음들을 지나 청소년을 키우는 엄마들 또는 가장 최근에 입시지옥, 취업 전쟁에서 탈출한 20대 등의 얘기들을 들어봐야 한다. 사방에 귀를 열고 그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아무리 돈을 들여 학원 수 십 군데를 다녀도 할 아이들은 하고, 안 할 아이들은 안 한다. 지금 빨리 간다고 결코 먼저 도착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는 우리 아이만의 속도가 있다. 이 아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시험을 잘 보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문제를 맞히는 데 있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무자비하게 문제를 틀리고 거기서 왜 틀렸는지 궁금해 하고 그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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