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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야 Nov 08. 2019

퇴근 후 `30분` 공부 가르치기

제1장 나는 그저 네가 밝고 행복하길 바랄 뿐이었는데..

영어 공부의 필요성 때문에 아이를 직접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지만 이왕이면 나만의 교육 철학과 원칙을 세워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떤 아이로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일단 나는 우리 아이가 사고를 넓고 깊게 하는 아이였으면 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학습에 있어서 아이가 또래 친구에 비해 크게 뒤처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부는 못해도 좋은데 자존감이 낮아지는 상황은 절대로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는 역으로 공부도 어느 정도해야 한단 생각으로 귀결됐다. 


퇴근 후 내가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저녁 7시 반에서 8시 반 정도였다. 그리고 공부 시간은 30분으로 정했다.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매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매일 같은 것을 반복한다는 것의 힘을 믿었다. 아이가 30분 공부에 충분히 적응한 후엔 공부시간이 길어졌다. 아이가 커가면서 조금씩 공부할 거리를 늘려나간 영향이다. 


그래도 나는 공부를 빨리 끝내고 쉬고 싶은데 아이가 이것저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간이 길어지기도 했다. 궁금한 게 생기면 핸드폰으로 검색해 이미지 등을 찾아달라고 했다. 특정 인물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했다. 주변에 활용할 학습거리들이 넘쳐난다. 그런 것까지 보다보면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7살 때는 공부 시간이 한 시간 정도 지나가면 내가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아이는 공부를 싫어할 거야`란 생각 때문이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아이를 재촉하기도 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나 스스로도 헷갈렸다. 내가 너무 피곤해 빨리 공부를 끝내고 쉬고 싶단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공부하는 이 시간을 통해 나와 상호작용을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아이에게 이 시간은 그리 힘든 시간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화내고 짜증내고 하면 아이도 이 시간이 너무 싫겠지만 그러지 않고 부드러운 말투로 얘기할 때면 아이는 쉽게 나를 따라왔다.


공부 시작 시간이 밤 9시를 넘어갈 경우엔 아예 공부를 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 잠자는 시간도 고려해야 하고 아이가 공부 끝나고 놀고 싶어 했기 때문에 공부 시간이 늦어지면 아이의 만족도와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너무 늦게 재우지 않기 위해서도 이런 원칙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반복해서 공부할까. 6살 때부터 한글 떼기를 시도했지만 100% 모든 글자를 자유자재로 읽고 쓰는 상태가 아니었다. 특히 내가 원하는 `사고력 확장` 등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선 한글은 포기할 수 없는 과제였다. 


두 번째는 영어다. 영어 수업 시간에 위축됐던 아이의 모습을 보고 `퇴근 후 공부`를 시작하기로 한 만큼 영어도 놓칠 수 없었다. 수학도 마찬가지였다. 사립유치원에선 본격적으로 연산을 가르쳤다. 숫자도 제대로 못 셌던 아이는 유치원을 옮긴 초반 수학이 너무 어렵다고 한숨을 쉰 적이 많았다. 


정리해보면 `공부`와 관련된 학습은 한글, 영어, 수학으로 구분됐다. 결국 엄마인 내가 퇴근 후 보충해줄 수 있는 공부의 선은 여기까지였다. 


그러면 뭘 어떻게 할 것인가. 6살 때 한글 떼기를 했던 방식으로 책을 주구장창 읽어나는 것은 이제 별 의미가 없는 듯 했다. 글자를 모르지 않았다. 가끔 모르는 글자가 하나씩 튀어나올 뿐이었다. 반면에 글자 쓰는 것은 약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책을 읽었을 때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 무엇을 느꼈느냐다. 어떤 유치원에선 책을 읽고 독서 노트를 숙제처럼 쓴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이런 방식을 활용키로 했다. 하루 10분이면 됐다. 독서 노트라고 거창할 것 없다. `재미있다, 재미없다, 슬프다, 기쁘다` 등 책을 읽고 느낀 점 한 줄부터 시작하면 된다. 


영어는 아이가 잘 못할 뿐만 아니라 공부를 시작했던 당시에는 싫어했던 영역이었기 때문에 15분을 정해놓고 하기로 했다. 타이머로 15분을 쟀다. 여기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유치원에서 아이에게 나눠주는 책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이든 유치원이든 한꺼번에 많은 책들을 가져올 때가 있었다. 그동안 나는 그 책들을 그냥 아이 방 한쪽에 쌓아놓고 한 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유치원에서 얼마나 배웠겠어`라며 얕잡아봤다.


아이 4살 때부터 유아 영어 교재를 들여놨기 때문에 `내가 해주는 영어 교재도 있잖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값비싼 유아 영어책은 집 한구석에 가만히 놓여있을 뿐이고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주거나 DVD도 틀어준 적이 없었다. 


또래 집단 내에서 자신감을 찾고 유치원 수업에서 위축되지 않기 위해선 유치원에서 보내준 책들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 책들과 유치원에서 제공한 영어 단어 카드 등도 함께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어는 하루 15분으론 부족했다. 영어는 듣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듣기를 일상화하는 방안도 고민했다. 정말 어떤 때에는 `닥치고 (영어)노출`이란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은 수학이었다. 서점에서 기초적인 더하기빼기 문제집 등을 사서 한 쪽씩 풀었다. 아이가 즐겁게 충분히 풀 수 있는 수준의 문제집으로 시작했다. 하루 한 쪽에 불과한 양이기 때문에 아이가 집중한다면 5분, 10분이면 끝이 났다. 유치원에서도 본격적으로 연산 공부를 하고 있어서 아이가 더하기빼기 등을 아예 모르지는 않았다. 연산도 반복해서 해야지, 너무 쉽게 까먹는다. 그러니 안 하기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요즘엔 사고력 수학이다 뭐다 해서 연산보다는 문제를 읽고 이해하고 자기만의 식을 만드는 방식이 강조되고 있지만 연산을 무시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수학은 시간이 지날수록 일종의 법칙이고 공식이고 약속이다. 우리가 그 법칙과 약속을 알고 있다면 좀 더 쉽게 그 길로 갈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퇴근 후 30분 공부` 계획이 완성됐다. 이 계획은 반드시 아이의 승인이 필요했다. 


공부를 하고 서 너 달이 지나자 어느 날 아이는 `영어 공부를 왜 해야 해?`라고 물었다. 처음보단 자기 실력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재미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네가 나중에 직업을 구하려면 등등`의 얘기를 해줬지만 아이는 별로 공감이 안 됐을 듯하다. 아이는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일상에서 영어를 하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었다. 


영어에 재미를 느낄 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필요성을 느끼게 해줄 만한 공간을 접하게 해주는 것도 방법인 듯하다. 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마다 영어 문화센터 등을 다녔는데 거기에서 만난 아이들도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과 심지어 아이보다 훨씬 어린 아이들도 영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왜 영어 공부를 해야 해?”라고 말하는 횟수가 줄었던 것 같다. 주말마다 아이와 영화를 보는 시간을 가졌고 아이는 그 시간을 아주 좋아했다. 그런데 알다시피 유명 애니메이션이 대부분 영어로 돼 있다. 우리말 더빙도 나오지만 늦게 나오거나 없는 애니메이션도 많았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그냥 영어 버전으로 아이가 영화를 보기도 했다. 한글 자막이 나오긴 했으나 아이가 자막을 읽는 속도보다 자막이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어느 부분은 한글을 보면서 이해하지만 자막을 못 읽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그냥 한글 자막까지 노출시켰다. 아이가 거부감이 들지 않게 영어를 노출시키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영어에 대한 아이의 거부감을 줄인 것은 아이의 영어 실력이 점점 늘어나서다. 잘하면 즐겁다. 성취감은 동기를 만든다. 그것이 아주 작은 일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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