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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이야 Nov 07. 2019

아이 교육이 다 엄마 책임이라고?

프롤로그 

‘82년생 김지영’에겐 어떤 출구도 없었다. 나랑 동년배인 여자가 주인공인 이 베스트셀러 소설을 읽으며 나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나도 어릴 때 자라면서 남아 선호 사상을 온 몸으로 느꼈었다. 두 살 아래 남동생은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아도 온 집 안의 기쁨이 되는 듯했다. 나는 엄마, 아빠, 할머니, 남동생과 같이 살았는데 할머니의 `남아선호사상`은 더 뿌리가 깊었다. 좋은 것, 맛있는 것들은 모두 다 남동생 차지였던 것 같다. 나는 수차례 전략을 짜고 떼도 쓰고 졸라야 이뤄질까 말까 한 것들이 남동생은 참 쉽게도 됐다. 우리 엄마는 내가 “엄마, 나 자장면 먹고 싶어”라고 하면 “너 혼자 가서 먹고 와”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그런 말들은 “안 돼”란 말보다 더 무서운 말들이었다. 엄마는 “나는 너한테 먹고 오라고 했다. 니가 용기가 없어서 못 한 거지..”라며 자장면을 못 먹게 된 것을 내 탓으로 돌렸다. 내가 식당 가서 다른 사람 눈치 안보며 혼자 밥을 먹게 된 것은 아이를 낳은 이후부터였으니 까마득하게 어릴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남동생이 말하면 금방 뚝딱 해결됐다. 나는 민원의 상당 부분을 남동생을 통해 처리하곤 했다. 나는 엄마, 아빠의 예쁨을 받으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공부만이 내가 사랑받는 길이라고 여겼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자라 어렵사리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딸아이를 낳았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 남아 선호 사상은 사라진 듯 했다. 오히려 애교 많은 딸을 선호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남녀평등을 강조했고 교육에서도 차별을 받지 않았고 일하는 여성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심지어 왜 여자 아이는 분홍색, 남자 아이는 파란색 옷이어야 하느냐는 색깔 논쟁부터 시작해 장난감, 역할 등에 대해서도 고정관념을 없애려는 시도들이 많이 생겼다. 


반세기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세상이 이렇게나 변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아이를 낳은 후 내가 하는 일을 자꾸 돌아보게 됐다. 일을 그만두고 아이만 키웠을 때와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내가 일을 했을 때의 기회비용 등을 계속해서 저울질해야 했다. 이런 고민들은 같은 시대를 살아 온 우리 남편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들이었다. 


실제로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에 보내면서 느꼈던 것은 생각보다 나와 같은 처지의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자아실현이라고 생각한 내 직업과 직장 생활은 `혹시 나 가난해서 돈 버는 거니?`라는 의문을 들게 했다. 어느 정도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직장에서 만나게 되는 주변 워킹맘들도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는 말들을 종종 꺼냈다. 나보다 더 높은 연배의 선배들은 “견뎌라, 버텨라, 아이는 스스로 잘 자란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뭔가 아쉬운 자식의 인생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직장 내에서 승승장구는 못했지만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낸 동료들을 은근슬쩍 부러워하기도 했다. 세상은 변한 듯 했으나 `엄마`라는 이름으로 맡겨지는 역할과 사회적 기대 등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자의반 타의반 아이와 관련된 엄마의 역할은 아빠가 하는 일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게 내 책임감과 조바심 때문인지, 나는 남편보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욕심이 덜하기 때문인지, 사회적으로 강요된 어떤 역할에 나도 모르게 적응해버린 탓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엄마로서 살면서 점점 `뭐야? 생각보다 달라진 것은 없잖아...`란 씁쓸함과 답답함을 느꼈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들은 나의 아이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후 육아, 교육과 관련된 글을 쓰면서 생뚱맞게 `82년생 김지영`이란 책 얘기를 먼저 꺼낸 이유다. 


`일을 해야 하나, 그만둬야 하느냐`에 대한 갈등은 아이가 아주 어릴 때보다 또래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고 교육에 눈을 뜨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절정을 이룬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경력단절 여성 현황`에 따르면 경력이 단절된 여성은 작년 4월 184만7000명으로 1년 전보다 1만5000명이 증가해 4년 만에 첫 증가세를 보였다. 경력이 중단되는 여성의 자녀 연령은 어린이집, 유치원에 다니는 6세 이하가 64%(95만1000명)로 가장 많았고 초등학생(7~12세)도 24.3%(36만1000명)에 달했다. 10명 중 9명가량이 아이의 양육, 교육 등을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는 셈이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땐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것은 아빠나 할머니, 베이비시터 등도 얼마든지 가능할지 모른다. 보통 세 살 이하의 아이에게는 애착관계 형성이 중요한데 그 대상이 반드시 엄마일 필요는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할머니든 베이비시터든 아빠든 엄마가 굳이 아니어도 애착관계를 형성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아이가 교육 단계에 접어들면 이상하게 이는 오롯이 엄마의 몫으로 남는다. 어느 동네에서, 어느 초등학교에서 아이를 교육 할지부터 시작해 학원을 다닐지 말지, 다닌다면 어느 학원을 다닐지, 아이의 교우 관계를 위해 엄마들의 모임에 어떻게 하면 낄 수 있을지 등이 모두 엄마의 일이 된다. 이때부터 상당히 당황스럽다. ‘아이의 성적표는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라고 하던데..`라는 생각부터 ‘공부 잘 한다고 성공하는 세상이 아닌데..’란 생각까지..그러면서도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 인생이 아니지만 아예 모른 척 할 수 없는 내 아이의 인생에 대해 나는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


나는 나의 직업과 아이, 어느 한 쪽의 희생도 용납하기 어려웠다. 아이가 행복하지 않은 데 내가 직장에서 승승장구한다고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그 대안으로 나는 아이에게 `퇴근 후 공부`를 시키기 시작했다. 아이가 7살 되던 해, 초등학교 근처로 유치원을 옮기면서 공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자존감과 자신감은 엄마가 무조건 아이에게 “잘한다, 잘한다”해서 생겨나지 않는다. 아이를 우리 안에 가둬 기를 수 없다. 아이는 아이가 접하는 환경들, 또래 집단 내에서 자존감과 자신감을 키운다. 그런 자존감 키우기의 일환으로도 공부는 필요했다. 아이와 함께 공부를 하게 된 계기와 경험들, 몸소 느낀 교육에 대한 짧은 생각들을 책에 담았다.  


서점에 나온 육아나 교육책을 들춰보면 소아정신과 전문의나 직접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이 낸 책들이 많지만 거기에는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해선 나와 있지 않다. 마치 `나무 가꾸기나 요리책` 같은 느낌마저 든다.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을 얼마나 넣고 물을 얼마나 자주 줘야 된다는 것과 아이를 키우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몇 권의 육아서를 봤지만 그것을 현실에 적용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육아서에 정답은 없었고 늘 그렇듯이 삶에도 정답이 없다. 아이 교육과 이에 대한 내 생각은 전적으로 내 경험에 의존한 것으로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다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이 책이 나처럼 일하면서 아이를 교육하고 키워내야 하는 워킹맘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공감이 됐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나의 경험을 빗대보면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인디언 속담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온 마을까지는 아니어도 남편과 육아 조력자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나는 행운아에 가깝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나와 아이, 남편이 지금처럼 제자리에서 별 탈 없이 살 수 있게 된 것은 한 여성의 위대한 사랑과 희생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나의 시어머니이자 아이의 할머니는 내가 10개월 된 아이를 맡기고 회사에 복직한 이후부터 줄곧 아이를 맡아 키워주셨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를 반복하셨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등원, 하원을 맡아주셨고 나와 남편의 저녁밥을 챙겨주시고 집 청소까지 해주셨다. 내가 밥을 하고 청소와 빨래를 하는 등의 문제를 신경 쓰지 않고 일과 아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셨다. 그러고도 불평 한 마디 없으셨다. 아이의 말도 안 되는 짜증도 너그럽게 감싸셨다. 그런 위대한 사랑의 힘으로 우리 가족은 지금도 안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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