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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Apr 13. 2021

욕 먹고 돈 번다 (1탄)

간호사의 주사 이야기

욕을 먹었다. 대놓고 욕을 하거나 삿대질을 하지는 않았지만 미묘한 심리상태로 긴장을 하게 만들었고 마음의 위축과 긴장은 손까지 덜덜 떨게 만들었다. 검사준비를 위해 18게이지 바늘을 삽입하는 일은 익숙하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한숨 돌릴만하면 다시 몸이 뻣뻣해지고 긴장하게 된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한두번의 실수가 그 이상을 넘어가면 서로의 마음에 상채기를 내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아무렇지 않은 척 묵묵히 다시 한번 해볼게요. 하지만 속으로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이번에 또 안되면 어떻하지?' 걱정과 불안감으로 가득차게 된다.


주사는 예민한 과정이다. 10여년전 나는 강동경희대병원 초창기 신규간호사로 입사했다. 모든 경험이 전무했고 소아과병동에 배치되었다. 맨 땅에 헤딩하는 격이지만 다행히 함께 시작하는 경력간호사들이 있어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간호대학을 다니면서 방학 동안에는 실습을 하지만, 실습과 임상경험과는 사뭇 다르다. 환자와 보호자를 대함에 있어 실습을 하는 동안 나는 학생이었고 주눅을 들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신규간호사로 아무것도 모르는 채 몸으로 직접 경험하고 부딪히고 깨지면서 나는 그렇게 임상경험을 터득해나갔다.


소아과는 특히 주사에 더욱 민감하다. 내가 엄마가 되어 보니 아기를 꼬옥 끌어안고 있던 보호자의 마음이, 주사가 한번 두번 실패할때마다 예민해지던 부모의 마음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태어난 지 한달도 채 안된 아가들부터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혈관주사를 수행했다. 새로 개원한 병원이었기 때문에 처음은 산부인과 병동과 함께 있었고, 이후에는 이비인후과 병동과 소아과가 함께 병실을 운영했다. 성인남자, 성인여자를 대상으로 입원간호를 수행하면서 점차 혈관주사에 적응해갔다. 물론 실패도 많이했다. 특히 소아어린 아기들의 경우 성인처럼 혈관주사를 실시할때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울고 불고 몸을 빼고 팔을 잡아빼는등 집중력을 요구하는 순간순간이 많았다. 주사바늘을 삽입하는 데 성공하면 팔을 움직여 바늘이 빠지기도 하고, 바늘을 찌르기도 전에 고정하느라 진이 다 빠지기도 했다. 다양한 상황과 여러순간들이 있었지만 제일 힘들었던 건 주사를 실패했을 때다. 어린아기들은 말을 할수가 없고 아기 곁에 있는 엄마아빠가 역정을 내고 소리를 지르고 담당의사 불러오라고 컴플레인을 했다.


아주 갓난 아기들은 인턴이나 레지던트 소아과 의사가 혈관주사를 잡기도 했다. 오픈된 공간이 아니라 간호사 스테이션 안에 처치실이라는 공간 안에서 아이만 데려와 간호사들이 아이를 안고 고정하면 의사가 혈관주사를 놓는 식이다. 문 바로 앞에 아이가 소리를 빽빽 지르며 기절할듯이 울어대면 (사실 잡기만 해도 그리크게 울어버리는 부모는 속이 타들어간다) 엄마아빠는 발을 동동구르며 아이가 주사바늘에 계속 찔리는 줄 알고 긴장하고 속을꼭 잡고 어느순간 눈물까지 흘리는 것이다.


생후 100일경부터 통통해지고 생후 7~8개월 경이면 팔다리에 살이 통통해져 혈관주사는 가장 어려운 시기가 온다.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돌전후에 혈관 찾기가 어렵고 여러번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한번 두번 세번 네번... 정말 꼭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입원하기 때문에 두세번 실패하면 간호사나 의사도 손을 바꿔보기도 하고 조금 쉬었다 다시 시도해보기도 한다. 탈수가 정말 심한경우는 수액치료를 긴급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아주사는 성인과는 다르게 혈관이 육안으로 확연히 보이지 않는다. 성인남성의 경우 토니켓을 묶으면 울뚝불뚝 혈관이 솟아나는 것이 눈에도 선명히 보이지만 (그래서 처음 혈관주사를 시도할 때 성인남성을 대상으로 하면 성공률이 높다) 소아는 토니켓을 묶어도 혈관 확인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손으로 만졌을 때 감으로, 직감으로 혈관주사를 하고, 정말 가끔은 혈관의 위치를 짐작하여 손으로 촉감을 느끼면서 혈관주사를 한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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