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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Apr 14. 2021

욕 먹고 돈 번다 (2탄)

간호사의 주사 이야기

보호자의 욕은 많이 들었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환자에게서 소아환자의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욕을 들었다. 주사가 전부이기에 대부분의 컴플레인은 주사에서 시작하고 주사에서 끝난다. 임상경력 3년이 지나가면 어느정도 주사스킬에 익숙해지기도 하지만, 컴플레인에는 익숙해 지지 않는다. 한번에 성공하면 제일 좋은것이고, 두번째에도 실패하면 다른 간호사와 손을 바꾸면서 다시 시도해보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잠시 병원임상에서 벗어났다. 주사를 놓지 않는 기간이 길어졌고 서류작업, 컴퓨터 작업을 주로하는 간호사의 또다른 일에 몸을 담았다. 이사를 하고 종합병원의 간호사로 다시 주사를 접했다. 3년, 5년이 지나가는 동안 간호사라는 맥락 안에서 일하는 위치만 바꾸면서 간호사로 꾸준히 일했다. 주사를 많이 놓기도 하고 적게 놓는 부서에 배치되기도 했다. 개인병원에 잠시 입사한 적도 있었고 소아전문 병원에서 일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vein viewer 라는 기기가 생겨서 혈관을 찾고 혈관을 확인하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소아전문병원 주사실에 입사해서 업무를 익히면서 기기를 접하고 사용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혈관주사를 한다는 건 간호사라는 사람이 직접 주사의 깊이와 길이를 알고 혈관바늘을 삽입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기기가 도움은 될 수는 있지만, 그것만 있으면 백프로 성공한다는 것은 아니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가능하다면 능숙하게 한번에 성공하는 것이 제일 좋다. 


함께 일하던 간호사가 한 말이 기억난다. 


"한 번에 성공하라고 부담주면 간호사도 사람인지라 감정적으로 떨려서 더 안 된다."


그 말에 동의한다. 아이와 함께 오는 부모는 부담을 주는 부모와 부담 주지 않는 부모가 있다. 한 번에 성공하라고 눈을 켜고 부릅뜨고 보고 있으면 긴장이 된다. 일반 병원의 주사실은 임상경력이 있는 간호사를 채용하기 때문에 간호사를 신뢰하고 부담을 주지 않으면 좋겠다. 꾸준히 간호사로 근무한 나조차 주사를 할 때는 매번 떨린다. 주사를 맞을 때의 아픔을 알기에 (나 역시 주사를 맞을 때는 정말 싫다. 아프다) 한 번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임상경력이 중요하고 병원에서의 주사경력이 필요하다. 경험과 경력이 간호사를 하는 데, 주사를 하는 데 크게 작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양한 케이스와 상황을 접하고 다양한 혈관의 형태도 접한다.


내가 생각하는 주사하는데 필요한 자질은 강단, 단호함, 뻔뻔함이다. 혈관이 잘 보이지 않아도 혈관이 살짝 만져지는 촉감만으로 시도해볼 수 있는 강단이 있어야 한다. 아기를 안은 보호자가 울고 아기도 분위기를 보고 겁을 내면서 몸을 뒤틀고 악을 쓰더라도 아이의 치료를 위해서 단호하게 주사를 수행하고 보호자를 안정시켜야 한다. 

어느정도 뻔뻔함도 가져야 한다. 지금 이곳에 나 밖에 없고 내가 제일 주사를 잘 놓는 사람이다. 환자와 보호자가 나를 믿고 신뢰할수 있도록 자신만만한 뻔뻔함을 연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주사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예민하고 민감한 치료과정이다. 전문적인 기술을 요구함은 물론이다. 어느정도 임상경력과 병원 주사기술이 바탕에 깔려있다면 단호한 용기로 혈관바늘을 찌르고 혈관을 찾는 확신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많이 뻔뻔한 것 같다. 주사를 하는 일도 감정적인 서비스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감정소모가 많이 된다. 혈관주사를 하기 위해 혈관을 찾고 혈관에 확신이 생기면 주사바늘을 찌른다. 주사바늘은 생각보다 길어서 혈관을 잘 찾아서 들어가더라도 중간에 막히는 경우가 있고 혈관 옆을 찌르는 경우 혈관이 터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혈관을 확인하고 혈관주사를 하는 일은 능숙함을 요구하는 일이고 열에 한 두번은 정말 어려운 경우를 접하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손에 익고 감정으로도 단단한 굳은살이 생긴 지금의 일을 통해 간호사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본다.


컴플레인에 무뎌지는 일

주사하는 일은 컴플레인에 무뎌지는 일이다. 못 하면 내가 제일 속상한데 내가 제일 크게 혼난다. 환자에게 보호자에게 혼난다. "당신한테는 다시는 안 맞아!" 라는 소리를 들어도 묵묵히 견뎌야 하고 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조아려야 한다. 주사놓으면서 죄인이 된다. 잘 하면 당연한 거, 잘 못하면 죄인이다. 

잘 하려고 하는데 잘 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분명한 혈관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바늘을 찔러도 혈관을 피해가기도 하고 잘 들어가다가도 혈관이 터지기도 한다. 혈관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특히 혈관주사를 자주 맞아 혈관이 워낙 가늘어진 경우도 있고, 혹은 너무 살이 쪄서 비대해서 혈관이 살 속으로 쏙 파고들어 혈관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잘하려고 하는데 잘 안되면 내가 제일 속상하다. 


수많은 경우를 대하고 컴플레인도 들어보았지만, 여전히 컴플레인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보니 감정적으로 매우 지칠때가 있다. 일주일에 한 두번은 속이 많이 상하고 감정적으로도 다운이 된다. 잠깐의 맥주가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내 마음에 난 생채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 뿐만 일까? 민원을 상대하는 공무원, 고객을 응대하는 고객센터 직원들, 그 외 무수히 많은 곳에서 사람을 상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일을 경험하고 또 감정이 상할 것이다. 나름의 방법으로 그날그날의 아픔을 해소하겠지?


사람은 사람을 매일 만나고 글로 말로 소통한다. 간호사로 일하는 동안 매일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대할 것이다. 언제까지 간호사로 일하고 주사를 놓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내가 있는 이 위치에서 내가 만나는 한 분 한분에게 정성을 다하고 싶다. 진심으로 잘해보려고 해도 실패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아이를 키우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때가 없었던 것처럼, 나역시 최선을 다하지 않은 순간은 없었다. 오늘 나를 만나는 사람은 가능하면 덜 아프게 주사를 맞기를, 실패하지 않고 한번에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주사한다는 것은 용기이자 부탁하는 용기이기도 하다. 포기하는 용기이기도 하다. 한 번,, 오케이 두 번째... 어라? 또? 정말 확실한 혈관이 아니라면 세번째에는 손을 바꿔줄 수간호사나 선배간호사에게 부탁하고 요청하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게 환자를 위한, 그리고 나를 위한 길이라는 것을 안다. 안 되면 포기할 줄도 아는 용기가 진정한 용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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