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질은 다 다르잖아. 왜 그래야 하지?
라면 부스러기는 안 먹어도 되잖아. 왜 그래야 하지?
책은 처음부터 안 봐도 되잖아. 왜 그래야 하지?
누가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우리의 일상에 스며든 '당연히' 라는 생각. 어쩌면 메메른 일상 중에, 메마른 생각 중에 무언가 '톡'하고 떨어뜨려 주는 것 같은 '왜 그래야 하지?' 생각.
무심코 그래왔으니까, 그렇게 하는걸 봐왔으니까, 다른사람들도 그렇게 하니까, 어른들이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으레 그런듯 당연한듯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예전 노래의 가사처럼 젓가락질은 꼭 잘하지않아도 괜찮다. 젓가락질의 용도는 밥을 먹는 것이고, 젓가락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밥을 '잘'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숟가락이든 젓가락이든 포크든 숟가락과 포크가 양쪽에 붙어있는 집기이든 무엇을 이용하던 간에 잘 사용해서 잘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리라.
할머니에게서 어른들에게서 보고 배운대로 젓가락질을 잘하면 또 그것대로 좋다. 젓가락을 알려준대로 잘하게 되면 편하니까 그것도 그런대로 좋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연습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젓가락질을 연습하는 연습용 젓가락도 있고, 젓가락질을 쉽게 할수있도록 판매하는 도구들도 있다. 그리고 하다보면 느는 경우가 있다. 어릴적 그렇게도 젓가락질이 안되었는데, 어느순간 내 필요에 의해서 배워서 알게되서 잘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젓가락질과 남편의 젓가락질, 아이의 젓가락질이 모두 다르다. 그래도 잘만 밥을 먹는다.
언젠가 방송에서 라면부스러기를 넣지않는 사람을 보았다. 라면을 끓일때 봉지 끄트머리에 붙어있는 부스러기까지 탈탈 털어서 냄비에 넣고 끓였었는데 (누가머라 한것도 아닌데 당연히) 라면 부스러기가 들어가면 맛이 없어진다는 출연자의 말에 다음번 라면부터는 부스러기를 넣지않았다. 스프를 먼저 넣느냐 면을 먼저 넣느냐의 차이를 따지듯이 그리 큰 상관관계는 없어보이지만, 부스러기를 탈탈 털어넣으면 기다란 면발을 면치기하는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할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라면이든 우동이든 스파게티든 면은 면치기다. 라면은 더 그렇다. 매콤한 국물에 빠져있는 기다란 면을 후루룩 먹을 때, 면치기를 할 때 그 맛은 더해진다.
책을 싫어했다. 책과 멀었다. 책을 몰랐다. 그래서 책은 처음부터 읽어야 되는 것인줄 알았다. 삼십년 동안 말이다. 책은 나에게 교과서였고 교과서는 책이었다. 교과서는 처음부터 1페이지부터 수업한다. 선생님 말에 따라 책을 넘기고 진도를 나가고 밑줄 긋는다. 친절하게도 다 알려준다. 어디어디에 밑줄을 긋고 중요한 부분은 별표. 교과서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진도를 나갔고 한권을 다 배우면, 진도를 나가면 학년이 지나간다.
학창시절 유일하게 읽은 책은 친구에게 추천받은 연애소설과 만화책이었다. 수업 중간중간 재미있게 본 유일한 책들이다. 연애소설도 처음부터 읽어야한다. 소설은 처음부터 맥락을 함께하기때문에 내용이 궁금해서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나갔다. 책과 친하지 않았던 나는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이 연애소설이었고 그래도 그책덕분에 연애소설류는 조금씩 읽어나갔다. 한창 남과여, 연애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던 여고생 시절이었고 연애소설 덕분에 책이 '조금' 좋아지긴 했다.
병원간호사로 일하던 시절, 1년에 100권읽기 목표를 세운적이 있고 일하거나 쉬는날 병원도서관에 비치된 몇개의 책을 빌려오기도 했다. 여전히 나는 책에 관심은 없었고 의무감으로 내 필요에 의해 책을 빌려왔다. 왜? 책을 사는지, 내 돈 들여서 책을 사야하는지 그때도 알지 못했다. 그러던 내가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집근처에 작은도서관을 다니면서 책에 관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35살이 되어서야 책에 대한 관심이 꽃피우기 시작했다. 도서관이 집과 가까운건 큰 행운이다. 오죽하면 도서관이 가까이에 있는 집을 구한다는 이야기가 나올까. 어쨌든 덕분에 집 가까운 도서관이 있어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자주 드나들었다. 아이에 관한 책, 부부에 관한 책, 그리고 다양한 쉬운 책, 재미있는 책들을 경험해보았다. 보다보니 쓰고싶어졌고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좋은 구절이나 문구들은 기록해놓고 싶었다.
책 제목을 보고, 읽고 싶은 내용인지 살펴보고 열권이든 스무권이든 도서관에서 빌려오면 그 중에 한, 두개는 뇌리에 콕 박힌듯 소장하고 싶은 책이 생겼다. 시작은 그림책이었다. 아이에게 읽어주고 싶은 그림책이 생기고 함께 서점을 가면서 은은한 불빛아래 사고 싶은 책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림책 한권과 내 책도 한권.
다양한 책을 접해보고 많은 책들을 경험해보니 '내가 읽고 싶은' 부분만 읽어도 되는구나 깨달았다. 책에 대해 배운적이 없었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없었기에 교과서처럼 연애소설처럼 책은 처음부터 읽어야 되는줄 알았다. 나의 착각이고 고정관념이었다. 책은 메마른 내 마음에 퐁당 조약돌을 던졌고 빠지직 고정관념이 조금씩 깨부수어 졌다.
지금은 순서목차할 거 없이 보고싶은부분을 펴서 보고 처음부터 보기도 한다. 목차를 보고 궁금했던 부분이 있으면 그 책을 사고 여기보다저기보다 한다. 책 페이지에 낙서도 하고 귀퉁이를 마음껏 접어두기도 한다. 왜냐면 '내 책'이니까. 소장하는 내 책은 내 마음대로 밑줄긋고 글도 적고 귀퉁이도 접을 수 있어서 좋다. 코로나상황으로 도서관을 한동안 못가서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빌리는 책보다 사는 책이 더 많다. 아이것도 내 것도 소장하고 그 책들은 소중하다. 걔 중에는 물론 한두페이지 읽다 만책도 있고, 그런책은 당연한 수순으로 필터링을 거쳐 팔거나 정리한다.
왜 그래야 하지? 일상의 관점을 이런식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는 당연히, 그래왔으니까, 윗세대도 그래왔으니까 그렇게 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그리고 세상은 변한다. '왜 그래야 하지?'란 물음은 나에게 새로운 생각을 던져주고 새로운 생각은 보다 나은 방향과 방법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오늘도 나는 묻는다.
왜 그래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