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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Aug 13. 2021

아빠 왔다!!

처음과 끝이 중요하듯, 가족의 일상도 그런듯하다. 단독주택은 아니지만 집을 나가고 들어오는 출입구인 현관에서 하루가 시작되고 하루가 끝난다.

우리집에서 제일 먼저 나가는 사람은 남편이다. 서울 강남이 직장이라 매일 아침 7시가 되면 현관문을 나선다. 구두발바닥이 헤지도록 수없이 많은 발자국을 길에 지하철에 뿌렸을 그의 발자국들. 횡단보도를 건너고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철을 기다리고 지옥철이라 불리는 김포도시철도에 몸을 실어나른다. 거리두기가 무색한 매일의 일상을 그는 그렇게 오고갔다.

가끔 회식이라도 하는 날이면 집 가까운 거리는 아니기에 버스를 타고 한시간이 넘도록 울렁거리는 속을 붙잡고 집으로 왔다. 어느날은 술을 많이 마시고 버스를 탔는데 핸드폰이 없다고 당황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분명 버스안인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고 한다. 한 정거장을 지나치고 나에게 전화를 걸면서 "여기 어디야?"라도 오히려 되묻는 그. 핸드폰을 지문처럼 달고 다니는 그에게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다음날 핸드폰을 생각하고 핸드폰의 행방을 찾기위해 버스회사에도 전화를 걸었다. 분실들어온 물건이 없었다는 답변을 들었지만 여러시도 끝에 결국 핸드폰의 행방을 알아냈고 술먹고 버스에서 잃어버린줄 알았던 핸드폰은 그렇게 다시 그에게로 돌아왔다.


로펌에 다니는 그에게 집가까이 다닐만한 직장은 없었다. 우연히 접하게되고 우연히 입사를 했고 매일 수많은 상황을 접하고 상담을 하는 일이기에 집에 돌아오면 어깨가 축 쳐져있고 탈탈 털린 그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상담이라는 업무도 해봤고 서류작업도 해보았지만 법의 세계는 나에게는 여전히 높은 벽이었다. 수많은 판례를 검토해야하고 상담이 들어오면 관련된 법안을 공부하고 매일매일을 배워나가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안 힘든 직업이 어디있을까. 몸이 수월하면 정신이 피곤하고 마음이 편하면 몸이 힘들기도 하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 매일을 일주일을 일년을 십년을 그렇게 지나오고 흘러온 세월이다. 묵묵히 한 직장에서 30년 가까이 공직에서 일해오던 아빠의 모습도 생각이 난다. 술자리가 너무나도 잦았고 주말도 없던 시절이었다. 승진의 압박도 굉장했으며, 매일을 경쟁자들과 경쟁해야 했을 터였다. 예전 살던 벽지에 아빠는 조용히 이런 말을 적어둔적이 있다.

'1등만이 사는 세상'


1등만이 이기는 세상, 1등만이 .. 그 문구를 적기까지 오롯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버티어야 했을 아빠의 어깨는 또 오죽 무거웠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아빠의 자리가 아빠의 속내가 더욱 애잔해진다. 아빠라는 이름에 붙은 책임감과 매일의 의무들. 또 그사이에 주말이건 저녁이건 할거없이 삼남매를 오롯이 키워내야 했을 나의 어머니. 부모라는 자리에서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내온 어머니아버지였다.


처음과 끝을 생각해보자. 내가 집을 나올 때 다녀올게~ (집에게) 말하듯이, 내 식구들이 집 현관문을 나설 때 반가이 아침출근길을 배웅해보자. 잘 다녀와~ 나에게도 잘 갔다올게. 말해본다.

나에게도 가족들에게도 하루의 시작을 가볍게 인사로 배웅하는 것은 좋은기운을 불러온다. 하루의 첫인사가 하루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퇴근할때 "아빠 왔다" 다다다 달려가는 아이의 발걸음 인사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아빠 그리고 엄마의 지친어깨를 다독여준다.


다른건 모르겠지만 이 두가지만이라도 챙기려고 한다.

잘 다녀와.

고생했어~

아빠왔다!

현관은 우리의 문이고 우리의 웃음이다. 무거운걸음 보다 가벼운걸음으로 잘갔다와~ 다녀올게. 웃음으로 답해본다. 오늘도 우리집현관문은 여러사람이 오고가고 열리고 닫힌다. 깨끗한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신발을 벗는다. 아빠 왔다! 라는 외침만으로 아빠의 어깨가 몰랑해지기를, 피곤하고 무거운발걸음이지만 집에들어와 그에게도 따스한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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