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잘보았어요, 데미안!
빨간색 표지의 데미안. 이 책은 첫째 아이가 근처 책방에서 함께 산 책이다. 벌써 일년도 더 된 것 같다. 작년 으슬으슬 추운 날씨에 나와 첫째 아이는 지하철을 타고 근처 책방으로 향했다. 그 당시 근처에 책방이 있는 걸 알고 가야지 가야지 벼르다가 향한 그곳은 처음엔 찾기가 어려웠다.
코로나도 한창때라서 책방을 유지하는 일도,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일도 어려웠을 그 곳에서 우리는 책방 대표님을 만났다. 독일에서 법학을 공부하였고 책이 너무 좋아, 독서가 좋아 책방을 열게 된 것을 훗날 알게 되었다. 작가님이자, 책방 대표이기도 한 이보현 대표님은 우리가 방문한 이후 책도 출간하고, 그림책 번역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인연을 만났다.
나의 아이는 그 곳에서 ‘데미안’을 만났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라는 것만 알던 나는 선뜻 그 책을 고르는 아이의 곁에서 ‘그래, 그 책사자’ 라는 말과 함께 다음 방문을 약속하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작은 책방이었지만, 어느 한 곳 어느 시점에 책과의 만남은 꽤 중요하다. 그 책이 그 곳에 없었다면, 책방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나와 아이가 데미안을 그 시점에 만나는 일도 없었을 터였다.
데미안, 그 책은 이제 우리거실 한 공간을 차지한다. 그리 무겁지도 두껍지도 않아 들기에도 안성맞춤이고 색감도 와인색처럼 고운 그 책을 이제는 둘째 아이가 본다. 여섯 살이 된 둘째 아이는 책을 잘 가지고 논다. 둘째 아이의 눈에 데미안이 와닿았나보다. 언제부턴 가 아이는 그 책을 마치 제것인양 가지고 다닌다.
내용을 아는지? 글을 아는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책의 느낌과 감촉, 만지는 기분을 그 아이는 벌써 알고 있었다. 데미안이 풍기는 책의 느낌은 아이에게 어떤 느낌이었을까? 용케 이 책을 발견하고, 한 장 한 장 넘기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 장씩 넘기는 손의 감각으로 아이는 책을 만지고 있었다. 그랬다. 책을 보고 있었다.
책을 읽는 지, 글자를 아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거꾸로 보는지, 책을 뒤집어서 보는지, 뒤에서 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책을 만지고 한 장씩 넘겨보고 책을 보는 책을 대하는 자세가 중요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권할 때, 글자만을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아이들에게 책을 사라고 하면서 글자가 많은 책을 권하는지는 않았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책은 책 자체니까. 그 책이 어느 공간에서 어떤 사람과 만날지 아무도 모른다. 100여권의 책을 통과하면서 1~2권의 인생책을 만나게 된다면 그 역시 행운이 아닐까? 오늘 당신이 보고 당신이 만지고 당신이 밑줄 그었던 하나의 책에서 단 한줄의 기쁨을 발견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책은 그런거니까. 데미안, 참 잘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