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는 유치원에 다닌다. 6살이 된 올해 ‘언니가 다녔던 유치원’에 이어 둘째아이도 입학했다. 벌써 몇 년전일까? 6년전 첫째 아이가 다니던 그 곳엔 늘 웃음 한가득 반가운 얼굴들이 그대로였다. 원장님도 원감님도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들도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성품과 인성을 바르게 알려주고 늘 손수 모범을 보여주며 아이들을 대하는 그 마음이 따스히 전해진다.
참 좋은 프로그램이었던 것 중에 하나가 ‘그림책을 가져오기’였다. 6년 전 첫째 아이가 다니던 시기에는 집에서 읽던 (좋아하는) 그림책을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가지고 오면 친구들과 함께 그림책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당시에 내 아이가 가져간 그림책은 ‘피아노치는 곰’ 이었다. 지금은 제목이 변형되어 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당시에 나와 아이는 그 그림책을 참 좋아했었다.
올해도 그림책을 읽는 독서프로그램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오히려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해야할까? 알림장 이라고 적힌 작은 수첩에는 ‘가정에서 읽은 그림책을 매일 가지고 오기’ 라는 글이 적혀져 있었다. 가정에서 읽은 (엄마아빠가 읽어준) 그림책을 유치원에도 가지고 와 가정과 유치원이 그림책으로 연계되는데 얼마나 좋은가.
어떤 과정이나 정해진 프로그램에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는데, 거기에는 부모의 정성과 노력, 관심이 따라야 한다. 아이가 온전히 스스로 할 수 없기에, 가정에서는 부모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유치원에서 영어프로그램이 좋다고 하면 유치원에서만 영어를 습득하는 것만으로는 영어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책읽기도 그렇다. 내가 최근 <하루10분 그림책읽기의 힘>을 집필하면서 강조하고 강조한 것이 습관이 힘이다. 우리가 양치를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좋다. 아이가 어린 시절 한, 두 살 때부터 거즈나 칫솔모양의 기구를 이용해 아이에게 양치를 시켜준다. 부모가 일일이 치약을 묻히고 아이의 입을 벌려 구석구석 닦아준다. 아이가 3~4살 쯤 되면 매일은 안하더라도 양치를 꾸준히 시킨다. 하루이틀 하다가 그만둘 것이 아니다. 하루 하고 아이가 거부하면 그 다음날 또 한다. 하다 쉬고 하다 쉬고 하다 쉬고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한달이 두달이 일년, 이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매일의 조금씩의 양치가 습관으로 들여지는 것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도 그렇다. 엄마아빠가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은 양치를 하는 것처럼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아이가 처음 이유식을 먹을 때를 기억하는가? 아이의 입에 처음 들어가는 쌀미음을 준비하고 천천히 저어가면서 쌀미음을 떠먹이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한 가지씩 새로운 재료를 추가해가며 (유기농을 고집하기도 했다) 아이의 반응을 살핀다. 아이가 먹고 배변의 양상은 어떤 지 살핀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음식을 가려내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더 찾기도 한다.
이유식을 만드는 것처럼, 아이에게 양치를 시켜주는 것처럼 그림책읽기도 공을 들이는 것이다. 아이들의 입속에 들어가는 반찬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읽혀줄 그림책 고르기도 신경을 써야한다.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정서적으로 안정감있고 내면이 강한 아이로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림책읽기에 공을 들여야 한다. 그림책 고르기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나는 그래서 무대뽀로 물려받는 책은 사절이다. 나도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 물려받은 책이 있었다. 대부분 예전에는 전집이 많았다. 지금은 종류와 분야가 굉장히 다양해졌지만, 내가 어린시절에도 전집이 꽤나 성행했었다고 한다. 내가 어린시절 이었으니, 벌써 30~40년 전이겠지? 전집도 많고 잡지도 많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림책 시장은 굉장히 범위가 넓어지고 다양해졌다. 전집으로만 이야기를 꾸리던 시절에는 책을 고르는데 분명 한계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그림책을 만드는 작가도, 그림책을 출판하는 회사도 많아졌다. 무엇보다 외국의 좋은 도서와 그림책을 번역하고 찾아내는 곳도 굉장히 많아졌다. 내가 하고픈 이야기는 이거다. 꼭 전집에 국한하지 말고 내가 보고싶은 그림책을 마음껏 골라보는 거다. 어디서? 서점도 좋고 그림책방도 좋다. 도서관에서 마음껏 빌려보아도 좋다. 한 사람당 20권의 책을 빌려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혜택인가? 이 나라에 태어나서 도서관의 혜택을 마음껏 누려보면 좋겠다.
북스타트도 좋다.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북스타트는 아이들이 책의 기회를 동등하게 가지길 바라는 마음에 시작된 프로그램이다. 나라에서 지원이 되고 전국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책꾸러미를 선물해준다. 직접 내방하여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하면 된다. 지역자치구마다 배정된 그림책수가 다를 수 있으니 문의해보고 방문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림책에 공을 들인다는 건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둘째 아이 가방에서 그림책을 꺼낸다. 그리고 어제 아이가 보던 그림책을 넣어둔다. ‘백설공주’ 그림책이다. 알림장 그림책제목 적는 란에는 ‘백설공주’가 유독 많다. 백설공주를 너무나 사랑하는 둘째 아이는 사과도 참 좋아한다. 그리고 참 잘먹는다. 껍질 째로 사과 하나를 통째로 먹는다. (물론 먹고 남기지만.)
유치원의 좋은 독서프로그램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집과 유치원이 연계되어 그림책읽기) 일단 집에 그림책이 많아야 한다!!! 도서관에서 빌리든지 서점에 가서 사든지 둘 중 하나다. 단 한권의 그림책도 좋지만, 아이에게 다양하고 재미있는 그림책을 보여주는 건 ‘아이와 맞는’ 그림책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한 가지 팁을 두자면, 아이가 ‘공룡’을 좋아한다면 ‘공룡’으로 검색해서 나오는 그림책들을 여러권 사보는 거다. 그 중에 재미있는 것도 있을 것이고 재미없는 그림책도 있을 것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반복해서 계속 계속 읽어주면 된다.
제목에서도 말했듯이,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다 안읽어도 되잖아? 왜 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정말 아주 문득 깨달았다. 그림책 한권을 반드시 기필코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고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았다. 우리는 왜 책이란 건 꼭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할까? 아마도 학교를 다니면서, 전공서적을 접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진도를 끝내야만 했기에, 그런 과정속에서 수십년 길들어져 왔기 때문에 그럴거라고 생각한다.
책이란 건 모름지기 ‘끝까지’ 다 안읽어도 된다! 프랑스의 한 소설가가 자신의 저서에서도 말했듯이, 책이란 건 아무데서나 보아도 좋고, 끝까지 다 안읽어도 좋고, 책읽고 아무말 안해도 된다! 내가 책에 관한 편견을 깨부수기전까지는 나 역시 책이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많고많은 책들은 ‘재미있어서’ 보는 책이다. 교과서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책의 의무감을 지우지 말자. 책은 자유고 책은 재미다. 그림책을 많이 읽어준 부모들은 안다. 내 아이가 유독 좋아하는 장면에 집착하는 것을 말이다. 그 대목이나 그장면을 계속 읽어달라고 조른다. 유독 한 그림책에만 집착한다. 아이들은 ‘재미’를 아는 것이다.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는 그부분을 계속해서 읽어주면 된다. 그 장면만 보아도 된다. 글을 다 안 읽어도 된다. 그림책은 감상하는 것이고 엄마와 아이가 대화를 나누는 매개체다. 그림책은 아이와 아빠가 눈을 마주치는 장난감이고 놀이다.
그림책을 많이 읽은 아이들은 ‘책을 보는 눈’을 자연스럽게 터득한다. 아!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봐도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책을 많이 보고 책을 많이 읽어준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책을 읽는 것이 자연스럽고 재미없는 책은 가차없이 덮어버린다. 그리고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많이 골라보고 빌려보고 (재미없는 책도) 많이 실패해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그림책을 잘 고를 줄 알게되고 자신의 취향을 알게되는 것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도 부모가 책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가정에서는 ‘재미’있는 그림책을, ‘재미’있는 만화책을, ‘아이가 좋아하는’책을 주기적으로 사주고 함께 서점도 가보는 것이 좋다. 학교에서 교과서와 필독서로 채워지는 수업이라면, 가정에서는 ‘재미있는’ 그림책을 함께읽은 경험그대로 ‘재미있는’ 책을 사주고 또 계속해서 읽어주면 된다. 아이가 싫어하는 책 말고 말이다. 글자만으로 구성된 책을 선뜻 읽으려고 할까? 책이 재미있으려면 계속해서 ‘재미있는’ 새로운 책을 많이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이와 책은 비례하지 않는다. 우리가 나이가 많다고 해서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어야하는 게 아니듯 아이도 마찬가지다. 5학년이 되었으니, 이제 글자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해야 할까? 전혀 아니다. 내 아이가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책을 사주면 된다. 그림책도 좋고 학습만화도 좋고 그냥 만화책도 좋다. 그림책 세상속에서 함께 뒹굴고 놀던 추억 그대로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책의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자. 책의 냄새가 좋고 책의 촉감이 좋고 책을 펼칠 때의 느낌이 좋다는 것을 함께 즐겨보자.
둘째 아이는 책을 가방에서 꺼낸다. 자신이 좋아하는 ‘백설공주’그림책을 꺼내어서 본다. 줄거리를 알기에 어느날은 혼자 이야기를 중얼거리기도 하고 어느날은 나에게 읽어달라고 한다. 대부분은 혼자서 알아서 책장을 넘기면서 그림을 본다. 그림책은 그런거다. 책은 그런거다. 서스럼없이 책을 대할 때 책이 쉬워진다. 책이 좋아진다.
책으로 야단치지 말지어다. 책읽으라고 잔소리보다는 책을 함께 읽어보는거다. 한글을 알아도 혼자 읽을 수 있어도 부모가 곁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이 좋다. 아이가 혼자읽겠다고 거부하지 전까지는 말이다. 책을 읽어주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이고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은 잘 모른다. 그래서 더욱 특별해지는 거다. 책을 읽어주며 아이와의 깊은 공감어린 시간을 함께 지내온 사람들은 알고 있다. 책을 읽어준 시간동안 아이와 함께 쌓아온 시간들을, 정성들이며 공들여 녹아낸 시간 속에 울림있게 피어나는 그 가치를 느끼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