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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Dec 13. 2023

보리굴비와 옷가게,  책방과 성교육

내가 자주 지나다니는 골목에는 보리굴비와 옷가게 가 있다. 엥? 무엇이? 보리굴비와 옷가게? 신통방통한 조합이다. 차로 운전하면서도 슬쩍 옆을 한 번 더 보게 된다. 정말로? 옷가게에서 보리굴비를 판다고?


사실 이러한 조합은 생각보다 많은 듯하다. 내가 보는 부분은 일부분일 거다. 그리고 매장마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지. 가게 주변으로 치킨도 사고 부대찌개도 사고 빵도 사지만 (대부분 먹을 것) 이 보리굴비 옷가게집은 가본 적이 없다.


우선 옷스타일이 내 스타일이 아니고, 괜히 그런 느낌 있지 않은가? 옷에 보리굴비 냄새가 베일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 나만이 느끼는 걸까? 내가 유난스러운 걸까? 그렇진 않을 거 같다. 보리굴비가 실제 그 매장에 있든 있지 않든 내가 생각하기에 조금 이상한 조합이긴 하다.

책방을 운영하면서 나도 혹시 그런 기운을 풍기는가? 생각해 본다. 책방인데 성교육을 하는 것이 나에게 좋은 면을 부각해 주는지, 혹은 이상스럽게 보이지는 않을지 문득 생각이 드는 거다.

오늘 김포에 위치한 유치원에서 강의를 하고 왔다. 오전 10시에 유치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많이 긴장이 되었다. 준비한 부분을 다 소화할 수 있을지 나름 걱정도 되면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늘 같다. 특히 성교육을 진행하면서 약간의 우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평소 성교육을 아이에게 한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부모들도 있다. 그래서 강의 중간중간 질문폭격을 당하기도 한다.


내가 준비한 것 이상으로 질문을 퍼부을 때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떤 대답으로 마무리지으면 좋을지 머릿속이 우왕좌왕되기도 한다. 오늘도 그랬다. 그림책성교육을 시작하기에 적절한 나이는 4세부터이고 개인적으로 성교육하기에 좋은 그림책을 추천해 주었다. 오 마이 갓!이라는 표정이 나올 때부터 엄마들의 표정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런 걸 아이에게 보여주어도 되는지?

아이가 본 것을 친구들에게 말할 때나 친구부모들은 또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우려감의 표현이다. 성은 인문학이고 우리부터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쉽지 않은 영역이다. 일반적으로 오픈되어 있는 일반강의와는 다르게, 그래서 성교육은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다.


다양한 생각이 있고 각자의 상황이 다르니 무엇이 정답이다라는 것은 없지만, 내가 확고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부모인 내가 성교육한다'라는 원칙만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 생리대를 남자아이에게 보여주는 일도 일상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알려는 주지만, 어디까지 오픈하고 보여줄지는 상황에 맞게 부모가 판단하고 아이에게 보여주면 될 일이다.

그림책도 마찬가지다. 꼭 이 책을 보여주세요 가 아니라, 아이가 관심이 보일 때, 내가 준비되었을 때 자연스러워질 때 읽어주거나 보여주면 된다. 나를 돌아보니 나 역시 첫째가 커나가는 과정 동안 그림책은 많이 읽어주고 접해주었지만, 성교육 관련한 그림책은 만나게 해주지 못했다. 이실직고한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아이가 그런 과정이 없이 성장했기에 어떤 그림책을 보면 징그럽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실제 내가 추천하는 그림책을 읽어주려고 하면 냅다 도망가버리기도 하니까 말이다. 어린 시절 아이의 꼬마숙녀시절에 엄마~ 하면서 달려오던 아이는 이제 몸도 마음도 성장하는 10대 청소년이 되었다. 그래서 품 안에 쏙 들어올 때 보여주고 만나게 해 주라는 거다. 내가 이런 과정을 경험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끝인가? 그렇지는 않다. 첫째에게도 (다섯 살부터 엄마와 꼭 붙어 머리카락을 만지며 그림책보던 아이) 내가 성교육한다는 원칙을 계속 가지고 있다. 속옷을 갈아입는지, 생리하는 기간을 체크한다든지, 생리대는 잘 챙겼는지, 생리통할 때 약을 먹는 게 좋다는 걸 알려주는 등 아이몸에서 어른의 몸으로 성장하는 동안 변화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아이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아이가 궁금해하거나 고민이 있을 때 들어주려고 한다.


늘 강의를 한 뒤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선물을 더 챙겨갈걸, 다른 질문을 할 걸, 이런 말을 할걸, 그랬어야 했는데. 등등. 하지만 강의를 끝나고 나오는 순간만큼은 정말 후련하다! 긴장과 설렘과 준비기간을 가지면서 나의 에너지와 열정과 메시지를 그들에게 전달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거다.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아이에게 그림책을 보여주고 읽어줄지는 그들의 몫이다. 나는 가이드만 전달했을 뿐이다.


어쩌면 강의하면서 오늘 같은 경우가 매번 생길지도 모른다. 땀을 삐질거리고 순간순간 들어오는 질문폭격을 받을 수도 있고, 되려 나를 가르치려 하는 분도 만날 수도 있다. 책을 내고 강사로 활동하면서 이 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부딪혀보려 한다. 나를 시험하는 순간순간이 나를 단단하고 강하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걸 안다. 잠시 피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맞서 직면할 때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욱 단단해지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크게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는 큰 파도라는 저항력을 만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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