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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에 다시 읽어주는 그림책

개구리 우산이 물었어

by 정희정


초록 빛깔의 잔잔한 안개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다.

<개구리 우산이 물었어>

안효림 그림책


하늘에서 맑은 빗방울이 톡톡 떨어진다. 개구리 모양을 닮은 개구리 우산이 눈을 반짝 뜨고 묻는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차가운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머리카락이 안 젖게 하려고 태어난걸까? 아니면 부아앙~ 지나가는 버스가 물웅덩이를 밟으며 튀기는 빗물에 옷이 안 젖게 하려고 태어난걸까? 약을 타오는 할머니를 따스히 감싸안아주는 개구리 우산은 또 생각한다. 할머니 감기 안걸리게 하려고 나는 태어난 걸까? 벤치에 앉은 남자의 모습이 더욱 잘생기고 멋지게 보이게 하고 싶어서 태어난 걸까? 친구들과 우산을 들고 장난치려고 태어난 걸까?


개구리 우산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때 무지개 우산이 대답한다. 음.. 내 생각에는 말이야.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빛깔 무지개색 우산이 마술처럼 촤라락 펼쳐진다.

빨강 우리는 함께 나누고

주황 엄마 기다렸어? 누군가를 기다리고

노랑 아빠! 누군가를 만나고

초록 서로를 기다리고 만나며 친구하라고

파랑 삼촌의 커다란 어깨를 올라타 따뜻하게 안고

남색 하나둘, 하나둘 둘이 같이 발맞추어 가라고

보라 그래서 오래오래 행복하라고 태어난 것 같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우산을 좋아하고 비를 좋아한다. 비가 오는 날 참방참발 물 튀기는 것을 보고 까르르 웃는 아이들이다. 노란색 장화를 신고 빗물을 튀겨도 마냥 즐거운 아이들. 근사하고도 멋진 개구리 우산 덕분에 우리는 더 안고 더 보듬어주고 더 감싸안아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기다리고 서로를 만나며 우산 안에서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요즘처럼 비가 자주 오는 계절이면 우산을 쓴 꼬마아가씨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른다. 우산을 쓰고 이쁘장한 모습으로 춤을 추던 너의 모습들, 유치원 가는 길에 우리함께 불렀던 노래들, 비가 오던 날 물 웅덩이에 풍덩 빠진 이들, 너와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비와 함께 우산을 타고 내린다.


아이는 비를 좋아했고 우산을 좋아했다. 며칠 전 아이에게 이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많이도 읽어주었지만 동생이 태어난 후 그림책을 읽어주지 못했다. 잠자기전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었는데, 큰 공백이 생기면서 나 스스로 생각했다. 나는 지금 이걸 알면서.. 둘째 아이가 이제 제법 혼자 하는 일도 생기고 이전에 비하면 엄마의 손길이 훨씬 줄어든 요즘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림책을 좋아하고 아이가 13살이 될 때까지는 책을 읽어줄 생각이다. 그래서 다시금 펼쳐들었다. 이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읽어주면서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아이가 말한다.

"엄마, 나 이제 우산 아껴쓸래요."

우산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개구리 우산을 보고, 함께 나누는 모습을 바라본다. 일곱빛깔 무지개 우산을 함께 펼쳐본다. 그림책을 보면서 아이와 나는 오랜만에 그림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낡고 많이 사용해서 허름해진 분홍빛깔의 우산을, 창고 속 깊숙이 넣어두었던 우산을 아이가 꺼내어온다.

우산 그림을 보고 우산 그림책을 보면서 우산을 생각했던 건 아닐까? 우산을 아껴야지, 우산을 더욱 사랑해줘야지. 이런 마음을 가지는 아이의 마음이 참 고맙고 예뻤다. 이 우산도 개구리 우산처럼 왜 태어났을까? 그런 마음을 헤아렸던 건 아닐까.


열살 아이에게 다시 그림책을 읽어주기로 했다. 그림책 다방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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