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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태어날 아기를 만날 너에게 주고 싶은 선물

엄마와 복숭아

by 정희정


글 유혜율 그림 이고은


너에게 주고 싶은 선물.

사실 그림책은 그림이 예쁘거나 정감이 가면 고르는 편이다. 알라딘 온라인 서점을 주로 이용한다. 거의 매일을 의식처럼 들여다본다. 오늘은 어떤 신간이 나왔을까? 재미있는 그림책이 있을까? 보고 싶은 책이 있을까? 매번 책을 사지만,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와는 또다른 느낌이다. 책 표지 만을 보고 고르는 온라인 서점. 그 곳에서 이 책을 만났다.


엄마와 복숭아. 특이한 책 제목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몰랐는데 자세히 안을 들여다보니, 임신한 엄마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복숭아는 태교인가? 꿈에서 복숭아를 보았을까? 먹음직 스럽게 잘 익은 포동포동한 복숭아를 따라가본다. 엄마는 탐스런 복숭아 나무 아래에 서 있다. 엄마는 달콤하고 잘 익은 복숭아를 바구니에 하나 하나 담는다.

"배 속에서 자라고 있는 너와 함께 먹어야 하니까"


오래된 숲을 복숭아 한 바구니를 지고 걸어가는 엄마. 길을 가다가 사자도 만나고 곰도 만난다. 사자도 곰도 임신한 몸이라 배가 너무너무 고프다. 너를 잡아먹을테다! 외치는 사자와 곰에게 복숭아를 건넨다. 마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가 생각나는 장면이다. 그렇게 엄마와 새끼를 밴 사지와 곰은 복숭아를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다. 길고 긴 출산의 여정의 여정을 나타내는 것 같은 그림책. 한번 보고 두번 보고 또 세 번을 보게 된다.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전해주는 이 그림책.


그림책이란 그런 게 아닐까? 처음 볼 때, 두번 째 볼 때가 다르고 또 볼 때가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이 다르다. 모든 그림책이 그런 건 아니지만, 생각을 달리하게 되는 그림책들이 있다. 이 책도 나에게는 그렇다. 이 책을 보면서 문득 내 여동생이 떠올랐다. 내 동생은 임신을 한 적이 있고 유산의 아픔을 겪었다. 그 아픔을 멀리서 지켜보았고 전화기 너머로 함께 울었다. 엄마라는 이름을 가지기 위해서 오랜 기다림을 가지고 시간이 지나가야 함을 알기에, 그리고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을 알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동생은 나와 어린 시절을 늘 붙어다녔다. 국민학교에서 친구에게 놀림을 받을 때도 내가 무슨 사내대장부라도 되는 듯 혼내켜주는 가 하면 중학교 다닐 때도 하하호호 재미난 이야기를 하면서 늘상 붙어다녔었다. 대학교를 오면서 멀리 떨어졌지만, 그래도 자주 놀러오고 만나고 하면서 스스럼 없이 지냈던 것 같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동생도 결혼을 하면서 각자의 가정이 생겼다. 가까이에 있으면 다시 둘도 없을 것처럼 붙어지냈을 텐데. 그런 아쉬움은 늘 내 곁에 자리한다. 친정엄마도 그렇고, 나의 동생들도 가까이서 보고 만나면 좋을텐데, 어떤 상황이든 적응하기 마련이지만 어느 순간엔 다시 예전처럼 만나고 웃고 떠들며 우리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을 믿는다.

올해 초 동생의 임신소식을 접했고 함께 기뻐했다. 이 그림책은 동생을 위한 선물이 될 것이다. 나의 소중한 동생. 엄마가 되기 위해 오늘도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움직이지 않으며 지금의 시간을 묵묵히 지나가고 있을 동생에게 선물하고 싶다.

'배 속에서 자라고 있는 조그만 너'

그림책의 맨 앞장을 여는 순간, 어떤 그림책인지 알려준다. 태교를 하고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하면서 엄마는 적을 것이다. 나의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고, 태어날 그 순간을 맞이할 준비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가 커가는 과정, 순간순간을 지내오며 또 나는 엄마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엄마는 널 만났어"


그렇게 동생은 아기를 만나게 될 것이고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아이의 눈을 바라볼 것이다. 아이를 품 안에 안게 될 것이고 처음으로 젖을 물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엄마가 되어갈 것이다.


나의 둘째아이 출산 당일, 동생이 놀러왔었다. 예정일보다 빨리 출산의 기미가 보이고 새벽에 출산할 예정임을 문득 알고 산부인과로 향했다. 그날은 만삭사진을 찍는 날이었는데 출산을 하러 산부인과로 향한 것이다. 첫아이에게 둘째를 낳을 때 소리지르거나 힘든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그래서 잠시 동생이 집으로 간다는 말에 함께 다녀오라고 했다. 남편, 동생, 그리고 첫아이. 그렇게 나는 혼자 진통의 시간을 맞이했다. 출산을 도와주는 촉진제를 맞아서 그런지, 진통이 살살 왔다. 처음에는 그래도 저녁무렵이나 되야 출산 할거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점점 진통이 거세어진다. 엄마와 카톡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급기야 막바지 진통까지 그대로 주욱 달렸다.

인간극장을 틀어놓고 있었다. 인간극장에 아이 다섯을 출산(제왕절개) 한 엄마의 모습이 비추어지고 나도 아이를 낳으러 왔어요 혼자서 티브이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막바지 진통이 오기 전에 준비사항으로 무통주사를 맞았다. 등 쪽에 척수신경에 막바지 진통을 덜어줄 무통주사를 미리 시술 받았다. (무통주사 동의서를 받을 때 선생님은 무통주사를 '수호천사'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번에 둘째를 낳을때는 나도 무통주사를 꼭 경험하고 싶었다. 수호천사를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진통이 10분, 5분 간격으로 오더니 급기야 너무 아픈 나머지 소리를 꽥 꽥 질러댈 때쯤, 간호사가 들어오고 내진을 하더니 4cm 가 벌어져서 무통주사를 맞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런...!!! 내가 얼마나 기대했는데. 무통주사를 맞기를 얼마나 고대했던가! 나도 이번에는 무통주사를 맞고 순풍 낳고 싶었다. 그걸 맞으면 막바지 진통이 사그라들고 구령에 따라 힘만 주면 순풍~ 아기를 출산한다고 했는데. 난 첫아이도 이번에도 나 혼자의 힘으로, 출산을 온 몸으로 느끼며 둘째 아이를 맞이했다. 응애~ 응애~ 그렇게 둘째 아이는 내 품으로 왔다.


동생의 집으로 간다고 했을때, 괜히 가라고 등 떠밀었나? 아기를 신생아실로 데려가고 출산후 처치를 하고 한 간호사가 나가면서 괜찮으세요? 말했다. 혼자서 출산을 맞이하고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그럴까? 갑자기 서러움이 북받쳤다. 너무 힘든 진통의 시기에 손 잡아주는 남편이 없었고 내가 등 떠밀어 동생네 집에 갔다오는 동안 추적추적 비는 내렸다. 광명에서 김포까지 오는 거리는 멀기만 했고 남편도 속이 탔을 것이다. 막히는 차에 조바심이 났을 것이다. 나의 다급한 외침이 나의 첫아이에게도, 동생에게도 차 속에서 울려퍼졌을 것이다.

첫아이를 낳을 때는 남편이 함께 있어주었고 눈물을 함께 흘려주었으며 첫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탯줄을 잘라주었고, 또 감격의 눈물을 흘려주었다. 그런 감성적인 남편이 곁에 없어서 더욱 서러웠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간호사의 한마디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때 남편이 들어왔다. 신생아실에서 예쁜 포대기에 싸인 둘째아이가 들어왔다. 첫아이와 남편이 함께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동생도 함께 들어오면서 생각보다 빠른 출산에 미안해했다. 이후에 첫아이에게 그랬다고 한다. 정말 미안하다고. 이모집에 괜히 가서 엄마가 혼자서 진통을 겪어야 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나의 아이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그 순간은 곁에 아무도 없어서 외롭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괜찮아. 집에 다녀오라고 한 것도 나이고 첫 아이에게 혹시라도 둘째의 출산과정이 비춰질 까봐 그랬어. 이모와 함께 있어주길 원했어. 그러니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고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꼭 전해주고 싶었다.


그러니, 이제는 너의 아이를 온전히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지? 언니의 출산을 두 번이나 곁에서 가까이 지켜본 너. 그리고 너의 가정을 꾸리고 또 조그마한 너의 존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할 존재인 너. 엄마라는 이름이 불리기 위해서 지금의 시간을 지키고 배 속의 아이와 함께 만날 순간을, 하루하루를 아기를 생각하며 기다리는 너.

나도 기대된다. 너의 아기가. 너의 또 다른 존재가 기대되고 설레인다. 곧 만나자. 이모가 정말 정말 이뻐해줄게. 너에게 줄 선물이 있단다. 네가 태어나면 이모가 재미있는 책도 선물해줄거야. 이쁜 아가야 우리 곧 만나자~

KakaoTalk_20200713_202921583_03.jpg 그 곳에서 우리는 만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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