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편안한 얼굴이 언제일까? 여기가 어딘 지 모르고 나는 누구와 함께 있는 지 모른다. 아주 오래전 기억 속의 것은 기억이 나지만, 방금 본 것은 금방 또 잊어버린다. 그 어르신이 그랬다. 매주 찾아가지만 생전 처음보는 사람인 것 처럼 나를 대했다.
"누구...더라?"
지난번에 왔었지만, 이름도 가물가물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어느 날 차에 있던 그림책을 열어주었다. 색감이 뛰어나고 정신은 가물가물 했지만, 어르신은 도형과 색칠하기에 관심이 있었다. 하나하나 허투루 색칠하는 법이 없었다. 자기와의 일체감을 목표로 하는 만다라 색칠하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가지고 있는 색연필로 색칠을 꼼꼼하게 했고 나름의 생각으로 만다라의 부분, 부분을 채워갔다. 매주 한 번 만나지만 만날수록 좋아지는 사람이 있다. 어르신이 그랬다.
차에 혹시 몰라 가지고 다니던 그림책. 그리고 영어로 된 원서였다. 사실 이 그림책은 딸아이를 위해 엄마들 카페에서 신청해서 사은품으로 받은 것이었다. 거의 모든 책이 그렇지만, 홍보가 필요하다. 영어그림책도 마찬가지다. 인형을 함께 제공한다고 하기에 우연히 글을 보고 신청하게 된 것이다. 이 그림책이 필요한 이유와 신청 사유를 상세히 적어서 보냈다. 영어그림책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둘째 아이의 모습도 관찰하였다. 젊은 시절, 한창 일하던 시절 영어로 주로 일을 하던 어르신이었다. 지금은 기억이 깜빡 깜빡하지만, 젊은 시절 거의 매일 했을 사인(서명)과 유창한 영어실력을 그대로였다.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다. 어르신을 위한 그림책. 영어로 된 그림책.
매주 어르신을 위한 그림책을 선정했다. 매주 하는 활동은 거의 비슷하지만, 그림책은 매번 어르신을 고심하여 선택했다. 나는 그림책의 위력을 알았다. 나의 딸에게 5년동안 거의 매일 읽어주었기 때문이며, 내가 그림책을 통해 울고 웃었던 경험때문이었다. 어른이 보기에 단순한 그림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부 그림책을 제외하고는) 그림책은 훌륭한 기억의 저장소였다. 희미해진 기억을 끄집어 올려내는 위대한 촉매재였던 것이다!
어린이는 그림책을 통해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것을 머릿속에 가슴속에 새겨넣는다. 어른이 다르다. 오랜 경험과 세월을 지내온, 견디어낸 어르신은 다르다. 그동안의 경험과 지혜, 가족들과 그리고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매일의 이야기들이 모이고 모여 그의 인생을 만들었다. 그리고.. 잊혀진 기억들 가운데 그림을 보고 그는 기억해낸다. 아주 오래된 기억들을, 그리고 가슴속에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낸다. 그림책을 보고 말이다.
어느 날은 바다에 대한 그림책을 읽어주고, 어느 날은 고래에 대한 그림책을 보고 함께 읽었다. 영어로 된 그림책도 있었고 한글로 된 그림책도 있었다. 그는 눈으로 진심으로 미소를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러번 방문을 하고 간호를 수행하면서 가슴으로 느끼는 가장 따듯한 순간이었다. 잠시동안이지만 그 편안한 미소와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진실로 행복해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였을까,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였을 까. 그게 아니면 그림책의 색채가 고와서일까. 이 그림책을 보고 마음이 따듯해져서 였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는 웃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로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그림책을 통해 위안을 받고 아이와 어린시절 함께 공유할 순간이 생긴 것처럼, 어쩌면 이 모든 조각조각 같은 시간들이 어른에게는, 어르신에게는 조금이라도 새겨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잠깐 동안이지만 행복하기를 바라며, 잠깐 동안이지만 그림책을 통해 예전의 기억들을 하나씩 기억해 내기를. 그리고 그런 행복한 기억들로 평범하지 못해 지루한 매일의 일상을 행복한 수체 물감으로 물들이기를 바란다.
그림책으로 마음을 어루만지다.
나는 어제는 하나의 그림책을 보고 울었다. 어릴 때의 기억, 피아노를 쳤던 기억,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부모의 마음, 그리고 노쇠해진 부모가 아이가 즐겨 연주하던 피아노 선율을 들으며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을 기록한 그림책을 보면서 가슴으로 울었다. 그림책은 나에게 그런 존재다. 내가 그림책을 매일 사들이는 이유고 그림책을 사랑하는 이유다. 나의 꿈은 그림책방을 열어 그림책의 가치를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감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누구나 편안히 들어올 수 있는 책방을 만드는 것이 꿈이며, 유모차도 손 쉽게 오갈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드는 것이 내 꿈이다.
열어봐야 알 수 있다.
무엇이든 그렇지만 열어 봐야 알 수 있다. 나는 오늘도 그림책을 고르고 그녀 혹은 그를 생각한다. 사람을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그림책을 열어 보고 나를 생각한다. 그럴 때가 있다. 미사여구가 가득한 책을 보는 것 보다, 어느 날은 단 한줄의 글과 그림이 나를 위로해 줄 때가 있다. 내 마음을 '톡' 하고 건드려 줄 때가 있다. 그림을 가만히 바라볼 때도 있고, 글을 보고 한 참을 생각에 빠질 때도 있다.
나를 쓴다. 나를 쓰는 시간.
그럴 때 나는 글을 쓴다. 주변을 의식하느라, 운전을 하느라 피로한 눈도 쉬어가는 시간이다. 주변을 의식하느라 온 종일 곤두세웠던 날카로웠던 나의 신경을 가만히 내려놓는다. 단지 손가락만 움직였을 뿐인데, 그리고 그림책 속의 그림에 빠져 들었을 뿐인데 거칠었던 내 마음도 이내 평정을 되찾는다. 그림책과 글쓰기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나를 알아가는 과정 인 것 같다. 그림책을 보고 '아, 나도 이럴 때가 있었지.' 생각하고 내가 좋아하던, 좋아했던 것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나와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함께 하하 웃었던 즐거웠던 기억 속으로 빠져 들기도 한다. 그렇게 그림책을 나를 기억 저 편으로 데려가 주기도 한다. 그 분의 미소가 그랬던 것 처럼.
지금을 연습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고 내 기억이 있다. 언젠가 차리게 될 나만의 그림책방을 준비하기 위해 나는 지금도 그림책을 한 권, 두 권 사들이고 있다. 사소한 것들이 모여 나를 이루고, 내 기억을 새록새록 새롭게 만들어준다. 빨주노초파남보 이외에 무수한 색이 펼쳐진 그림책도 있고 한 두가지의 색인데 단순해서 또 좋은 그림책이 있다. 어둡지만 그다지 칙칙하지 않은, 그리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그런 그림책도 있다. 맛보아야 알 수 있고, 사 봐야 열어보아야 알 수 있다. 그림책도, 우리네 인생도.
하루에도 수 많은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한다. 하루에도 수 많은 갈림길이 있고 선택의 장애가 온다. 이 책을 살까, 저 책을 살까, 이 걸 먹을 까, 저 걸 먹을까. 선택에는 용기가 따르고 머무르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어느 길을 갈지, 어떤 책을 고를 지 모르겠다면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그저 '툭'하고 따르면 된다. 지금을 연습하고 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애꿎은 돌멩이를 탓할 지언정 지금의 선택은 내가 한 것이다. 그리고 연습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안목이란 녀석이 길러지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누군가에게 감동을 전해주기도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그것이 나의 글이 되었든, 나의 간호가 되었던, 나의 미소가 되었던 어떤 형태로든 전달되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느 책에서 보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단,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다.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리하다가 될 일도 안 된다는 걸 몸소 체험하고 느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꿈은 눈웃음이 예쁜 할머니가 되는 것이고, 오늘도 그림책을 고르고 내일도 그림책을 고를 것이다. 단 한사람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려지기를. 내가 그를 생각하며 고른 또 다른 그림책 한 권이 또 그를 웃게 하기를. 어린아이들에게만 보여주는 그림책이 아니라, 삶의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눈가에 잔잔한 주름살이 지어진 그에게도(그녀에게도) 눈물과 웃음을 주는 그런 그림책으로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