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낙서인간 Mar 23. 2020

행복이란 무엇인가 3

마흔여덟 번째 그림과 생각

리튼하우스 스퀘어 Rittenhouse Square, Philadelphia

역사학자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가장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 중 하나다. 과거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사안을 두고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와 맥락을 알고 보면 사안은 다르게 보인다. 지금 가장 중요한 가치가 불과 한 세대 전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문제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릴 때에는 상당수의 가정, 학교, 군대. 직장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욕하고 때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지만  교육이나 훈계의 불가피한 수단이라는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했다. '사랑의 매'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지금은 동기를 불문하고 폭력은 처벌받아야 할 행위로 여겨진다. 길고양이를 마구 잡아 죽이는 행위도 그렇다. 지금은 범죄이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동물의 생명권을 논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요즘 가장 '핫'한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의 매력은 현대인의 가치관과 고정관념을 깨트려 준다는 데 있다. 역사적 맥락을 독특하게 해석함으로써,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이 변치 않는 진리가 아니라는 점을 알려준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행복론을 들어보자. 


행복에 대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정의는 '주관적 안녕'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행복은 자신 속에서 스스로 느끼는 무엇이다. 다시 말해 내 삶이 진행되는 방식에 대해 느끼는 즉각적인 기쁜 감정이나 장기적인 만족감이다. 이를 외부에서 측정할 수 있을까? 심리학자와 생물학자는 설문지를 나눠주고 그 결과를 계산한다. 이런 조사는 역사학자에게 과거의 부, 정치적 자유, 이혼율을 검토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이런 접근법에 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허점을 지적하기 전에 이런 접근법으로 찾아낸 발견을 검토할 가치가 있다. 


흥미로운 결론 중 하나는, 이 실제로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까지 만이며, 그 정도를 넘어서면 돈은 중요치 않다. 만일 당신이 식당 아르바이트로 연간 1,200만 원을 벌며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인데 갑자기 5억 원짜리 복권에 당첨되었다면, 당신의 주관적 안녕은 오랫동안 큰 폭으로 높아진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연봉 2억 5천만 원을 받는 대기업 임원이 10억 원짜리 복권에 당첨되었다면 이로 인해 높아진 행복감은 몇 주밖에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더 세련된 차를 타고 저택 같은 집으로 옮기고 시바스 리갈 12년 산 대신에 밸런타인 30년 산을 마시는 데 익숙해지겠지만, 이 모든 것은 머지않아 예외가 아닌 일상이 되어버릴 것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발견은 질병과 행복의 관계다. 질병이 단기적인 행복감을 낮추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행복감을 감소시키는 것은 두 가지 경우뿐인데, 하나는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병이 사람을 쇠약하게 만드는 지속적인 고통을 주는 것이다. 만일 병이 더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사람들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한다. 이들의 주관적 행복은 건강한 사람과 같은 수준이다. 


가족공동체는 우리의 행복에 돈과 건강보다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가족 간에 유대감이 강하고 구성원을 잘 돕는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행복하다. 결혼은 특히 중요하다. 좋은 결혼은 행복과, 나쁜 결혼은 불행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각종 연구에서 거듭 확인되고 있다. 이것은 경제적 조건이나 신체적 조건과 상관이 없다. 무일푼의 병자라도 사랑하는 배우자, 헌신적 가족, 따스한 공동체의 보살핌을 받는 사람은 소외된 억만장자보다 행복감이 높다. 단 병자의 가난이 너무 심하지 않고, 그 병이 퇴행성이거나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그렇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행복이 부나 건강, 심지어 공동체 같은 객관적 조건에 전적으로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인 기대 사이의 상관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당신이 손수레를 원해서 손수레를 얻었다면 만족하지만, 새 페라리를 원했는데 중고 피아트밖에 가지지 못한다면 불행하다고 느낀다. 복권 당첨이든 끔찍한 자동차 사고든 시간이 지나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비슷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태가 좋아지면 기대도 부풀게 마련이라, 객관적 조건이 극적으로 좋아져도 불만일 수 있다. 상황이 나빠지면 기대가 작아지기 마련이라, 심각한 질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행복감은 이전과 비슷할 수 있다.


만일 행복이 기대에 의해 결정된다면,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두 기둥-대중 매체와 광고 산업-은 지구의 만족 저장고를 생각지 않게 고갈시키는 중일 수도 있다. 만일 당신이 5천 년 전의 18세 젊은이라면 아마도 스스로 외모가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을에 남자라고는 50명밖에 안 되고, 대부분은 늙었거나 얼굴에 상처나 주름이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어린아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오늘날의 10대 청소년이라면, 스스로 부적격자라고 느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설사 학교에서 만나는 다른 애들이 못생겼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당신은 그 애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TV나 페이스북, 대형 광고판에서 매일 보는 영화배우, 운동선수, 슈퍼모델과 비교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할 정도의 돈과 악화되지 않는 건강을 가지고 화목한 가정과 안전한 마을에 살면 행복의 객관적 조건은 갖춰진 것이다. 문제는 기대다. 기대를 낮추면 행복 수준은 올라간다. 그런데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높은 꿈을 가져라'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으면서 우리는 자라왔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TV와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멋지게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진다. 남과 비교하지 않으면서 살 수 있을까. 최소한 한국 사회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까? 행복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이란 무엇인가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