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심리학의 연구 결과
서점에 가보면 '행복'에 대한 책들이 매대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행복'을 주제로 하는 대학 연구소가 미국에만 1백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언제부터 '행복'이 이렇게 인기 있는 상품이 되었을까요.
90년 대까지만 해도 지금 '행복'에 대한 책이 있던 자리는 '성공'에 대한 책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21세기에 들어 '잘 사는 것'의 정의가 양적인 것에서 질적인 것,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세계 대전이 없는 세상, 과학기술의 발전과 세계화가 가져다준 풍요로운 세상에서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멋 내고 성공하는 것보다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즐거움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흐름에 따라 '행복'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학문적으로는 대체로 두 분야에서 '행복'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심리학과 뇌 과학입니다.
긍정심리학 (Positive Psychology)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마틴 셀리그먼 교수가 창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전까지의 심리학은 우울, 불안, 스트레스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연구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실제로 90년대까지는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학술 논문 편수가 긍정적인 감정의 논문을 압도할 정도로 많았습니다. 셀리그먼 교수는 부정적인 감정을 제거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태도로 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것이 긍정심리학의 주요 연구 과제인데, 특히 미국에서 매우 큰 인기를 끌면서 이와 관련한 교수와 작가들이 속속 스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행복해지는 비법'을 가르쳐 준다는 수백 권의 자기 계발서와 심리학 서적의 상당수는 긍정심리학의 연구 결과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행복심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행복의 정도는 유전적 요인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습니다. 즉 타고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란성쌍둥이들은 행복 점수가 무척 비슷하며 다른 환경에서 떨어져 살아도 행복도에 대한 서로 간의 유사성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반면 이란성쌍둥이의 경우에는 함께 자랐든 따로 자랐든 행복의 수준에서 전혀 연관성을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행복 설정값을 타고 납니다.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결혼이나 교통사고, 직장이나 사는 곳이 바뀌는 것과 같은 중요한 삶의 변화가 행복 수준을 끌어올리거나 내릴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원래의 설정값으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재산이나 외모 같은 외부 조건이 주관적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최고급 스포츠카를 타든 고물 트럭을 타든, 젊든 늙었든, 잘생겼든 추하든, 대도시 빈민가에 살든 아름다운 해변에 살든, 당신의 현재 행복이나 앞으로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은 별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복권에 당첨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직장에서 승진하고 성형수술로 아름다워져도 더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는 '쾌락 적응' 때문입니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길을 걷다가 차가운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에어컨 방에 들어오면 천국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곧 시원함에 익숙해지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추위를 느끼기까지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생리적, 감각적 적응이 쾌락의 영역에서도 일어납니다. 일신상의 변화는 단지 잠시 동안만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줍니다.
그렇다면 행복의 지속은 불가능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행복 점수의 상당 부분은 -유전적 요인만큼은 아니지만- 우리의 일상 활동에 달려 있습니다. 일상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바꾸는 노력을 통해 행복 수준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습니다. 긍정심리학은 불행한 환경이나 타고난 우울감을 극복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례를 연구해서 그들의 공통점을 추출해 냈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행복해지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연구자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그 방법은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자신이 느끼는 불행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라.
약점을 고치려 하지 말고 강점을 활용하라.
의미 있는 목표를 설정하라.
감사하라.
낙관적으로 생각해라.
남들과 비교하지 말아라.
친절해라.
주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라.
용서해라.
종교 생활을 해라.
운동과 명상으로 몸과 마음을 보살펴라.
이런 생각과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어라.
긍정심리학의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긍정심리학이 제시하는 행복해지는 방법은 전제와 결과를 뒤집음으로써 반박이 가능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낙관적이다. 그러니 행복해지려면 낙관적으로 생각해라.
☛ 낙관적인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니까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작은 일에도 감사한다. 그러니 행복해지려면 감사해라.
☛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니까 감사하는 것이다.
또 하나, 긍정심리학은 '행복'의 정의에 대해서는 깊이 연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행복한지 아닌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굳이 행복에 대한 엄밀한 정의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긍정심리학에서 말하는 행복은 '기쁨과 만족을 누리면서 자신의 삶이 좋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상태'입니다. 이에 따라 긍정심리학은 '당신은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점수를 매기는 방법으로 행복도를 측정합니다. 수치화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대단히 주관적이고 환경 변화에 취약한 방법입니다.
긍정심리학에서는 '무엇이든 노력하면 된다'는 미국식 긍정 만능주의, 한때 유행했던 더 시크릿(The Secret)류의 유사과학이나 신비주의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긍정심리학의 연구 결과는 받아들이되 '행복'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깊이 있는 탐색이 더 필요하다는 게 저의 결론입니다.
✈ 그림 설명: 프랑스 니스에 있는 마티스 미술관(Musée Matisse)을 종이에 과슈로 그려보았습니다. 마티스는 1917년부터 37년간 니스에 머물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하는데요. 미술관 건물은 17세기에 세워진 이탈리아식 별장으로 강렬한 붉은색으로 칠해진 벽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마티스는 "색은 단순할수록 내면의 감정에 더 강렬하게 작용한다"라고 말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