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는 약물이 개발된다면?

뇌과학이 말하는 행복

by 낙서인간

과학적으로만 보면 우리의 생각, 감정, 느낌은 순전히 뇌의 작용입니다. 신경전달물질이 신경세포인 뉴런에서 뉴런으로 시냅스를 통해 전달되면서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 다양한 생화학 물질, 호르몬이 작용합니다. 행복한 감정에 관여하는 대표적인 호르몬은 바로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엔도르핀입니다. 각각의 특징을 아주 간략히 알아봅시다.


☺ 도파민(Dopamine)

도파민은 우리가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 활성화됩니다.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의욕과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도파민이 부족하면 매사에 의욕이 없어지고 게을러집니다.


☺ 세로토닌(Serotonin)

세로토닌은 우리가 의미 있거나 중요하다고 느낄 때 활성화됩니다. 다른 호르몬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평상심을 유지시키고 행복감을 지속시킵니다. 외로움과 우울감은 세로토닌 수준이 낮을 때 나타납니다.


☺ 옥시토신(Oxytocin)

옥시토신은 좋아하는 사람을 보거나 매력을 느낄 때 분비됩니다. 사람 사이에 친밀감을 갖게 하고, 오르가슴을 느낄 때 방출됩니다. 자식을 보살피도록 유도합니다. 신뢰 화학물질, 혹은 포옹 호르몬, 사랑 호르몬이라고 불립니다.


☺ 엔도르핀(Endorphins)

엔도르핀은 몸 안에서 생기는 모르핀(endogenous morphine)이라는 뜻입니다. 통증에서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분비됩니다. 모르핀보다 800배 강력한 진통제입니다. 마라토너가 느끼는 'runner's high'가 엔도르핀에 의한 것입니다.


행복 호르몬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수준이 증가합니다. 예를 들어, 목표를 성취하거나 칭찬이나 상을 받을 때, 섹스를 하거나 격렬한 운동을 하거나 몰입하거나 웃을 때 활성화됩니다. 행복 전문가들이 행복해지는 방법이라며 권하는 것들도 사실 따지고 보면, 모두 이런 행복 호르몬을 활성화시키는 행위들입니다. 과학적으로만 보면, 우리가 느끼는 행복은 외부 변수와 별로 관련이 없습니다. 행복한 감정은 혈관 속을 흐르는 다양한 호르몬과 뇌의 신경세포를 오가는 전기신호의 번쩍임에 따른 반응일 뿐입니다.


행복을 이렇게 정의한다면, 우리가 개인과 인류의 행복을 증가시키기 위해 집중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우리 뇌의 작동 시스템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부작용 없이 이를 조작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프로작을 비롯한 수십 종의 항우울제나 각성제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요. 우리는 마약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금지하지만, 거의 같은 기전과 효능을 가진 호르몬 조절 약품에 대해서는-과용하지만 않는다면-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대의 주술사로부터 LSD에 심취했던 비틀스와 스티브 잡스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 특히 종교·예술·문화는 신비로운 환각을 느끼게 해주는 약물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어 왔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호르몬을 조절해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약물에 대해 좀 더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사업가와 과학자들이 다른 분야에 들이는 노력과 자원을 행복 약물(Happy Pill) 개발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인류의 행복을 극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약물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짜잔!


논리적이고 확실하게 행복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올더스 헉슬리입니다.


1932년 올더스 헉슬리는 소설 <멋진 신세계>를 출간했습니다. 철학적인 질문을 가득 담고 있는 이 SF소설 속 미래 세상에서는 대전쟁 이후 개별 국가가 사라진 상태입니다. 지구 전체를 지배하는 세계 정부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효율'과 '행복'입니다. 모든 인간은 인공 수정으로 태어나는데, 미리 정해진 자신의 계급과 직업에 필요한 신체적 지적 능력을 부여받게 됩니다. 모든 인류는 태아 시절부터 조건반사와 수면 암시 교육으로 자신의 계급에 맞는 윤리에 세뇌됩니다. 연애와 섹스는 매우 자유롭지만, 직접적인 육체 접촉이나 배타적인 관계는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심지어 모성애조차 도덕적인 금기로 설정됩니다. 불행하거나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소마'라는 일종의 마약을 정부가 지급합니다. 이것을 복용하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과 안정감을 느끼게 됩니다. 부작용은 없습니다. 이 멋진 신세계에서는 모두가 만족하고 항상 행복하기 때문에 폭력도 없고 정치적 혼란도 없습니다.


이런 세상, 괜찮을까요? 평화롭고 행복할지는 몰라도 이런 세상에 살고 싶은 사람은 아마 얼마 없을 겁니다. 우리 대부분은 쾌락 만큼이나 삶의 의미가 중요하니까요.


행복은 쾌감과 동의어가 아닙니다. 쾌감을 부정적으로 여기거나 멀리할 필요는 없지만, 쾌락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멋진 신세계>에 던져진 '원시인 존' 같은 갈등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셰익스피어를 읽고 자란 '존'은 성인이 된 후 우연히 문명사회에 가게 됩니다. 존은 그곳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스타가 되지만, 가치관에 극심한 혼란을 느끼고 광기에 휩싸이게 되며 결국 파국에 이르게 됩니다.


행복에는 단순한 감각적 만족을 넘어서는 측면이 존재합니다. 니체가 말한 것처럼, 의미가 있다면 인간은 극심한 고난 가운데에서도 지극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역으로 무의미한 삶은 아무리 안락할 지라도 끔찍한 시련일 수 있습니다.


칼랄라우 트레일.jpg

✈ 그림 설명: 하와이 카우아이 섬의 나팔리 코스트(Kauai Napali Coast)를 종이에 과슈로 그려보았습니다. 신들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카우아이 섬에는 다양한 트레일 코스가 있는데요. 에메랄드 해안 절벽을 타고가는 나팔리 코스트가 제일 유명합니다. 27km에 이르는 트레일을 완주하려면 최소 이틀 이상 걸립니다. 트레일 입구에서 매일 입장객 수를 제한하기 때문에 반드시 예약을 하고 가야 합니다. 모기떼에 시달려서 힘들었지만 언젠가 꼭 다시가고 싶은 너무나 신비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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