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Korea (again)
Accept it, deal with it, and try not to let it kill us.
받아들이고, 감당하고, 그것이 날 죽이게 두지 않을 것.
정말 좋아하는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Grey’s Anatomy」에 나오는 대사이다. 살아가면서 참 많은 상황에 적용이 가능한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문구가 내 안에 그토록 깊이 각인되었던 건 그렇지 못한 경험을 해 본 탓이다. 서울로 돌아온 나는 너무 많은 것들에 나를 힘없이 내어주었다. 미움에, 욕심에, 좌절에. 받아들이지도, 감당하지도 못했고 결과적으로는 그로 인해 마음이 죽어갔다. 그리하여 나는 이 시기를 ‘내가 없던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주변에 휘둘리는 데 시간을 다 쓰고 말았다. 인생의 많은 시기를 나는 ‘그때로 돌아가도 어쩔 수 없어,’ ‘그게 최선이었어,’ 하며 사는 편인데, 이 시기만은 그렇지 못하다. 이렇게 했더라면, 저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 후회를 안고 살았고 지금도 그 마음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경험함으로 인해 성장을 이루었겠지만, 과연 정말 그렇게까지 해서 이루어야 하는 성장이었을까, 그렇게밖에 이룰 수 없는 성장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있다.
해소되지 않는 갈증
캐나다에서의 짧은 일탈을 뒤로하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입시 준비를 시작했다. 로스쿨에 들어가기 위한 수험 생활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학점에 대한 집착도 극에 달하여 결국 한 학기 4.5 만점에 평균평점 4.5를 달성했다. 그럼에도 기쁘지 않았다. 다행이다, 그 감정이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때부터 성과나 성취로는 내 마음속 구멍이 메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채야 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없이 폄하하고 이루고 싶은 일은 비이성적으로 추켜세웠다. 리트(주: LEET, 한국의 법학적성시험) 준비를 했고, 시험을 치른 후에는 면접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법학전문대학원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들었다.
이때도 역시 목표로 하던 학교에는 합격하지 못했고 모교의 로스쿨을 가게 되었는데, 만족도 인정도 할 줄 몰랐던 나의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같이 스터디를 했던 사람들 중 3분의 2는 불합격을 하고 꿈을 접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감사함을 몰랐다. 이때 나의 시각은 많이 왜곡되어 있었다. 한 번의 성공. 타인의 선망을 한 번만 받아 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았다. 그조차 나 자신이 만든 기준인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간절한 만큼 주어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이때의 나는 나의 집착마저 간절함으로 오인했다. 이렇게나 간절한데, 왜 내 것이 될 수 없을까. 그것이 한없이 억울하고 서글펐다. 나의 불운이 (사실은 불운조차 아님에도) 불행의 이유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전혀 행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외부의 상황이 바뀐다고 하여 나의 마음이 달라졌을 리는 없다.
새로운 세계
로스쿨에 들어가고도 대학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이 계속되었다. 다만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고등학교의 경험과 대학의 경험이 뒤섞인,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에 지고, 절박한 사람들에게 실망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등록금으로 어떠한 ‘권리’를 샀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내가 그때까지 본 가장 이기적인 인간군상이 되었다.
개개인을 탓하고 싶지는 않고, 그럴 생각도 없다. ‘그런’ 사람들이 로스쿨을 가는 것이 아니라, 로스쿨이라는 비인간적인 환경이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다고 나는 생각한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꺾이는 경험을 함으로써 겸손을 배우기에 로스쿨을 구성하는 학생들은 이미 자아가 완성된 후였다. 자기방어기제가 강하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도태될 수 없다는 생존본능에 의해 학생들은 모두가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이 되었다.
그 안에서 나는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많이 웃고, 어떻게든 타인을 배려하려 했다. 내가 손해를 보는 일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으로 통용되는 그곳에서 나만은 그렇게 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내가 가식적이라는 것이었다.
타인에 의한 정의定義
그 말을 면전에서 들었던 날의 충격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정확히는 “난 네가 가식적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내 보니 그냥 그런 사람이더라.”라고 했으니, 나의 성격을 오해해서 미안하다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가식적’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까로 그 말을 확대해서 해석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가까이서 겪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 사람들의 시선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한 노력에 돌아오는 말이 고작 이런 것이라니. 상처가 깊게 남았다.
로펌Law Firm에 인턴을 나갔던 때, 카페에서 주니어 변호사의 컵에 빨대를 꽂아 주니 “저한테는 잘 보일 필요 없어요.”라고 했다. 내가 가진 상냥함이나 배려는 이 세계에서 고작 그런 의미구나, 하고 생각했다. “조금 톤 다운을 시켜.”라는 말도 들었는데, 있는 그대로의 외모에 자신이 없었기에 그를 숨기기 위해 꾸미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던 내게는 그 말마저도 상처였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스치는 바람에도 살이 에는 듯한 아픔을 느낄 정도로 단단하지 못한 상태였다.
좋은 사람
그때까지 나의 인생을 관통하는 하나의 소망 혹은 목표가 있었다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기준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겸손하고, 친절하며, 따뜻하고, 포용력이 넓은 사람……. 내가 미덕으로 여기는 여러 가치들이 생겼고 그를 충족하면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논리의 맹점은, 내가 추구할 가치를 세우고 그를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건 ‘나’의 일이지만, 그런 내가 좋은 사람인지 판단하는 주체는 ‘타인’으로 두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좋은 사람’이란 건 상대적인 개념인데, 당시의 나는 그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중심은 너무나 쉽게 흔들렸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는 허상에 불과한데, 나는 그를 이루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반응과 태도에 따라 내가 나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평가하기도, ‘나쁜 사람’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결국 남는 것은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지는 감각 뿐이었다. 타인을 의식하느라 정작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사는 것이 힘들었다. 말 그대로, 매일을 살아가는 데 너무 많은 힘이 들어갔다.
모순된 바람, 멀어지는 꿈
이 시기의 나는 직업적으로도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남들이 얘기하는 성공, 흔히 ‘검클빅’이라고 하는 검찰, 로클럭Law Clerk, 빅펌Big Firm의 성공을 거두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곳이 있기를 바랐다. 내가 의미 있다고 여기며 살아온 것을 가치 있게 여겨 주고, 그걸 지키며 살아오기 위해 애쓴 날들을 알아주는 사람을 갈구했다.
학교에서 유일하게 그 일을 해 주었던 분은 나의 지도 교수님이시다. 해당 직역에 그다지 큰 뜻이 있지 않았음에도, 검찰 선발 시험에 불합격하고 우는 내게 교수님은 “변호사 시험조차도 떨어져도 괜찮아.”라고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했다. 그 시험에 떨어진다는 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게 너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라고 얘기해 주고 싶으셨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실패로 나의 인생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도. 다만 내가 그 지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학교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이때 교환학생을 신청하여 미국에 다녀왔었는데, “체계적으로 법학을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을 벗어나는 것이 우려스럽다.”라는, 인턴을 했던 로펌 파트너 변호사님의 말씀이 현실이 되어 나는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러나 짧은 시간 안에 공백은 메워지지 않았고, 학점은 점점 떨어졌다. 만족을 몰라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나는 객관적으로 뒤처진 학생이 되어 있었다.
마치 내가 아닌 것처럼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여러 대형 로펌들과 검찰에 인턴을 나갔다. 당시에는 로스쿨에서 이것이 소위 ‘잘 나가는’ 학생들이 거치는 관문이었는데, 채용으로 이어지는 좋은 결과가 있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갈구하면서 정작 내가 나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 과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고, 그마저 성취에 대한 나의 간절함이라고 치환하여 생각했다.
진정 이루고자 했다면 욕심에 맞는 노력이라도 기울였어야 하는데 제대로 된 노력을 하지도 못했다. 사람들을 미워하는 데 힘을 다 쓰고 있으니 예상하기 어렵지 않은 결과였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모습이 좋게 보일 리 없다는 정도의 사회화가 되어있고, 또 사람을 미워하는 나 자신의 못난 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던 나는 그 마음을 숨기는 데마저 힘을 쏟았다.
가식적이라는 말은, 어쩌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인생에 최저점最低點이 있다면
이 시기를 나는 감히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도달했던 최저점이라고 얘기한다.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어떤 것도 지키거나 인정받지 못했다. 그리고 나를 정의하는 타인의 시선에 휘둘려 나도 나를 인정하지 못했다. 장점이었던 모든 것이 퇴색되기 시작했다.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지키기 위해 애쓰며 살아온,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지켜왔던 모든 것들을 잃어가는 기분이었다. 공부로 나의 가치가 결정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학생의 본분인 그것을 나는 결국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도저히 해낼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천천히, 찬찬히, 그러나 분명하게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무너지는 나를 지탱해 준 것은
그나마 학교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친구들 덕분이었는데, 아주 단순하게는 로스쿨이라는 환경과 경쟁에서 벗어난 관계 자체가 나에게는 숨통이 트이는 일이었다. 로스쿨 시기의 대부분은 부정적인 경험과 기억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그나마 소소하게 웃고 행복했던 시간을 꼽으라면 이 친구들과 함께했던 때이다. 주변에 나와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과 힘이 되는지 나는 나의 친구들 덕분에 알게 되었다.
그들은 ‘무조건적인 나의 편’이었고, 흔들리는 나에게 끊임없이 내가 지켜야 하는 중심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남들이 얘기하는 성공을 거두어야 하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나에게 “그렇게 생각을 할 필요가 하나도 없는데, 그 환경 때문에 네가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게 속상해.”라고, 친구들 중 한 명이 말했다. 점점 왜곡되어 가는 나의 사고를 탓하거나, 그런 나를 떠나지 않고 내 곁을 지키면서 나를 잃어버리지 말라고 말해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게 많이 감사했고, 지금도 감사하다.
‘나’라는 사람은
섬광과도 같은 깨달음을 얻은 것은 3년이 지나고 변호사시험이 다가온 때였다. 친구들이 시험을 잘 보라며 맛있다고 유명한 떡집의 떡과 함께 응원 편지를 주었는데, 그 편지에 쓰여 있던 글귀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 내가 아는 너는 정말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야. ]
잘하겠지만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친구는 얘기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좋은 사람이라고……. 이렇게 가까운 곳에 분명 있었다. 나의 예쁜 부분을 보아주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곳에 갇혀 자존감이 깎여 가고 있는 내게,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있는 나에게 그 말은 생명줄 같았다. 시험장 주변 호텔에서 밥을 먹으며 엉엉 울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변호사 시험 첫째 날 아침이었다.
네 번째 편지.
소중한 나의 친구들에게.
친구라는 말의 의미를 쉽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는 ‘치부를 드러내도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난 너희의 존재가 정말 감사해. 나의 치부를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기에 너희와 있을 땐 늘 있는 그대로의 나인데, 그대로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너희가 알게 해줬거든.
어느덧 우리가 서로의 인생을 채우던 시간이 그렇지 않은 시간보다 길어지고 있다. 그 시간 동안 나의 성장을 함께해 주어 고마워. 아픔을 달래주어 고마워. 기쁜 순간들에 같이 환호해 주어 고마워.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결코 혼자 남겨지지 않는다는 감정을 알게 해주어 고마워.
각자가 다른 길을 가고 있고, 어쩌면 앞으로 그 간극은 더 벌어질지도 모르지만, 너희와의 추억이 나를 살게 하는 한 나는 언제나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때에 머물러 있을 거야. 분명한 건, 나는 너희의 행복만을 바라. 너희가 나에게 그래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듯이.
언제나 너희의 돌아갈 곳이 되고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