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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Aug 05. 2024

묵언수행

왓파탐와 [Wat Pa Tam Wua]


당신이 옳다. 명심.


ภาษาไทย : 코쿤캅/카 [감사합니다]


치앙마이 도착

치앙마이

 아침을 세븐일레븐에서 간단히 해결하고 방콕 공항을 거쳐 오후 5시경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직선으로 뻗은 깨끗한 도로 옆, 강가를 따라 안전한 보행자길이 마련되어 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나 이곳에 살고 싶어 하는지 짐작으로나마 이해가 됐다. 한눈에 봐도 살기 좋은 도시임이 느껴진다. 그 감상을 이곳에 살고 있는 친척형에게 보냈다. 며칠 뒤에 만나게 될 텐데 코시국 이후로 처음 만나는 거라 아주 기대가 된다.

근육몬

 급하게 일정을 바꿔 내일 바로 체크아웃하게 될 숙소에 도착. 짐을 풀자마자 강가로 나와 음악을 들으며 달리기를 한바탕 했다. 개운

Pad thai 5rod

 나는 태국에 머물며 팟타이를 일주일에 5번 이상은 먹을 것이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그날의 기억. 10년 전쯤 혜화의 한 태국음식점에서 맛본 이 음식은 미처 몰랐던 미뢰의 감각을 느끼게 해 주었다. 단짠시콤매콤기름 쌀국수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맛을 조화롭게 섞어낸 완성형의 음식. 땅콩과 레몬의 궁합과 무자비할 정도로 커다란 새우는 그저 감동이다. 은혜롭게도 집 바로 앞에 팟타이전문점이 있어 그곳에 다녀왔다. 왼쪽 사진에 보이는 채소 무리 중 기다란 죽순 같은 것은 바나나꽃을 잘라 둔 것이다. 바나나꽃을 먹는 것은 처음 봤는데 밍밍한 맛과 아삭한 식감이 음식과 잘 어울린다.


쉿!

Chiang mai arcade 2[Bus Terminal]

 다음날 아침. 앞으로 며칠 동안 옷가지와 잡다한 물건들은 필요가 없어 숙소에 맡긴 뒤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빠이를 거쳐 미얀마와 국경을 접한 메홍손(Mae Hong Son)에 있는 사원, 왓파탐와(Wat Pa Tam wa). 사원 체크인 시간에 맞춰 아침 9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아래의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버스를 예매할 수 있다. 1인당 250밧의 편도 티켓으로 좌석을 확정하면 1인당 300밧.

https://premprachatransports.com/

치앙마이 - 탐와 버스 예약
죽음의 행진

 3시간을 달려 빠이에 도착, 휴게소에 세 번 들르고 2시간을 더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장장 5시간의 행진. 인도의 도로는 깨지고 없어진 곳이 많아 천천히 달렸는데 태국의 노면은 관리가 잘 되어있어 자동차가 아주 쌩쌩 달린다.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엉덩이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며 어찌어찌 도착. 나중에 친척형에게 듣기로는 이 길이 108개의 커브가 있는 고난도의 도로라고 한다.

1.4km

 버스(미니밴)에서 내려 표지판을 따라 20여분을 더 걸어가야 한다.

멋진 농장.

Wat Pa Tam Wua

 도착! 리시케시 요가원에서 사귀게 된 스페인 친구가 추천해 준 사원. 인도에 오기 전 치앙마이를 여행했다는 그녀는 우리에게 잘 어울리는 곳이라며 강력히 추천해 줬다. 무료로 머물며 스님들과 하루 수행 일과를 같이 보내는 템플스테이인데 최소 오후 4시 이전에는 도착해야 방을 배정받을 수 있다.

아무말도 하지 마요.

 각자의 방을 배정받고 의복을 배급받은 뒤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이뤄졌다. 이곳은 최소 2박 이상(수업 참가 필수), 최대로 무한히 머무를 수 있는 곳으로 우리의 대승불교(마하야나)와는 조금 다른 상좌부 불교전통의 사원이다. 사실 사원이라기 보단 명상센터에 가깝다. 우리는 3일을 이곳에 머무르기로 했다.


무료로 개방된 종교 공간이기 때문에 엄격한 규칙이 있다.

1. 흡연, 음주 금지 (적발 시 즉시 퇴실)
2. 이성 간 접촉 금지
3. 발바닥 보이지 않게 앉기
4. 운동, 요가 금지
5. 음악 듣거나 부르기 금지
6. 잔디 위에 앉기 금지
7. 바깥에서 낮잠 금지
8. 수업 중 눕지 않기
9. 책 밟지 않기
10. 큰 소리로 떠들지 않기
11. 5시 이후에는 동굴 주변에 가지 않기(?….)
와…

 관리가 엄청나게 잘 되어있다. 무료로 머무는 공간이지만 먼 길을 지나 이곳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이유와 그 마음이 잘 느껴진다. 하루 일과 중 청소 시간이 있는데 하루 일과 중 가장 활동적인 시간으로 모두들 적극적으로 청소에 임한다.

부처님이 구석에 있다.

 이곳은 위빠사나(Vipassana) 명상을 수행하는 곳으로 부처(Buddha)의 제자(Sangha)를 스승으로 모시며 그의 가르침을 전한다고 한다. 때문에 가운데에는 그 스승의 동상이 있고 왼쪽에는 더 화려하고 커다란 모습의 부처의 동상이 있다.


 위빠사나 명상은 알아차림 명상이다. 마음 챙김 명상이라고도 부르는데 내 몸과 정신을 바로 알아차리는 불교의 명상법이다. 부처님 당시의 언어로 ‘여러 가지로’와 ‘봄’의 합성어로 수행의 대상을 여러 가지로 볼 수 있는 지혜라는 뜻이다. 지금 이곳에 있는 대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알아차리면서 확실히 안다는 뜻이다. 약간 복잡해 보일 수 있는데 그냥 ‘지금에 집중해 아주 작은 것까지 알아차린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부처는 무아의 경지에 도달해 없음의 상태로 세상을 볼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것은 없고 이것도 없고 심지어 ‘나’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가르침은 ‘나’는 있다고 가정한 상태로 논리를 풀어내는 것이다. ’자아‘까지 없애는 경지는 너무 어려우니 그전까지만 우선 공부해 보겠다는 뜻 같다. 초보자용 튜토리얼 같은 느낌으로 우리와 같은 입문자들이 많이 찾아온다. 전라북도 신안군에도 위빠사나 센터가 하나 있는 걸로 알고 있음.

하루 일과
05.00 AM - 자습 (세수하는 시간)
05.30 AM - 사원관리 및 식사 준비
06.30 AM - 탁발식
07.00 AM - 아침식사
08.00 AM - 명상수행
10.30 AM - 탁발식
11.00 AM - 점심식사
12.50 PM - 명상수행
04.00 PM - 사원관리(동적명상)
05.00 PM - 휴식
06.00 PM -저녁명상
08.30 PM - 자습
09.00 PM - 취침
저녁 명상

 잠깐의 휴식 후 저녁명상에 참석했다. 200명 정도 되어 보이는 수행자들과 알 수 없는 소리의 노래를 부르며 한 시간, 몽롱한 상태로 좌선명상을 한 시간, 몽환적이고 약간은 공포스러운 경험이었다. 아리 애스터 감독의 <미드소마>의 마을에 들어온 기분. 한 마디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고 심지어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전한 정적 속 밤길을 걸으며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만트라를 영어로 작사해 다 같이 따라 부를 수 있던 게 신기했음. 성차별 좀 심함.


두어 밤

 다음날 새벽 다섯 시
of course

 아침 식사 전 사원관리시간이다. 도우고 싶은 일이 있으면 무엇이라도 도우라는 말에 나는 당연히 주방으로 향했다. 취사병시절 생각도 나고 오랜만에 사람들이랑 양파를 다듬을 생각에 신이 났다. 다리를 타고 오르는 개미를 저지하며 우리는 마늘과 양파를 다듬었다. 태국 마늘은 속껍질이 부드러워 마지막 한 겹을 벗기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탁발식

 아침식사 준비를 마치고 탁발식이 시작됐다. 한 줌의 밥을 나눠 받고 자리에 앉아있으면 세 명의 스님이 커다란 놋항아리를 들고 나타나 돌아가며 학생들에게 밥을 받는다. 탁발은, 출가자가 가장 간단한 생활태도를 갖도록 한다는 의미로 수행자의 자만과 아집을 버리게 하고 무소유의 원칙에 따라 끼니를 해결하는 것조차 남의 자비에 의존하는 수행 방식이다. 때문에 수행 중인 스님은 음식을 꼭 누군가에게 받아야만 한다.

검둥이

 저 검은 강아지는 알림 종이 울릴 때마다 사원에 제일 먼저 자리를 잡고 종소리에 맞춰 울부짖으며 흩어진 사람들에게 집합을 재촉한다. 똑똑한 강아지다.

어제 누군가가 손질한 호박

 생각보다 되게 맛있는 아침식사

마지막 식사

와 점심. 이건 아까 우리가 손질했던 오이다!

관리시간!

 아직 덜 여물어 떫은 잭푸르츠를 사람들과 나눠먹고, 바닥에 떨어진 망고를 주워 먹으며 휴식시간을 보낸 뒤 청소시간이 되었다. 빗자루는 인기가 많아 구하기가 힘들었지만 결국 계단 밑에 숨어있던 것을 하나 찾았다.

추천!

  한국인들이 두고 간 책이 몇 권 있어 재밌어 보이는 제목의 책을 집어 지내는 동안 읽었다. “우울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흐름을 타야 하는 파도다” 이 책을 읽은 것만으로도 이곳에서의 시간은 가치 있었다. 매우 심도 깊은 책.


 명상수업 중 스님이 전날 받은 질문에 대해 답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내용이 크게 와닿았다.

어떻게 하면 집착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나’를 항상 의식하지는 못한다. 어떤 이야기가 생각이 나면 꿈을 꿀 때처럼 나는 거기에 몰입해 ‘그곳’에 있게 된다. 문제는 그 이야기가 아무 때나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른다는 점이다. 그 이야기에 몰입해 불쾌했던 감정들을 떠올리며 우리의 몸은 앞으로 벌어질지도 모르는 비슷한 상황에 대비한다. 그러면 나는 그 불쾌했던 상황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나’는 기분이 나빠진다.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에 빠지는 이유는 ‘지금’에 집중하지 못해서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온전히 느끼지 않고 옛날 생각과 앞으로의 걱정만 하니까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생존에 불리한 상황을 자꾸 상기시켜서 위험에 대비할 수 있게 교육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우리 뇌는 계속 교육할 수 있게 ‘집착’이라는 형태의 연료를 주입한다.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집착. 결국 우리가 무엇에 집착하는 이유는, ‘지금, 여기’에 집중하지 못해서이다.


캬.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님은 참 똑똑한 사람들이 하는 거구나’ 싶었다. 매일 공부만 하는 사람들이니 여간 똑똑한 게 아닌 것 같다.

깜깜이

 그렇게 사흘이 지나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갈 때가 됐다. 이름 모를 영리한 강아지의 배웅을 받으며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친절한 사람들

 다시 20여분을 걸어 나가야 했는데 때 마침 근처에 있던 주민분들이 정류소까지 태워다 주셨다. 할머니댁에 온 것 같은 느낌.

자동차 이제 진짜 끝

 그렇게 다시 5시간을 달려 숙소로 돌아왔다. 이젠 더 이상 장거리이동은 없다….. 이제 진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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