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strip Oct 30. 2019

[Indonesia] Lombok

3. 롬복

 내 여행 인생엔 세 가지 굵직한 사건들이 있다. 첫 째는 베트남에서 동네분들을 초대해 음식을 해줬을 때고 두 번째는 호주 대륙 횡당 때에 사막에서 바퀴가 터져 고립될 뻔 한 사건이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가장 기억에 남는 롬복에서의 1주일이다


1. Lombok - 사삭족

롬복에 사는 사삭족은 발리 사람들과는 다르게 무슬림을 믿고 그들만의 언어인 '사삭어'를 구사한다.
Public Boat

 하리에게 물어본 결과 퍼블릭 보트로 30분이면 롬복섬의 방살항구(Bangsal)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트라왕안 섬 해안가에 있는 큰 여행사인 Eka Jaya 앞에 있는 하얀색 건물로 들어가면 15k(한화 1200원)에 롬복으로 가는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편견이 없기로 유명한 내가 여행을 다니며 절대 믿지 않는 세 부류가 있는데 택시기사님들과 액세서리 상인, 그리고 티켓 상인들이다. 이 항구 입구에 열 배는 더 비싼 티켓을 파는 상인들이 많으니 가볍게 거절하고 들어가도록 하자.

내가 강하리입니다. 내가 스무 살이에요.

 면도를 닮은 귀요미 하리를 다시 만났다. 직접 항구로 픽업을 와줬는데 이 녀석 옷차림이 나보다 더 한국스럽다.

나만보면 술래잡기 시작이다. 대한민국 수도방위 사령부 기동대 취사병 뜀걸음의 위력을 보여줬다.

 인도네시아는 특별히 국가에서 지정한 국교는 없지만 법적으로 한 개의 종교는 정해야 한다. 심지어 주민등록증에도 떡하니 적혀있으니 문화적으로 종교의 영향이 큰 나라임은 분명하다. 롬복섬은 발리섬과는 다르게 힌두교가 아닌 무슬림을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방문한 Sesela라는 마을은 무슬림을 믿는 마을로 200명 정도가 한 집단을 이루고 산다. 그중 70명 정도가 한 가족이라 서로 간의 유대가 끈끈히 연결되어있다. 길가에 나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니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귀여운 동네가 나타났다. 짐을 두고 하리가 소개해준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망고를 사 와 할아버지와 나눠먹으며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할아버지와 여동생

 할아버지가 갑자기 '우유!!' '담배!!'라고 외치신다.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한국어 맞음. 먼 친척 중 한 분의 아내분이 한국분이신데 전에 놀러 와 몇 가지 단어를 알려주고 갔다고 하신다. 핸드폰이나 고프로를 가져가지 않아 사진을 찍진 못했지만 동네 뒤편에 있는 농장에 구경을 다녀왔다. 맨발로 이곳저곳을 누비며

"이건 그냥 망고고, 이건 허니망고야, 이건 카사바고, 또 이건 블라블라블라"

옆에선 작은 돌덩이를 던지며 망고를 따는 동네 아이들이 보인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추처럼 생긴 녀석이 맛있어 몇 개 따내어 걷는 내내 주어먹곤 했다.

뭐 이래저래 다 소박하고 귀여움

 하리네 할아버지가 기타를 보시더니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고 하신다. 내용을 대충 들어보니 "롬복에 온 걸 환영해, 우리 동네에선 옥수수가 많이 자라지~~"라는 식의 이야기였다. 나도 덩달아 한국 노래 몇 개 불러드렸는데 나중엔 인도네시아의 유명한 노래를 하나 연습해가는 것도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교편생활
 동네를 구경하던 중 하리가
"헤이 브로 여기 동네애들 공부시켜주는 학교가 있는데 가볼래?"라고 물어본다.
뭐 당연히 좋지.

 정식 학교는 아니고 테이블을 몇 개 가져다 놓고 마을에서 공부잘했던 친구들이 자원봉사로 주민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학당'이다. 내가 들렀을 때는 아이들을 위한 시간. 뿐만 아니라 청소년반, 성인반으로 구성해 마을 사람들의 교육 수준을 향상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재미난 점은 모두 어릴 때 친구들이었을 테지만 내게 소개할 땐 "이 친구는 누구야"라고 하지 않고 "이 분은 내 선생님이야"라고 존중을 해주는다는 것이다. 서로 믿고 의지하니 자원봉사를 하는 친구들도 역시 뜻깊은 보람을 느낄 것이 분명하다. 나와서 일일 선생님이 되어주겠냐는 제안에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지만 공부와 거릴 두는 바람에 하지 못한 일을 어쩌다 보니 하게 되네'라 생각하며 달려 나갔다(어른반이었다면 탈탈 털렸겠지만...).

 간단히 길 찾기 대화의 상대가 되어주고, "안녕 만나서 반가워. 난 한국에서 온 Jo야"를 20번가량 반복하니 딱히 할게 없어졌다. 활기나 북돋아주고자 게임을 하나 알려주기로 했다.

"One을 외치며 한 명이 일어나고, Two를 외치며 다음 두 명이 일어나는 거야. Three후에는 다시 다음 사람이 One을 외치는 거지 오케이?"

 원래는 승자와 패자가 있는 구식 게임이지만 한 턴을 돌면 모두가 승리하는 방식이라 알려줬다. 깨나 빠른 속도에 아이들이 리듬을 잃어 갈 때쯤 10분 만에 드디어 성공, 모두가 손뼉 치며 즐거워한다.

 많은걸 느꼈다. 계획한 여행이 끝날 즈음에 가기로 계획했던 해외봉사활동이라는 작은 목표에 기름을 부어준 셈이다.

Iam, Dani, Danial

 백수 삼총사다. 오후에 지나가다 본 하리의 친구들인데 같이 기타나 치며 놀자고 집으로 초대해줬다. 순간 '이거 맥주를 마셔야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어 녀석들을 꼬드겼다. Dani와 Iam을 데리고 하리와 넷이서 술을 사러 갔다. 무슬림 지역이라 술을 파는 곳이 흔치 않아 오토바이로 30분이나 도착한 작은 슈퍼에서 맥주를 사 다시 돌아왔다. 아까 들린 학당의 선생님도 한 명 있었는데 여자는 11시 이전에 집에 들어가야 해서 먼저 간단다. 아쉽지만 우리끼리 재밌게 놀면 되지!!

 역시나 밤늦게 술을 마시는 건 성인이라도 마을에서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듣기 충분하기에 몰래 집 뒤편 개울가로 나갔다. 약 두어 시간 정도 조용히 기타나 치며 사삭족 전통 담배인 마코를 말아 피우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내일 몸살이 걸릴 것 같다.

잠을 안 잔다

 문득 깨달은 사실인데, 이 녀석들 잠을 안 잔다.... 새벽 3시까지 춤추고 노래하고 놀다가 7시가 되면 일어나 하루 일과를 또 시작한다. 간간히 낮잠을 자긴 자는 것 같은데 체력이 상당하다.

 이부자리를 펴곤 나란히 누워 드디어 뇌를 비우고 유튜브에 빠져드는 시간을 가졌다. 하리는 불면증이 있어 일찍 잠에 '못'든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밤새 한국 드라마를 보느라 '안'자는 것이다.

 새벽 5시, 모스크에서 아잔 또는 아담(Adham)이라는 노랫소리(약간 타령에 가까움)가 엄청난 음량으로 울려 퍼진다. 정말 처음엔 누가 귀에 대고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라고 소리치는 줄 알았을 정도니 말이다. 이슬람에서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을 부르는 노래(Islamic Call to Prayer)인데 때마침 모스크가 집 바로 옆에 있어 스피커가 집 안을 울렸다. 사정을 모르는 난 아침에 일어나 하리와 친구들에게 "혹시 무슨 축제 같은 거야?"라고 물어봤다가 동네 친구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2. Sengiggi - 급격한 신분상승

앞니가 두 개임이 분명하다

 지난밤 11시가 되어 먼저 떠난 선생님 Atmy가 오늘 떠나기로 되어 있는 내게 달콤한 제안을 하나 한다. "나 빌라가 있는데 때마침 손님도 오늘 딱 나가고.... 며칠 지내다 갈래?"

이건 정말 크나큰 민폐다. 아쉽지만 길리에서 만난 다른 일본인 친구와 쿠타(Kuta lombok)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도 있으니 거절하기로 했다.

"미안하지만... 괜찮..."

입밖으로 내뱉으려던 찰나 다른 친구들이

"그럼 다 같이 가자!!"

뭐지 배려해 준 건가?.... 미안해하지 말라고?...



 실은 이렇게 빌라가 빌 때면 동네 주민들을 초대해 수영장을 빌려주고, 티브이를 보며 춤을 추고 논다고 한다.

 이 Atmy라는 친구는 정말 대단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학당을 위해 직접 사비로 책도 사 나눠주고 칠판이나 의자 같은 시설도 직접 마련했다고 한다.

방이 여섯개!

 방이 여섯 개 +2층 독방. 수영장. 마당엔 코코넛 나무 세 개와 망고나무. 도합 200평 정도 되는 거대 빌라다. 이건 정말이지 내게 너무 과분하다. 실은 나만을 위한 건 아니니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일 수 있어 다 같이 즐겁게 놀자는 쪽으로 마음을 바꿔먹었다. 고마운 마음에 친구들과 주민 몇 분 정도를 불러 저녁에 맛있는 한국요리를 해주기로 했다. 때마침 이틀 전 오픈한 롯데마트가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다. 떡볶이와 김치가 먹어보고 싶다는 친구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시간이 온 것이다.

이모 여기 막걸리!!!

그러니까 롯데마트에 왔는데 웬걸 떡, 김치는 아예 보이지도 않고 고추장은 품목 리스트에 등록이 안되어 아직 판매가 불가능하단다. 닭볶음탕과 김치전, 떡볶이를 해주려 했으나 간단히 닭과 간장, 채소 조금을 사 집으로 돌아왔다. 두 시간이 걸린 거리였지만 결국 산건 근처 마트에서 살 수 있는 것들... 아쉽다 너무 아쉽다. 나중에 한국에 오면 정말 제대로 대접해야겠다.






한식 요리사 강하리

 전에 주방에서 주방보조로 일한 적이 있다는 하리가 채소 껍질을 벗겨주고 아주머니들이 밥을 안쳤다. 간단히 양념해 매울걸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고추를 잔뜩 썰어 넣고 한 시간 반 남짓 바글바글 끓여냈다. 팽이버섯이 궁금하다고 해 구매했지만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들에게 "이거 삼겹살이랑 먹으면 진짜 꿀맛인데"라고 차마 말은 못 해 채소와 볶아냈다.

+사진 대부분이 영상을 캡처한 것이라 많이 불안정하다.


정량 배식!!
 "얘들아 이것 좀 10분에 한 번씩 저어줘" 맥주를 좀 사 와야겠다.

 양이 많다는 Atmy의 잔소리에 약간은 걱정했지만 고맙게도 다 비우고선 라면까지 찾아 끓여먹어 줬다. 음주는 남자아이들만 조금 하는 탓에 나만 왕창 마셔버렸다. 그 와중에 Dani는 "Jo 고추 좀 더 넣지 하나도 안 맵다"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나는 다음날 화장실에 여러 번 다녀왔는데도 말이다.

태권도와 어떤것

 Indri는 태권도를 배운다. 그중에서도 '품새'전문 선수인데 나보다 단수가 두 개나 높다고 한다. 품새 '금강'을 보여주며 영상을 찍는데 옆에 Iam이 까불기 시작한다. 쿵푸를 배운 적이 있다며 무언갈 보여주는데 아쉽게도 난 쿵푸에 대해 문외한이다. 잘생긴 외모에 각이 잡힌 것에 현혹되어 다들 '뭔가 배우긴 배웠나 보다'라며 인정해줬다. 이날 밤은 그렇게 노래와 수영, 수다로 가득 채웠다.


+ Dani가 길리 트라왕안에 살 때 부르던 노래를 불러줬다. 선창하고 후창 하는 것이 마치 노동요처럼 들린다.
I come from Gili Air(I come from Gili Air) 길리 에르에서 왔어~
Magic mushroom for breakfast(Magic mushroom for breakfast) 아침엔 매직머쉬룸을 먹지

I come from Gili Meno(I come from Gili Meno) 길리메노에서 왔어~
There're so many mosquitoes(There're so many mosquitoes) 모기가 정말 많지

I come from Gili Trawangan(I come from Gili Trawangan)길리 트라왕안에서 왔어~
Many condoms on the beach(Many condoms on the beach) 해변가에 많은 콘돔들

I come from Lombok Island(I come from Lombok Island) 롬복섬에서 왔어~
Running away from policeman(Running away from policeman) 경찰들에게서 도망치지


3. Kuta Lombok - 내 겨울은 길고 니 인스타는 맨날 여름인 것 같어

Kuta Lombok

 호주 퀸즐랜드 골드코스트엔 서퍼들의 천국(Surfer's Paradise)이란 곳이 있다. 올해 초 그 험난한 파도에서 뭣도 모르고 수영을 하다 그대로 익사할 뻔한 이후론 파도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란 말을 Atmy에게 하니 역시나 선생님 모드로 "이참에 서핑 다녀와볼래?"라고 받아친다. 한 번 배워보고 싶었던 거니까 바로 가보자!

 오토바이로 두 시간을 달려 노을 무렵까지 잠깐 배우고 왔다. 나름 보드 짬밥이 있으니 바로 성공해야지!

바로 성공함 ㅎㅎ

30분만에 색이 바뀐다

 석양이 기가 막힌다. 저 멀리 산기슭에서 피어오르는 안개가 참 예쁘다고 감탄했는데 다음날 알고 보니 큰 산불이 있었다고 한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뭐 그런 것 같다.

오늘 아침 하리는 휴가가 끝나 다시 길리 트라왕안으로 돌아갔고 나머지 아이들도 학교나 일터로 돌아갔다. 나도 내일모레면 한국에서 오는 친구들을 만나러 다시 발리에 돌아가야 한다. 모두에게 너무나 순수한 사랑을 받은 것 같아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은 꼭 서로 소개해주거나 가족들에게 소개해주는 게 취미였는데 때문에 내 소중한 친구들은 아버지와 적어도 술 한 잔은 한 경험이 있다. 나중에 아버지를 모셔오면 꼭 함께 식사를 하고 싶다.


4. Senggigi - 빠잉..

티셔츠와 사룽 두장, 헤어밴드로 쓸만한 스카프, 귀걸이 그리고 팔찌 세 개

 떠난다니 다들 작은 선물을 챙겨주었다. 하루는 하리네 고모네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성격이 호탕하신 삼촌분께서 액세서리 가게를 하니 놀러 와 보라 하셨다. 때마침 귀걸이도 잃어버린 터라 하나 살 겸 들렀는데 직접 만들어 주시곤 굳이 그냥 가져가라는 걸 억지로 작은 감사를 드리고 왔다. Dani는 직접 만든 팔찌에 평화 문양을 달아 줬고, Atmy는 내가 좋아하는 문양의 사룽과 티셔츠를 사다 줬다. 그리고 저 헤어밴드는 지금까지 사용한 것 중 가장 마음에 든다.

 여행을 하다 보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의 설렘처럼 헤어질 때의 아쉬움이 있다. 초등학교 졸업식이나 군입대 같은 감정을 계속해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좋은 사람들을 자꾸 만나는 걸 보니 아직은 아쉬움을 이겨내며 여행을 계속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Indonesia] Gili Trawang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