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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Jan 03. 2020

[Österreich] 비엔나 정착기

중국 - 프랑스 - 오스트리아


2019년 10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마무리하고 잠시 여행을 떠났던 미스타 조는 호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라탔지만 예상치 못한 폭풍우를 만나 한국에 돌아갔다

 폭풍우는 개뿔 관광비자로 재입국을 시도했던 난 공항에서 의심을 받고 입국을 거절당했다. 말레이시아로 돌아가 우선 한국으로 돌아갔다. 갑작스럽게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들떴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어쩌지... 한국에서 다시 돈을 모아야 하나...'라는 걱정이 한 발 앞섰다.

 우선 생각을 정리할 겸 배낭을 메고 남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순천과 전주 부산을 거쳐 다시 아버지가 지내는 청주로  갔다. 맛있는 음식, 사랑하는 사람들과 걱정 없이 푹 지낼 수 있는 편안한 집. 매일 밤 혼란스러웠다. 원래대로라면 호주에서 새로 따낸 케이터링 계약을 마무리하고(관광비자로는 불법이지만) 모은 돈으로 아시아부터 유럽까지 육로로 가는 모험을 떠나야 하건만 지금 내 상황은 적절치 못하다.  

파리에서 지냈던 호스텔과 광저우 거리

1. Guangzhou - 이게 안되면 저거라도

'우선 당분간 지낼 생활비는 있다. 그간에 일자리를 찾고 돈을 모아 1년 뒤 다시 떠난다.'라는 마음에 세종에 새로 오픈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부주방장 자리를 얻어냈다. 괜찮은 조건과 부주방장이라는 타이틀에 마음을 정리하던 중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한 한식당에서 올린 공고를 보게 됐다.

에이씨 몰라 일단 떠나자  

 또 기회를 뻥 차 버린 것만 같다. 여태 살면서 걷어내어 버린 기회들이 아쉬웠지만 후회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는데 이번에 다시 아쉬워할 일을 저질렀다. 2주 뒤 중국 광저우를 거쳐 비엔나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하고 서류를 준비했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여행을 계획했으 반대로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집으로 돌아가는 여행이 오히려 나을 수도,

 12월 11일, 지금쯤 비엔나에 도착해서 맥주를 마시고 있어야 할 때인데 기상악화로 광저우에 3일간 발이 묶이게 됐다. 항공사에서 제공해준 호텔에서 쉬며 매일같이 싸웠지만 결국 경유지를 바꿔 새로 티켓을 발권해준다는 제안에 승낙해버렸다. "이참에 한 군데 더 돌아보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몽마르뜨의 La Relais Gascon
 물가가 상상을 초월한다. 아무래도 방금 전까지 동남아에서 1~2천 원 하는 식사를 맨손으로 퍼먹었으니 적응이 안될만하다.

 새벽 5시 파리 공항, 호주에서 산 60L짜리 싸구려 배낭이 들고 내려놓을 때마다 찢어진다. 가방끈 하나로 겨우겨우 들고 왔으나 아마 비엔나에 도착할 때쯤엔 손으로 들고 다녀야 할판이다. 시내로 진입, 우선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짐을 놓고 거리로 나왔다. 호주에 갈 때 멜버른을 첫 정착지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는 '유럽스러움'이었다. 거리엔 트램이 다니고 100년씩 나이를 먹은 건물들을 매일같이 보며 출퇴근하는 낭만을 쫒은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더 이상 흥미롭지 않을 만큼 많이 봐온 것이다. 약간의 후회가 밀려오고 비까지 내리니 처량함에 사무친다. 숙소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한 숨 푹 자니 기분이 한결 괜찮아졌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야겠다.

 

에펠탑
몽마르뜨 언덕과 에펠탑도 오르고 우리가 좋아한 마레와 오데옹 기억나 잊지 못할 너와의 파리야

 모델 장윤주는 직접 작곡, 작사를 하는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그녀의 노래 '파리에 부친 편지'를 들으며 몽마르뜨 언덕으로 올라갔다. 진정한 낭만은 약간의 궁상이라는 작은 신념에 너무나도 걸맞은 상황이다. 와인을 한 잔 마시러 가게에 들어갔다.

 비가 내리는 탓인지 시간이 조금 이른 탓인지 그 유명한 가게에 손님은 나 혼자. 덕분에 2층 창가에 앉아 원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사색에 빠질 기회가 주어졌다. 에스까르고 한 접시와 Cotes du rhone산 와인을 반 병 주문했다. 프랑스 와인에 문외한인 난 분명 레드와인 카테고리에서 익숙한 이름을 주문했는데 웬걸 시원한 화이트 와인이 도착했다. 사실 지금 상황에선 상쾌함이 적절하니 웨이터의 선견지명일 수도 있겠다. 약간 우울해진 감정과 허탈함이 와인을 한 모금 입에 담자마자 잊고 있던 낭만과 떠올랐다. "키야 그래 이 맛에 유럽 오는 거지, 오길 잘했다"

약간 오른 술기운에 이어서 바로 에펠탑까지 걸어갔다. 그 장엄함을 지켜보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정말 단순한 인간이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2. Wien - 새로운 시작

우리 집앞이다!!
우여곡절 끝에 비엔나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훌륭한 잠자리와 주변 풍경에 잠시 머리를 비웠다.
폭풍전야 같은 고요함이다.

 금요일에 도착한 바람에 비자를 바로 신청하지 못하고 3일간 휴식이 주어졌다. 더 이상 어디 돌아다니기엔 체력이 부족하고 애초에 휴가를 산더미처럼 주는 나라라 그냥 푹 쉬기로 결정했다. 시차적응이 덜되어 새벽에 눈이 떠진다. 어제 마트에서 산 인스턴트커피와 소시지를 구워 아침을 챙기고 집 앞 공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작년 10월 오직 행복함만 갖고 가족들과 방문했던 곳을 조금 다른 감정으로 바라보니 그리움이 몰려온다. 아무래도 3주간 머물렀던 한국에서의 기억 탓인 듯하다.

흐어어엉

 나는 멘탈이 강한 편이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항상 당당하다. 허나 동시에 끔찍하게 감정적이다. 때로는 이 점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해 주지만 대부분의 경우 내을 잠식한다. 이유를 모르는 불안함과 우울함을 이겨내기 위해선 전문가가 필요하다. 최근에 읽었던 '꾸뻬씨의 핑크색안경'에서 이야기하는 감정을 다스리는 단계를 떠올렸다. 사건A-이후 자기 머릿속에서 반사적으로 든 생각B-그런생각이 초래한 감정C.

 이 상황이 내게 주는 직접적인 감정이 아닌, '생각'이라는 매개를 3인칭 시점에서 바라보기로 했다. 객관적인 관점은 "이 정도 상황이면 아주 훌륭한데?"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뭉클했다. 우선 생각을 글로 쓰고 가만히 지켜보다 문득 익숙한 감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병명은 꽤 단순. '적응기', 외로운 거다.  


3. Wien - 둥지를 틀어~

그럼 친구를 만들면 되지 호호호

 1주일이 지났다. 대중교통도 제법 잘 이용하고 말도 배워가고 있다. 일도 착실히 하고 무엇보다 한 그룹의 재미난 친구들이 생겼다. 같이 일하는 Lara와 손님으로 와 그녀와 친해진 Mary와 초롱, 내 하우스메이트인 태성이. 주방에서 함께 고군분투하는 성연이와 Jordan. 하는 거라곤 매일같이 만나 새벽까지 맥주만 죽어라 부어대는 것뿐이지만 적어도 부정적인 상황을 털어내고 웃음 공유할 수 있는 훌륭한 치료제가 생겼다.

Naschmarkt
 어릴 때 적어둔 버킷리스트를 떠올렸다. 가게 차리기와 함께 '혼자서 세계 여행하기'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굳이 '혼자서'라고 설정한 건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멋지잖아!' 낭만적이고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는 실제로 떠난 2017년 말에 새로운 이유를 덧붙였다. 친구 만들기, 새 친구를 만들기 위해 혼자서 떠나는 것이다. 물론 맛있는 음식과 황홀한 광경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일 때 비로소 의미가 있지만 동시에 서로에게 지나치게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낯선 땅에 덩그러니 버려져 외로움에 사무치다 보면 자연스레 오롯이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그 시기가 끝날 무렵 따분함에 못 이겨 문밖으로 나가 사람들 찾게 되는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소중함이 새로운 관계들에게 온 정을 쏟을 수 있게 해 준다. 정말 오 사람들은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들과의 시간은 조금 미루기로 했다. 먼저 세계를 돌아보고 후에 정말 아끼는 장소를 소개해주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얼마 전 한국을 떠나며 마지막이 될 세 번째 이유를 추가했다. 그리움을 충분히 만끽하기. 가끔 그리움에 돌아가고 싶어 질 때면 더욱 나 자신을 외로운 상황에 처하도록 밀어내곤 한다. 언젠가 그곳에 돌아가 둥지를 틀 때에 여전한 것의 소중함에 눈을 뜨고 더 이상 그런 외로움은 느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금 충분히 맛보는 것이다. 아마 앞으로 몇 년만 더 하면 될듯ㅎ

이 녀석들은 흥이 많은 편이다.


4. HAPPY NEW YEAR!

출근길

 2019년은 정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호주에서 술에 취해 새해를 맞이하고 친구들과 모험을 떠났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의 말도 안 되는 경험,  잠시 한국도 다녀왔다. 작년의 나와 지금은 뭐가 달라졌고 여전할까. 일이 일찍 끝난 덕에 Schonbrunn 궁전에 산책을 다녀왔다.

 2019년의 난 지금보다 더 건강하고 상대적으로 부지런했다. 허나 지금의 난 더 용감하다. 새로운 상황을 헤쳐나감에 두려움이 없어졌고 사고는 조금 더 열렸다. 편안함이 주는 나태함을 상기했으며 우울함을 극복(사실은 흘려보내기)하는 법을 배웠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들의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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