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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Mar 27. 2020

[Österreich] 중간점검 - 일상

그림일기

3개월이 지났다

1. 2020년 시작!

형규형네 집

 새해를 알리는 신호탄은 언제나 그랬든 각종 사건사고로 가득 찬 뉴스가 터뜨린다. 세계 각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로 모두들 정신없는 시작을 준비하던 와중 함께 일하는 형규 형과 그의 아내 Songul이 집으로 초대해줬다. 겸사겸사 티라미수를 몇 통 만들어 여기저기 선물하고 그중 하나를 챙겨 단짝 친구 Lara와 들러 시간을 보냈다. 고양이 두 마리(Trunks와 Bubu)가 인상적이었다... 귀여워....

Wien 시내

 이 곳에 와서 한 동안은 날이 추워 외출하기가 꺼려졌지만 요새는 창문을 열고 생활해도 될 만큼 날이 따듯해졌다. 2년 전 가족들과 정신없이 구경했던 동네를 혼자 거닐며 여유롭게 추억하고 저녁엔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지만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정착하기를 반복하는 내게 이러한 일상은 오히려 특별하기까지 하다. 매일 밤 퇴근 후 당연하듯이 모여 맥주를 마신다. 내 최애 펍 Beer street에서!!


출근 전 점심식사

 하루는 새롭게 사귄 친구가 고향 세르비아에서 어머니가 직접 동네 주민들과 만들어 보내주신 살지챠(Salsicca. 이탈리아식 표현이지만 세르비아어로는 뭐라고 부르는지 까먹었다)로 점심을 대접해주겠다 해 들렀다. 비엔나에서는 조금 떨어진 외곽에 위치한 작은 아파트에서의 점심은 굉장히 낭만적이었다.

Cafe check in

 내가 살고 있는 Weyringergasse 근처에 있는 작은 맥주집이다. 별다른 약속 없는 친구들과 모여 다트도 하고 노래도 부르던 장소인데 이제는 잘 가지 않게 되었다. 지금 글을 쓰는 3월 말은 전염병 때문에 외출이 불가능한 상태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하나 있는 룸메이트는 일에 견디지 못하고 독일로 가버리고 Mary는 비자업무로 호주로, Lara는 한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 가족 같던 녀석들과 멀어진 것이 그 이유다.  



Tony의 생일

 Lara가 떠나기 3일 전 때마침 Tony의 생일과 겹쳐 송별회와 생일파티를 함께 하기로 했다. 친구가 많은 Tony는 그가 자주 가는 펍을 빌려 수많은 사람을 초대했고 모두들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요즘 들어 드는 재미난 생각인데, 사람들이 모여 시간을 보내고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 행위가 류 역사에 있어 아주 중요한 사회적 성장이겠지만 또 굉장히 귀여운 모습이다. 분명 혼자서도 맥주를 마시고 시간을 보내는 것도 가능한데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본능이 반대로 외로움과 심심함이라는 감정을 만든다. 설령 아무것도 안 한다 하더라도 사람들과 함께면 무료함이 덜 한 것이, 어쩌면 당연하지만서도 재미있다. 게다가 집단을 만들고 그들의 사적인 사건에 축하, 격려를 하고 슬픔과 행복을 공유하는 것은 정말이지 소중한 일이다.


 그래서 요즘은 별일 없이 여유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퇴근하고 집에 와 샤워를 한 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음악을 틀어놓고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에 든다. 다행히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아주 재미있어 텁텁하거나 하진 않지만 그래도 '놀이'가 없으니 조금 심심하긴 하다.


2. 혼자 놀기

들이켜! Drink up!

 며칠 전 별 사진을 찍으러 저녁 무렵 근처 동산에 올라갔는데 갑자기 구름이 끼는 바람에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려던 계획은 온데간데없고 청승만 떨다 왔다. 그래도 야경은 아주 예뻤음!

Modling

 집에서 기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Modling이다. 지금 시국에 사람들을 만나 파티를 하는 건 말 그대로 정신 나간 짓이므로 혼자서 놀 궁리를 찾아야 한다. 쉬는 날엔 운동삼아 근처 산에 다녀온다. 오랜만에 탁 트인 전경을 보니  반갑구나! 원래대로라면 지난 24일 아이슬란드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어야 하지만.... 아쉽게도 올 겨울로 미루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일상의 소리

 일상을 유지해나갈 힘이 있는 사람이 되라는 그녀의 말은 내게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다. 어느 날처럼 맥주를 마시며 피로를 풀던 중 순간, 작은 옷깃 소리와 발걸음 소리에 집중하게 됐다. 그리고 연이어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말소리, 기차가 들어올 때 울리는 안내방송 같은 소리들이 굉장히 소중한 일상의 요소들이었구나' 라 깨닫게 되었다. 위에서 얘기했듯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 자체가 특별함인 내 상황에 딱! 맞는 생각이었다. 낯선 곳에서 집을 구하고 핸드폰을 개통하고 은행을 만들며 하나씩 배워가던 초보자가 어느새 일정한 규칙이 있는 평범한 날을 보낸다는 건 대단한 성과이지 않을까. 그것들을 소중하게 여길 관점이 생긴다는 게 내가 여행을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었다.

이번 바이러스 사태는 나와 모든 이에게 이러한 시야를 갖게 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휴가복귀 Jordan
 2월 초 인도로 휴가를 떠났던 Jordan이 한 달만에 돌아왔다.

 휴가 전 무심코 '난 이런 에스닉하고 히피 같은 옷이 좋아. 인도네시아에서도 Sarung batik만 입고 다녔어ㅋㅋㅋ'란 말을 흘린 적이 있었는데 그걸 또 캐치해내고는 선물로 아주 마음에 드는 바지를 사 왔다. 주머니 안에 구멍이 있어 물건들이 주르륵 떨어져 버리는 것만 제외하면 아주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이다. 어쩌면 그 구멍도 히피의 상징이니 만족해야지ㅎㅎ

현재 오스트리아 상황

최근 오스트리아 정부는 '그' 바이러스의 확산을 최소화 하고자 통행제한과 모든 상점의 운영 금지라는 막강한 수를 내놓았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이들은 취업지원센터로 달려가 지원금을 받았고 나와 같은 외국인들은 머무르지도 떠나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상태가 되었다. 다행히 우리 가게는 온라인 딜리버리라도 운영 기로 해 손해를 메꿀 수 있었지만 많은 인원이 필요하진 않아 나와 Jordan을 제외한 일반 직원은 전부 공식적으로 해고가 되었다. 실업지원금 신청 조건 때문에 일시적으로 취한 조치이지만 이 정책이 얼마나 지속될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시점에서 유럽의 전체적인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어가고만 있다. 복지가 최우선 되는 국가라 생활고에 시달릴 일은 없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지만서도 불안함과 무료함은 시간이 조금 더 지나야 해결될 것 같다.  

Kahlenberg

 날이 급격하게 따듯해졌다. 오랜만에 사진이나 찍으러 근처 인적이 드문 동네에 다녀왔다. 살기 좋은 나라임은 분명하지만 한국인으로 살아가기엔 유럽은 조금 따분할 수 있다. 낭만과 맞바꾼 따분함!

 상황이 완화된다면 앞으로 그동안 못 가봤던 유럽 전역을 8개월간 여행하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아프리카와 중동, 인도를 거쳐 아시아로 돌아갈 계획이다. 베트남에 도착할 때쯤이면 경비도 떨어질 테고 동남아에서도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일자리를 다시 찾아 몇 개월을 보낼 곳을 마련하려 한다. 며칠 전 같이 일하는 동료의 친오빠가 태국 치앙라이에서 요리사를 찾고 있다고 하니 고민 좀 해봐야겠다. 사랑하는 베트남과 경험해보지 못한 태국의 삶! (지금 거의 70%는 태국으로 마음이 갔음)


내  이름은 볶음이야 Goreng -> Fried

   그래서 요즘은 일하러 나가는 것 외에는 거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혼자 살기엔 조금 큰집이 공허해 기타를 치고 괜히 새로 산 배낭을 메보며 다음 떠날 곳을 상상해보며 기대한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심심한 건 어쩔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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