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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May 13. 2020

[우리家한식 - 브런치x한식 공모전] 밥값

변화와 순환, 연결고리

고사리 : 성장


 명절이 되면 전에 사놨던 옷이 갑자기 작아진다거나 피부에 기름기가 넘쳐 신경 쓰인다거나 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 기간 동안에는 냉장고의 냉동칸은 남은 전과 떡으로 넘쳐나고 이후 며칠간 식탁엔 그들을 활용한 요리들이 올라온다.


 아침이 되어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있는 큰아버지에게 전화가 온다.


“차례 지낼 거니까 얼른 준비해서 와~”


 전날,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동네 치킨집에서 늦게까지 떠들어댄 탓인지 침대 밖으로 나가는 마음을 먹기가 힘겹다. 다시 잠에 들어 정신을 놓고 있으면 아버지의 잔소리와 함께 정신없는 아침이 시작된다. 어푸어푸 세수만 대충 하고 옆 동 1층 큰집으로 향한다. 차가운 공기에 잠은 금방 달아나고, 걸음을 더해 큰집에 다다르면 활짝 열린 주방의 창을 통해 흘러나오는 따끈한 소고깃국 냄새가 허기를 자극한다. 온 가족의 30년 치 추억이 쌓인 큰집은 주택단지 개발 지역에 포함되어 결국 지원금을 받고 아파트로 옮겨지게 됐다. 마당의 강아지도, 장작을 태워 염소탕을 끓이던 아궁이도 사라졌지만 차례상에 올려지는 음식들만은 여전히 멀찍이서 정겨운 풍경의 일부가 된다. 고사리 손으로 낑낑대며 음식 준비를 돕던 어린날의 내가 어느새 요리사가 돼 능숙히 칼질을 한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는 큰어머니들과 함께 만든 떡과 전, 산적들이 상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고 한 편에선 시끄러운 안부인사가 오고 간다. 항상 바쁜 셋째 큰아버지네 집이 방금 도착한 모양이다.

 차렷!~ 큰절~


 세뱃돈을 줘야 하나.. 받아야 하나.. 하는 나이가 됐다. ‘올해까지만.. ’이라 되새기며 뒷주머니에 만 원짜리 몇 장을 꽂아 넣고는 식탁에 앉아 전투를 준비한다. 대학에 간 이후로 정말 제대로 된 ‘정석 식탁’은 일 년에 몇 번 보기가 힘들어졌다. 같은 상황인 친누나와 난 각기 다른 반찬을 집으며 ‘말도 안 돼... 이건 진짜...’ 라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아니 위장에서 우러나오는 찬사를 마구 보낸다. 식탁 가운데에는 돼지고기로 만든 요리들과 구운 생선. 주변으로 놓인 갖가지 반찬들. 그중에서도 난 한 구석에 모여있는 세 가지 나물을 독차지한다. 뜨거운 물에 데쳐 물기를 빼고 이런저런 양념을 해 조물조물 무쳐놓은 숙주나물과 시금치, 난 가장 좋아하는 고사리를 한 움큼 집어 밥 위에 올리곤 맑은 소고깃국과 함께 해치운다. 부른 배에 아침부터 졸음이 몰려온다. ‘이런... 외할머니댁에 가기 전인데 이렇게 많이 먹다니. 이번 명절도 틀렸구나...’ 그렇다. 우리에게 명절이란 ‘외할머니가 끓여주신 청국장을 먹는 날’, ‘가능한 청국장을 많이 먹는 날’ 이란 의미였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늘 카메라 뒤에 계셨다


청국장 : 변화와 순환


 이따 저녁에 좋아하는 고깃집에 가기로 약속하고는 친척들과 인사를 한다.
약 한 시간 후에는 시골냄새와 함께 할머니가 눈가가 촉촉한 채 뛰쳐나오시며 맞이해주시겠지.


 경기도와 충청도 사이에 있는 시골집은 몇 년 전만 해도 차로 꼬불꼬불 서너 시간은 가야 했지만, 도로가 새로 뚫리며 귀향길은 더 이상 인고의 시간이 아니게 되었다. 때문에 할머니는 늘 당일치기로 들렀다 가는 걸 못마땅해하신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더 챙겨드려야지” 라 마음먹었지만 언제나처럼 다짐은 핑계로 마무리된다. 피로 낳은 자식을 잃고, 그 자식의 자식들을 보는 부모의 마음을 어찌 가늠이나 하겠는가. 나에겐 한 없이 강한 어머니일지라도 할머니, 할아버지에겐 마냥 어린아이 같은 자식일 텐데. 누구나 겪는 이별이고 언젠간 겪어야 할 아픔이겠지만 아직 부모가 되어본 적이 없는 입장에서 상상해본 그들의 마음은 두려울 정도로 시리다. 그래서 그런지 눈물이 많은 할머니는 늘 울먹이시며 마중 나오신다.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 실어놓았던 선물세트를 양손에 들고 묵직한 대문을 연다. 신발을 벗으면 발냄새인지 청국장 냄새인지 모를 고소한 냄새가 이 시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분명 아침을 먹고 출발해 금방 도착했는데 어느새 눈 앞에는 완전히 새로운 밥상이 놓아져 있고 티비에서는 ‘전국 노래자랑 무주군 편’ 이 방영되고 있다.


“얼른 자리에 들 앉어~”


 암묵적인 규칙에 의해 앉은자리에는 각자가 좋아하는 반찬이 밥그릇 머리맡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늘 같은 반찬, 돼지갈비찜과 코다리, 할머니표 수제 구운 김, 살짝 달짝지근한 깍두기와 그 깍두기를 넣어 걸쭉하게 끓여놓은 청국장이 한 상 가득이다. 어쩌면 우리의 뇌리에 이러한 조합은 ‘외할머니네 밥상’으로 각인되어 있으리라. 잘 챙겨 먹지도 않는 아침 식사를 한 시간 전에 한 사실이 무색하게 따끈한 밥을 한 술 크게 떠 입에 밀어 넣는다. 자연스레 퍼지는 달콤한 쌀알의 향기는 급히 다음 술을 뜨게 한다.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달려가 허겁지겁 먹어 치웠던 그 청국장은 시간이 지나도 한결같은 감동을 선사한다. 부드럽게 익은 청국장 속 깍두기 한 조각과 들기름을 발라 구운 할머니의 수제 김. 어느새 밥을 두 그릇 째 비워냈다. ‘이젠 정말 한계야. 이번 명절도 열심히 먹었다’....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 외가는 어머니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허름한 옛날 집 앞마당을 터 새로 지은, 옥상이 있는 주택이다. 예전에 살던 집은 창고로 사용하며, 각종 나물이나 마늘 따위들을 말려두는데 그 모습이 마치 작은 자연박물관 같다. 식사 후 습관처럼 동네를 구경하다 어머니의 옛 집을 둘러본다. 현대의 기술자가 봤다면 기겁할만한 구조와 울퉁불퉁한 부엌. 분명 전기도 잘 들지 않았을 곳이지만 이젠 식혜와 묵은지가 든 예비용 김치냉장고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50여 년 전 젊은 시절의 할머니가 어린아이의 어머니에게 누룽지를 끓여 주었을 가마솥과 아궁이를 만져본다. 시간이 흘러 많은 것이 변했고 사라졌다. 나도 언젠간 누군가의 부모가 될 것이고 그제야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에 배운, 어머니에게 배운 밥상을 다시 아이들에게 해주겠지. 변화와 순환


 

부대찌개 : 어머니의 끈


 우리 가족은 외식으로 부대찌개를 먹은 적이 없다. 어머니의 부대찌개 솜씨가 상당했던 이유에서였다.


 지금은 매형인, 나의 가장 친한 형이 누나의 남자 친구였을 때의 일이다. 막 스무 살이 되던 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 앞에 낯선 차 한 대가 서고는 누나와 함께 이름 모를 남자가 한 명 내렸다. 누나가 애인이라 소개하는 남자의 첫인상은 ‘별로’. 어딘지 모르게 까탈스러울 것 같은 외모, 특히 날카로운 눈매가 한 몫한 덕이다. 그날 저녁, 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러 친하게 지내던 셰프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다. 재에 앉은 남자는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여자 친구의 가족들과의 식사니 그럴 만도 하지. 음식을 주문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누나의 남자 친구가 말문을 연다.


“난 레스토랑은 잘 몰라서 그냥 된장찌개 같은 거 먹으러 가는 게 좋아”


반했다. 보통은 품위유지와 교양을 위해 격식을 차리느라 종종 불편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던데 이 사람은 허울 없이 솔직하구나. 정말 마음에 든다.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매형을 가족 사이의 다리로 생각하기 시작한 게. 사실 누나와 별로 친하지 않아서 속내를 털어놓고 이야기한 적이 없는데 매형이 중간다리 역할을 해주며 서로 사랑한다거나, 아낀다거나 하는 마음을 진정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짧은 저녁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현근아 옛날에 너네 집 갔을 때 어머니가 밥 세공기 주신 거 다 먹었잖아. 그때 진짜 힘들었었다. 하하


 다음날 저녁시간이 되었다. 역시나 식탁엔 당근과 떡이 듬뿍 들어가 찐덕하리만큼 진한 국물의 부대찌개와 고봉으로 쌓아 올린 밥이 놓여있다. 반찬들과 함께 한 그릇을 비우자 어머니가 형에게 물어본다.


“ 조금 더 드실래요?”


 거절하기 힘들어서인지 흔쾌히 좋다고 말하는 남자는 언뜻 봐도 버거워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우리 집엔 따로 ‘밥그릇’이라고 하는 것이 없었다. 일반 가정에서 국그릇으로 사용하는 그릇에 고봉으로 밥 하나. 또 같은 크기에 그릇에 국이 담겨 나오는 게 우리 집 식탁의 특징이었다. 그런 양으로 무려 세 그릇이나 힘겹게 비워내는 남자의 노력에 다시 한번 매력을 느꼈다. 결국 다 먹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허허거리며 그때의 이야기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곤 한다. 다시 맛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슬프지만은 않은 그런 이야기를 안주로


 연결고리. 나에게 있어 어머니의 부대찌개는 연결고리다. 새로운 가족을 연결해준 어머니의 .  그녀의 순간과 손길을 잊지 않게 해주는 매듭. 물어보지 못했던 ‘  내는 법은 시간이 흘러 여전히 어머니의 주머니에 비밀로 간직되어있다. 그것들이 우리에겐 안줏거리 또는 이야기보따리가 되는 것이다. 가슴을 울렸던 그 맛을 기억해내고 이야기와 함께 다시 누군가에게 전달할 때. 요리사가 되어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다. 누구라도 언젠가  식탁에 놀러 오면  고봉밥과 함께 부대찌개를 끓여주리다.


2003년, 10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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