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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May 18. 2020

[쉬어가기]‘나’의 방정식  나=경험과 생각의 제곱

Me = eT^2


 그러니까 경험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어떤 이유에서? 왜?


 아버지는 늘 내게 ‘경험’을 강조했다. 당신이 그 이유, 아니면 그리 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한 세대가 더 지난 지금의 난 어렴풋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을 다닌다. 분명 돈과 시간을 썼는데 얻어온 게 있냐?


 호주에서 한국으로 예기치 못하게 돌아갔을 때 들었던 질문이다. 어린 시절 내 멘토이자 미래의 나라면 꺾을 수 있을 것 같은 상대인 어떤 남자에 의해서다. 그 남자는 젊은 날 5년간 세계여행을 하며 쌓아온 경험과 능력을 토대로 이런저런 사업을 하고 있다. 늘 자신감 넘치는 모습과 진취적인 태도는 존경심마저 들게 했다. 그런 남자가 툭 던진 질문에 머리가 멍해진다. 술을 많이 마신 탓일까. 그것도 한몫했겠지.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경험, 아이디어, 자립심, 관철하는 자세. 어떤 한 단어로 함축하려 했지만 이내 대답을 회피하고 말았다. 얻은 것이 너무 많아 설명할 수 없다는 대답은 충분하지 못했다. 생각이 깊어지니 순간 자괴감마저 들기 시작한다. ‘지난 몇 년간 1순위에 자신 있게 올려놓을 어떤 것도 얻어오지 못한 건가? 목적을 두고 여행을 다니라는 말인가? 아니 대체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목적 없이 떠난 곳 이야말로 예상하지 못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는 내게 이 질문은 그간 그에 관해 알고 있던 것들이 착각일 수도 있다는 의심마저 들게 했다.


“그럼 셰프님은 처음 떠날 때 어떤 의미 같은 걸 두고 가셨나요?”


 대답할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도리어 방금 느낀 감정들을 담아 같은 질문을 던져놓았다.



 이 질문은 ‘얻어온 게 없다면, 또는 설명할 수 없다면 왜 굳이 시간과 돈을 써가며 여행을 해야 하냐’라는 질문으로 뻗어나갔다. 사실 ‘왜’라는 것을 간단히 규명 지을 순 없다. ‘이유’는 또 다른 ‘왜?’를 만들어 내고 결국 근본적인 질문까지 뻗어 나가게 되니까. 그러기에 본질적인 대답은 하지 못했다.

리처드 파인만의 ‘왜’에 대한 답변
 https://youtu.be/3smc7jbUPiE


지금부터 쓸 짧은 글은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몇 달간의 고민 끝에 방금 내린 결론이다.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때문에 이런저런 탐구를 할 수 있었고, 초등학교 4학년 때에는 ‘과학자’를 제쳐두고 ‘요리사’라는 직업을 결정했다. 요리사와 관련된 어떤 경험을 할 때 느껴지는 희열을 알아차렸을 때의 이야기다. 같은 이유로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비선택적 예체능 학습’을 시키곤 한다. 여러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진로를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아버지도 스물일곱 살의 어린아이에게 여전히 예체능 학습을 시키는가 보다. 전화통화를 할 때에는 늘 말씀하신다.


‘그래 하고 싶은 거 해. 돈 쫓아다니지 말고 재밌게 살어~ 하고 싶은 거 하다 보면 돈은 자연히 따라온다~’


 돈은 따라온다. 내가 하고 싶은 거.. 외부의 어떠한 요인도 영향을 주지 않는, 온전히 나 자신이 마음에서 우러나와하고 싶은 것.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때문에 항상 잠자리에 들기 전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을 상상해보곤 한다. (애초에 이런 모습이던 저런 모습이던 상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한 번쯤 해보고 싶은 것이라는 뜻 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모습중 대부분은 전에 어디선가 경험했던 것들이다. 인도네시아의 사삭족들과 지냈을 때 아이들을 가르쳤던 경험으로 선생님이. 사막에서 차가 고장 나 고립됐던 경험으로 탐험가가. 지냈던 게스트하우스에서의 경험으로 호스텔의 호스트가 되어본다. 이러한 생각의 결과물로 ‘이런 건 흥미롭구나’ 또는 ‘이런 상황은 내게 적합하진 않은 것 같아’와 같은 보다 구체적인 답을 제시한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충분히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배우는 것이 먼저지만, 이 또한 경험과 생각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선택적 예체능 학습이란 말은 내가 방금 만든 말인데 어감이 조금 부정적이긴 하나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위에 언급한 예기치 못한 경험에서 오는 학습이나 깨달음에 관해서 일맥상통하다.)


 “나중에 돈도 적당히 벌면서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어.” 내가 만나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했던 말이다. 물론 나도 그렇고.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장사를 시작할 셈이다. 그동안 보고 느낀 걸 바탕으로 만들고 돈도 어느 정도 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주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이런 확신이 생긴 건 일상에서의 작은 비교에서부터였다. 전에 경험한적 없던 환경이 일상이 됐을 , 그러니까 워킹홀리데이나 여행에서의 일상이 적응이  규칙적인 생활을   여러 가지 사항들을 비교해  수가 있다. 지금 상황과 이전 상황을 비교, 그리고 미래에 희망하는 상황을 구체화시킬  있다. 예를 들어 효율성에 따른 업무강도나 수입 같은 조건들부터 ‘다양한 문화에서이런 유형의 사람들과  통하니 나중에 원을 구할때  점을 위주로 봐야겠다’, ‘여름에는 가게에 빛이  정도 들어와야 내가 활기차 지는구나’, ‘나중엔 이런 커뮤니티를 만들어 여가를 보내야겠다 하다못해 ‘요리할 때는 이런 음악을 들어야 집중이  되네(다른 문화권으로부터 추천받아 우연히 알게된 노래라던지)같은 소소한 것들까지 다른 경험들과의 비교를 통해 알아가고 이것들은 훗날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될 것이다. 이건 오직 사업적인 성공만이 아닌  일상의 행복 역시 설계하는 것이다.


 수학이나 과학의 어떤 가설을 증명시키는 방법은 명료하다. 식에 여러 상황의 수를 대입했을 때 문제없이 딱! 들어맞으면 증명이 되고 법칙이 되는 것이다. 지금 나는 ‘나’를 설명하는 방정식을 만들어, 여러 가지 수를 대입해보고 끝으로는 증명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나에 대한 설명방식을 식이라 치면 수를 대입하는 과정은 경험이고 증명하는 것은 여행과 목표 달성이겠다. 누군가에겐 학업으로, 누군가에겐 창작으로 대입할 수 있겠지만 증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모두 다름없이 만족스러울 것이다.

 

 ‘나’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뭐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 싶겠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적잖이 복잡한 문제다. 무엇을 설명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 있다는 증거니까. ‘인간관계에서 나에게 적합한 사람은 어떤 유형의 사람들인가.’ ‘나는 생각을 할 때 객관적인 편인가.’ ‘철로에 놓인 두 집단 사이의 선택에서 나는 충분히 공리주의적인가.’ ‘그렇다면 왜 그러고 싶은가.’ ‘인생의 끝에 두고 싶은 사건은 어떤 것인가.’ ‘나는 기쁜가.’ 이 모든 답을 어우를 수 있는 짧은 설명.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지금 글을 쓰는 이유는 이 답들을 알아냈기 때문이 아니다. 이 답들을 알아내는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난 행복하다. 어제도 행복했고 내일은 잘 모르겠지만 모레 정도면 또 행복할 것 같다. 무한하게 뻗어있는 선택이라는 우주에 덩그러니 던져진 인생에서의 작은 재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소소한 버킷리스트, 멀리로는 미래에 운영할 사업에 대한 상상을 하며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재미. 인생사는 맛이 뭔지 알 것 같다. 어느 날은 술에 취해 그렇게 두려워했고 걱정스러웠던 인생이 그다지 못 이겨낼 만하지도 않고 생각보다 별거 없다는 걸 깨닫고선 친구와 배꼽 빠져라 웃기도 했다.


 나는 여행을 하며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여행을 통해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다. 이 것들은 분명 ‘나’를 아는 것과 같은 것이고, 그러기에 돈과 시간을 써가며 아직도 여행하는 중이다. 이 글을 올리고 그 셰프님에게 보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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