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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May 26. 2020

[Österreich] 일상 - 어쩌다가 라마단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 한국 방글라데시 오스트리아?


할거 없으면 나와!


1. Tony & Melisa - 삼겹살에 화투투투


여전히 비엔나에 이동제한이 있었을 때 태성이는 폴란드에 갇혀있었고 친구가 없는 난 매일 좀비처럼 일-집 생활을 반복했다


 쉬는 날, 잠에서 깨 다 마신 맥주 캔들을 정리하다가 몰려오는 귀찮음에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무치는 외로움과 피로에 절어 기타를 치는 동영상을 촬영해 인스타에 올리자 Tony에게 전화가 온다.


/형 나 멜리네 집에서 삼겹살 구워 먹을 건데 같이 갈래? 심심해 보이던데 ㅋㅋㅋ


거실만 대충 정리하고 근처 마트 ‘BILLA’에 점심거리를 사러 가려던 참이라 고민 없이 고!. 챙길 서류가 있어 가게에 들리고 겸사겸사 불판을 빌려왔다.(아직 집에 있음) 전날 사놓은 비엔나 최고의 맥주 ‘Ottakringer’ 한 박스를 Melisa 차에 싣고 집으로 달려갔다.  

어떻게 인연이?

 한국은 두꺼운 생삼겹살이 더 비싸겠지만 이상하게도 여기선 얇은 냉동삼겹살이 더 비싸다. 물론 한국에서 날아온 ‘수입 삼겹살’이라 그런 거겠지. 난 한국인이니까 ‘국산’인 건가? 하여튼 한국바비큐느낌을 내려 괜히 하얀 비닐봉지를 뜯어 테이블에 깔고 출처를 모르는 소주잔 몇 개를 올렸다. 원래는 해가 지면 시작하기로 했으나 수시로 고기가 해동됐는지 확인하는 서로의 모습에 허겁지겁 자리를 펼쳤다.

멜리처럼 매일 술을 마시라

 멜리가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있었을 때 만난 친구에게 받은 선물이다. 멜리처럼 한국으로 유학을 간 일본인 요시에가 멜리의 생일을 맞이해 주문했던 것이란다. 지난번 아버지네에 들렀을 때 봤던 ‘영철처럼’이 떠오른다. 엄청 유행했던 모양이네..

점당 10센트여


 그러니까 ‘Tony’는 호주 시드니에서 태어난 한인 2세로 음악공부를 위해 오스트리아에 와, 7년째 혼자 살고 있는 아이다. 외모가 저래도 98년생으로 방년 23세이시다. 비엔나 대학교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하고 있고 성격이 시원시원해 주변에 친구가 많은 녀석이다. 그 옆엔 멜리, ‘Melisa’는 비엔나에 태어나 그림을 그리고 머리가 매우 좋은 누나다. 누나라고 부르지는 않는데 무튼 나이가 그렇다.

 홍콩에서 지낼 때, 한국어를 잘하는 홍콩인들을 만난 적이 몇 번 있다. 덕분에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은 별로 놀랍지 않은데, 이렇게 문화적으로 잘 아는 친구는 정말 드물다. 한국에 1년간 교환학생으로 있던 것으로 보아 어려서부터 한국을 좋아했었나 보다. 그렇게 모인 한국 관련 3인은 화투판을 깔기 시작했다.


/형 첫 끗발이 개 끗발이야. 조심해 ㅋㅋ


- 너 피박 조심해. 쟤 날 것 같어..


이런 말을 대체 어디서 배워온 건지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는 말은 살면서 처음 들어봤다. 심지어 우리 할머니한테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을 4살이나 어린 호주인한테서 들었다. 얼마 전 4명이서 또 고스톱을 친 적이 있는데 ‘광팔이’를 모르는 내게 멜리가 친절히 설명해줬다. 풋


너는 우리 누나를 닮았어

 홍콩에서는 한국인만을 만나 어울렸고, 때문에 외국생활의 재미를 오로지 ‘맛집 탐험’이나 ‘마을 구경’ 정도에서 찾곤 했다. 호주에선 같은 이유로 일부러 한국인을 피하려 했고 또 피했었다. 결국 몇 달 뒤에 계획은 실패하고 한국에 관련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가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막바지, 한국에 대한 관심이 이제야 생겨 막연하게 계획했던 것이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동네 맥주집에서 우연히 친해져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 또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소소한 재미들을 보는 새로운 관점도 얻었다. 한국도 이제는 내가 살만큼 부드러워졌구나. 아니면 그동안 나만 혼자 삐뚤어졌던 걸 수도... ‘여행을 끝내면 한국에 돌아와 쭉 살아야지’ 마음먹었다.

 그래서 지금은 비엔나에 있는 한식당에서 일하고 있다. 사람들도 하나하나 다 너무 좋고 가족 같다. 떠날 때는 조금 아쉬울 것 같다. 이제는 말도 곧 잘해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두려움 없이 즐겁다. 이제는 무슨일을 하던 예전만큼 신경 쓰지 않는다. 뿌듯하다. 나를 믿는 자신과 능력이 있으면 부랑자로 동냥을 하더라도 부끄럽지 않다. 본업을 잊지 않고 꿈도 아직 변하지 않았다. 술에 취해 멜리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눈매가 우리 누나와 똑 닮았다. 이 엉망진창 사진을 가족들한테도 보냈다.(아버지 흡족해 하심 ㅎ)

야붕...오야붕...

 야붕이... 가게 홀 매니저 소연이 누나네 강아지 ‘오야붕’, 통행제한 때 한 두 번 데려오다가 아예 같이 출근해 행복을 뿌려댔던 녀석이다. 매우 귀엽다. 같이 일하는 Kamal 아저씨는 매일 ‘no kuta(강아지). no happy’ 라며 야붕이를 보고 싶어 하신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점포들의 운영 제한 정책을 해지하면서 이젠 놀러 올 수 없게 되었다.


칠면조!

 지난번 사슴공원에 다녀와서 구워 먹었던 칠면조! 6유로 정도 했던 것 같음.



2. Kamal & Shaheen - 라마단


줌마 줌마 데데~~ (Jumma Chumma De De)~~
우리 주방에서 청소와 설거지를 해주시는 Kamal 아저씨다. 나와 주방에서 Jordan 다음으로 친한 아저씨, 매일 “줌마~ 줌마데데~~” 흥얼거리신다. (인도의 한 노래로, 묘한 중독성이 있다. 힌디, 무슬림에선 아주 유명한 노래라고..)
Iftar

 전부터 아저씨에게 집에 놀러 가고 싶다며 조르곤 했다. 언제든 와도 좋다 했지만 갑자기 일어난 사태에 라마단 기간이 겹치며 연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라마단 기간인데도 식사를 하시는 아저씨는 “나는 일하는 날에 라마단 안 하기로 했어”라며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통행제한이 완화되고 태성이가 돌아온 뒤, 휴무가 같은 날로 짜여 놀러 갈 수 있게 됐다. 해가지고 난 뒤 동네 주민들을 모아, 저녁 8시 12분경(매일 바뀐다)에 단식을 깨는 ‘이프타르’를 시작으로 저녁식사를 대접받았다.


*라마단 - 이슬람력 9월로 식사, 음수, 성관계, 흡연이 금지되는 날. 해가 뜨기 전이나 후에는 식사, 음수 가능.

대부분 과일과 단 대추알. 콩요리

 이프타르(Iftar)는 단식을 종료하고 저녁식사 이전에 먹는 간단한 다과이다. 하루 종일 굶은 배를 급히 채우다 보면 속이 상하는 경우가 많아 부드러운 음식 위주로 조금씩 미리 먹어둔다고 한다. 직접 만든 팔라펠(Falafel : 병아리콩이나 누에콩으로 만든 후무스(hummus)를 뭉쳐 튀긴 것으로 중동요리의 대표 격)과 쌀과자, 병아리콩 샐러드가 눈에 들어온다. ‘가장 좋아하는 아시아 음식 탑 5’ 안에 드는 팔라펠, 주민들이 만든 이 팔라펠은 가히 환상적이다. 쌀과자가 익숙하다. 할머니네 집에서 자주 먹었던 유과 부스러기와 맛, 질감, 향 모두 똑같다. 이걸 병아리콩과 함께 섞어 먹는데 이 알갱이가 마치 바삭한 볶음밥처럼 톡톡 터져 함께 어우러진다. 약간 매콤하기까지 해서 자꾸 손이 간다.

 

아무도 관심을 안준다.

 취미로 건반을 치는 Kamal 아저씨는 언젠가 내게 기타를 들려달라고 하셨다. 라마단 기간에는 노래도 부르면 안 된다고 하니 조금만 들려주고 나중에 같이 연주해봐야겠다.


감동...


 며칠 전 제일 좋아하는 맥주를 물어보던데 사다 놓으려고 물어보셨나 보다. 나는 뭐 좋아할지도 몰라서 대충 초콜릿, 음료수만 사갔는데.. 역시 자상한 면이 있어... 식사를 끝내고 티비를 좀 보다 보니 어느새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됐다. 자리에 일어나려 하자 사람들이 물어본다


/그럼 저녁은?


오잉?

 위에 ‘간단한 다과’라고 설명했지만 그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이고 내가 본 이프타르는 누가 봐도 푸짐한 양이었다. 당연히 ‘이따가 먹고 자나보다~’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또 다른 밥상이 차려졌다. 커리집에서 볼 수 있는 비리야니(Biryani)를 어림잡아 30명이 먹고도 남을 만큼 만들어 놓았다. 우리 몫을 덜고도 흠집 하나 없는 대단한 양에 말문이 막혔다. 이날, 탄수화물과 거리를 두려 다짐했지만 결국 세 접시나 먹어치워 버렸다. 가운데에 있는 샐러드는 당근과 오이를 채 쳐 요거트로 무친 것, 비리야니에 뿌려먹으면 한 그릇 뚝딱!

아저씨에게 비리야니 만드는 법 배움! 새로운 뭔가를 만들 시야가 조금 더 넓어졌다.

덕분에 몇끼 더 챙겨먹었습니다

 집에 돌아가려 일어서니 모두가 마중 나온다.


“아이고~ 됐어요. 얼렁 들어가셔”

/현관까지만 나갈게 어여 가~


와같은 대화로 정내 풀풀 풍기며 계단을 도망치듯 내려왔다. 손엔 아저씨가 챙겨주신 비리야니와 샐러드를 들고 유럽으로 돌아왔다. 거리엔 독일어로 된 간판들, 한국인 두 명은 방글라데시 음식을 들고 집에 가고 있다. 아주 훌륭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태성이는 부다페스로 가야하는데 못 가네.


3. Songul Choi - 요 부라더!


요 브로 다음 주에 chill 할래?
같이 일했던 한국인 형, 최형규와 그의 아내 Songul. 비자 문제로 형규 형은 귀국해 취업준비로 한창이고 Songul은 혼자 비엔나에서 근무 중이었으나 이번 사태로 인해 강제적으로 쉬고 있는 중이다. 안 본 지 꽤 된 것 같아 소소하게 파티나 하자며 연락을 주고받았다.
직접 머핀도 구웠단다. 다음에 내가 브라우니로 혼내줘야겠다.

 첫 만남에 브라더가 된 친구다. 전에 친구들이랑 와인, 싸구려 위스키를 홀짝이며 음악이나 들으러 몇 번 놀러 갔었다. 이걸 chill(맘 편히 쉬다(?)) 한다고 하는데, 이 녀석. 연락할 때마다 늘 chill 하러 놀러 오라 말하는 굉장히 힙한, 역시 바텐더다운 모습을 보인다. 원래 태성이도 같이 오려했지만 결국 헝가리에 잘 도착한 덕에 혼자 오게 되었다. 그런 외톨이에게 사람을 소개해주겠다며 노래방에서 만났다는 친구들을 불렀다. 전에 한 번 보고 갑자기 연락한 거라 조금 어색할 것 같단다.

버스 드라이빙!

 그녀는 내게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히 해준다. 그중 어떤 친구는 일본계 오스트리아인으로 한국어도 조금 할 줄 안단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고, 이내 그 사람이 도착했다. 전에 클럽에서 몇 번 인사했던 친구인데 왜인지 나를 못 알아보는 것 마냥 갸우뚱거린다.  ‘그새 머리가 길어서, 특히 모자를 안 쓰고 있어서’ 일까 하고 반가움 마음에 한껏 들떠 말했다.


“우리 클럽에서 몇 번 인사했잖아, 너도 나 알아보고 나도 너 알아봤는데 모자 때문인가?”


/잘 모르겠는데...


모자를 썼다.

“자 지금은 어때? 나 기억나??”


/아!! 라라 친구!


 평소 내성적이던 성격이 취할 때면 외향적으로 변하는 터라 술이 깨고 나면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뭐 어쨌든 그녀, Manami가 가져온 행운의 포커를 가지고 게임을 시작했다. 이 친구는 술자리를 보통 좋아하는 게 아닌가 보다. 난생처음 보는 술 게임을 다섯 가지나 보여준다..

 사실 Manami가 도착하기 전 Songul과 집에 숨은 포커카드를 찾고 있었다. “나 집에 엄청 많은데 얘기하지 갖고 올 수 있었는데..”라 질책하며 아쉬워하고 있던 찰나 그녀가 도착하고, 슬금슬금 가방으로부터 꺼내는 황금색 카드덱은 영롱하기까지 했다. 근데 전에 만났던 친구라니... 세상 진짜 좁네

트랭크스! 부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던 다른 친구가 집으로 돌아가고, 잠시 방에 가둬두었던 두 마리의 고양이들을 입장시켰다. 여기저기 탐색을 시작하고 우리 모두는 눈길을 빼앗겼다. 정신을 차리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잇따라 Songul이 다녀오고 나를 손가락질한다.


/ 난 어떤 남자애가 화장실에 들렀다는 걸 확신해!


무시했다. 다시 화장실을 가다 마주쳐 말을 건넸다.


“선생님, 혹시 어떤 남자애가 화장실을 가도 될까요?”


/네. 다 쓰고 변기커버 내려주시면요^^


결혼생활이란 게 엄청 복잡한 거구나...

Anime 오덕

 이 하얀 친구의 이름은 드래곤볼의 ‘트랭크스’다. 결혼 전 이미 데리고 있던 친구란다. 외모와 달리 약간의 오타쿠 기질이 있는 그녀는 요새 시간도 보낼 겸 그림을 그린다며 몇 장 보여줬다. 나도 이번 술자리를 글로 쓰게 되면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하하

내년에 다같이 한국에서 봐요ㅜㅠ

 결혼한 지 1년 반 만에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결혼기간 대부분을 차지한 만큼의 시간을 떨어져 다시 보내야 한다. 서로가 각자의 심리와 상황의 변화로 지치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번 파티로도 작은 다툼이 있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이 일에 대해 내게 상담과 가치판단을 묻는다. 어떤 것이든간에 싸웠던 대부분의 이유은 서로의 관심 표현과 입장차이었으니 결국 잘 해결되리라는 순수한 가치판단의 결과로 그들을 응원하고 도모했다. 다음날 형규 형으로부터 화해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작은 감사인사를 받았다. 최근에 결혼한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나는 여행으로 이런 사람들을 만났으니 한국에서 너희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다며.


그의 흔적...

 주방에 둘이 근무하게 되는 날이면 온갖 썰전이 난무한다. 문과인 형규 형은 명문대학교를 졸업할 정도의 지식인이고, 이과인 나는 지방대를 나와 취미로만 공부하는 수준. 다행히 서로의 관심사가 달라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인문학엔 도통 없던 관심이 조금이라도 생겼다. 그의 열린 사고와 정직한 태도, 노력은 본받아야 할 멋진 자세이다. 그의 ‘홍대 촌스러운 모자’는 집에 그대로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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