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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Oct 01. 2020

[Swiss] 즉흥 5박 캠핑 - 물이 더 필요해

2일. Appenzell


1. Sämtisersee - 간밤에 환자 없습니다


읏추

 자 아침이다. 온몸이 축축하다. 추위를 엄청나게 타는 편인 데다가 핫팩도 안 챙겨 와서 엄청나게 춥게 잤다. 일부러 호숫가에 자리를 잡은 것도 물을 떠다가 데워 껴안고 자려했던 이유에서였는데 늪 때문에 호수까지 닿을 수 없었다. 오는 길에 오두막에서 떠온 1L 정도가 전부였고 이마저도 아껴 사용했는데 딱 차를 달여마실 만큼만 남았다. 쨌든 감기는 안 걸린 것 같으니까 슬슬 일어나야지. 페퍼민트를 한 잔 마시고 아침 체조를 시작했다. 옷차림도 그렇고 무슨 훈련 나온 것 같네.

할아버지 할머니 귀엽다

 어제 해 질 무렵 산으로 올라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마주쳤다. 다들 하산하는데 나만 반대로, 오늘은 내가 하산을 하고 사람들이 올라온다. 미묘하구나. 어제 들렀던 오두막에서 간단히 세안을 하고 쓰레기를 정리하며 더러워진 손을 계곡물에 씻었다. 준비만 잘하면 산에서 한 달 정도 지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사실 내려오다가 또 길 잃어버림)

다음 목적지는 어디냐

 신발이 쫄딱 젖었다.

나중에 캠퍼를 사게되면 저런식으로 꾸며야지


2. Schäfler - 호연지기


밥!

 차로 약 30분 정도 달려왔다. 오늘은 정말 정말 가보고 싶던 Schäfler에 가려고 한다. 산 입구에 있는 가게에서 허기 좀 때우고 가야지. 아펜젤에서 생산되는 라거도 한 잔 마심.

빵은 안먹네

 고양이는 귀엽다. 아주 영리하고 신체능력 또한 뛰어나다. 사실상 호랑이나 스라소니, 늑대가 사라진 대한민국에서 고양이는 자연계에 상위 포식자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 네이처지에 올라온 연구결과를 확인해보면 미국에서 연간 13억에서 40억 마리의 조류와 63억에서 223억 마리의 포유류가 고양이에 의해서 사냥당한다고 한다. 한국에선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되어있다고 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가만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나는 인간이고 곰에게 물려 죽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해 이견은 없지만.... 아무튼 고양이는 참 매력적인 동물이다.

나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사 먹는 음식인데 얘는 그냥 와서 달라고 하네.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고양이랑 같이 여행 중이냐고 물어본다. 정말 그러면 좋으련만 ㅎㅎ

너는 왜 마스크 안쓰냐
지도에 Talstation Luftseilbahn Wasserauen - Ebenalp AG를 검색하면 Ebanalp까지 오르는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

편도      왕복
성인 20프랑      31프랑
10인 이상 단체 16프랑      25프랑
어린이 7.5프랑      12프랑
6세 이하 무료      무료
강아지 5프랑      10프랑

*SBB falf fare travel card, 스위스 패스, 스위스 플렉스 패스, GA Travel card 소지자는 50% 할인

  아기와 강아지가 서로에게 낯을 가린다. 덕분에 다들 즐거웠음.

6분만에 도착!

Ebenalp에 도착. 페러글라이딩을 준비하는 사람들, 데이트하는 연인들, 조용조용하니 좋네. 나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까지만 가려고 한다. 저 꼭대기에 작은 숙소가 하나 있는데 1박에 45프랑 정도라고 하니 하루 묵고 일출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Ebenalp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트래킹 코스도 꽤 유명한데 다음번에 가게 된다면 Seealpsee라는 호수에서 캠핑을 해봐야겠다. 호수까지 가는 길에 절벽에 지어진 식당도 하나 있다고 한다.

코앞이네

 생각보다 가깝다. 가족 단체모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바비큐를 준비하고 있다. 언젠간 한국도 규정이 느슨해져 다 같이 월악산에서 바비큐 해 먹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사실 한국은 산불이 잘 나는 지형이라 우선 전부 민둥산으로 깎아버려야 하나. 물론 농담.

잠깐 쉬어가기

 이제부턴 길이 가파르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쉬었다 가야겠다.

떨어지면 절단 난다잉

 거의 정상까지 왔는데 아까 쉬던 곳에 고프로를 두고 왔다.... 흠. 얼른 뛰어내려 가야겠다. 꽤 좁은 바윗길을 얼레 벌떡 달려 다행히 카메라를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미 많이 지친 데다가 물도 거의 다 마셔버렸다. 후... 다시 올라가야지 뭐. 결국 또 3시간 걸리겠네.

아까 말했던 숙소!

 마구 뛰어내려다 신발 밑창이 다 떨어져 나갔다. 친절한 스위스 아주머니는 내 꼴을 보고 “오 걸어서 유럽 횡단 중인가 봐요?” 물어본다. “아뇨 그냥 캠핑 다니고 있어요ㅎㅎ”. 이후 그 아주머니는 마주칠 때마다 ‘어! 오스트리아!’ 하며 인사해주셨다.

저 아저씨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왜인지 날파리가 엄청 많다.

무서워

 절벽 아래로 내려가서 조금 더 가보려고 생각도 해봤지만 이미 굉장히 무섭다. 경관이 엄청나다. 나중에 하늘을 나는 스포츠를 배우면 한 번 떨어져 보고 싶을 정도다.


아마 위험하다는 이야기인듯

 정상은 땅이 좁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내주고 호텔 뒤편에 앉아 쉬고 있는데 내 또래쯤 돼 보이는 친구들이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한다. 절벽에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재미난 농담이 생각났다.


“뷰가 잘 안 나오는데 뒤로 세발자국만 가줄래?”

/오케이

“놉!. 농담이야. 움직이지 마!”


 하마터면 살인자가 될 뻔했지만 이 친구들은 자연스러운 웃음을 만들어줘서 고맙다 한다. 긍정적인 친구들이네. 다시 짐을 챙겨 떠나려는 찰나 뒤에서 익숙한 인사말이 들린다.

/Annyeong~~

그래 안녕ㅋㅋㅋ

오늘이 일요일이었구나

 오늘은 일요일이라 마트가 죄다 문을 닫았다. 동네 우체국에서 굴라쉬(헝가리 스튜)와 소시지를 몇 개 사 차에 올랐다. 평소 다리에 쥐가 잘 나는 편인데 이틀 연속 하이킹을 해서인지 이날은 유난히 심하다. 길은 다시 꼬불꼬불, 트랙터, 마차, 소들을 피하다가 결국 차 손잡이 안쪽 부분에 작은 스크래치를 냈다. 후... 스트레칭을 좀 하고 마저 가야겠다.


3. Walensee - 인종차별은 뚝배기를 박살 낼 거야

평점이 괜히 3.8인게 아니야

 오늘은 안전빵으로 물가에 있는 캠핑장을 가야겠다. 내일 인터라켄으로 넘어갈 예정이라 가는 길에 있는 캠핑장을 검색했다. 그리고 약 한 시간 만에 도착. 어찌 된 영문인지 주인아저씨는 심술이 나있다.


“오늘 하루 묵고 가려는데 남는 자리 있어?”

/오래 있을 거면 저쪽, 짧게 있을 거면 저쪽에 주차하면 돼

“난 하루 있을 건데 짧게 있는 쪽에 주차하면 되겠네?”

/그러니까 들어봐, 짧게 있을 거면 저쪽, 길게 있을 거면 저쪽

“응 그러니까 하루면 짧은 거 맞지? 저쪽에 주차할게”


아저씨는 갑자기 성질을 내며 같은 말을 반복한다. 나도 슬슬 열이 받는다.


/너 그냥 돌아가.

“오케이 아저씨. 나는 여기 처음이고 잘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야. 화내지 말고 그냥 알려주면 되잖아”


여자 저차 대화가 마무리되고 등록을 하러 여권을 보여주자마자 다시 성질을 내기 시작한다.


/한국? 안돼, 코로나 때문에


나는 여권을 펼쳐 오스트리아 비자와 도착일, 코로나 발생 시점을 비교해서 설명했지만 아저씨는 ‘아 몰랑’을 시전 한다. 문득 드는 생각 ‘아! 이 아저씨 지금 나한테 인종 차별하는구나’


“아하 알겠다. 너 빌어먹을 인종차별주의자구나”


역시나 아니라고 한다. 자기가 바보인걸 모르는 게 가장 바보 같은 짓이다.

 FFFFFF. 욕설이 난무한다.


고마워용

 캠핑장을 박차고 나와 주변을 탐색했다. 차로 20여분을 달리니 작은 공터가 하나 나온다. 낑낑대며 차를 갖고 들어오자 패들보트를 정리하고 있는 남자가 한 명 보인다.


“요 브로! 혹시 여기 주차해도 되는지 알아?”

/아 아마 여기는 안될 거고 저 위로 올라가서 어쩌고저쩌고 하면 주차장이 하나 있을 거야 거기에 대면돼

“오키 땡큐!


잠시 대화를 나누고 도로로 올라 유턴을 하러 작은 연립아파트(?)에 들어갔다. 때마침 주차를 하고 건물로 들어가려는 부부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근처에 주차장이 있다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시나요?”

/흠.... 그냥 여기에 해도 될 것 같은데?


참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 스위스 재밌네.

쉬자

 또 늦어버렸다..ㅋㅋ 조금 일찍 도착해서 수영을 할까 했지만 대충 밥이나 먹고 자야겠다. 다행히 여긴 사람들이 두고 간 화로가 있으니 바로 불만 피우면 될 것 같다.

좋았어

 평지다 보니 주변에 마른 장작이 많다. 오늘은 아무래도 늦게 잠들 것 같다. 나뭇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기고 꼬치를 만들어 소시지를 구워야겠다. 굴라시는 캔째로 불속에 던져놓으면 될 것 같아.

오 노을 예뻐

 근처에 물이 있으니 이렇게 편하다. 이 동네는 그리 춥지 않으니 그냥 자도 괜찮을 것 같다.

완벽해

 와인 병나발!

가로등 베이비 눈부셔

 사실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이에 스스로 인지하고 행동을 하는 놈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본인도 인종차별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이 딱 그렇다.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만큼 냉정한 시각으로 봐야 한다 생각한다. 알게 모르게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흘깃거리는 눈빛 하나하나가 당사자에겐 수 백, 수 천개의 시선이 된다. 필리핀에서 유학 온 친구와 미국에서 유학 온 친구, 또는 반대로 유학을 다녀온 친구들을 대하는 시선과 태도에서 나는 수도 없이 느꼈다. 실제로 어느 수준의 말과 행동까지가 차별이고 아니고는 개인차 이긴 하나 그 최소치를 점점 낮춰가는 게 서로 사랑하는 길이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가 발생하고 몇 주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다 어떤 남자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코로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그거 너네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잖아’ 나는 이 친구가 정말로 몰라서 물어보는 것 같아 조곤조곤 설명해줬다. “너 지금 인종 차별하고 있는 거 알아?” 나의 이름도, 어느 나라 출신인지도 모르고 다짜고짜 그런 예민한 문제를 물어봤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가 내가 아시아인이기 때문이라는 점. 게다가 이 친구는 러시아에서 왔다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중국에서 발생했다는 의견이 다분하니까. 변수는 존재한다고 생각) 지리학적으로 너네 동네 일인데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끝내 이 친구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정중히 사과를 했고 우리는 친구가 됐다.


 이처럼 개인이 이런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이에 대해 확신이 든다 싶으면 욕을 한 바가지 쏟아줘야 한다. 설령 ‘너무 지나치게 반응하는 거 아냐?’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선 이는 명백했다. 언어가 안되면 그냥 한국어로 욕을 하든 중지를 펴든 확실한 의사표현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어 아시아인들 착하니까’라며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지금 당장에야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이렇게 10년 20년이 흐르면 이런 인식은 바뀌지 않을 테고 나의 자식들도 같은 일을 당할게 뻔하다. 나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라고 나의 자식들도 그런 일을 발생시키지 않길 바라기 때문에 싸움도 못 하면서 화를 내는 것이다. 물론 저기 어디 미국 슬램가에서 그러면 총을 맞을 수 있으니 정확한 상황판단이 선행되어야겠다. 스위스에서 대낮에 칼침을 꽂진 않을 테니까. 오늘은 참 재미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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