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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Nov 30. 2020

우리는 미워하는 법만 배웠잖아요.

한 잔 합시다!


1. 나도 그랬어요

충주는 재미없었어요. 지나다니다가 만나는 사람들도 언제나 똑같은 얼굴이고. 이곳에서 살기 싫다. 여기서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재밌는 게 하나도 없는데?
- KBS 다큐 ‘도시, 다시 꿈꾸다’에서
여행자 ‘신병흠’님의 인스타그램

 맞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아니 보다 더 부정적이었다. 내가 입고 싶은 옷. 새로운 머리를 하고 나타나면 늘 질타를 받았다. “너는 도대체 왜 그래?”

춤추고 싶을 때 춤추고 노래하고 싶을 때 노래하고 싶었다. 감정을 드러내면 ‘오버하지 마’, 의견을 이야기하면 ‘나대지 마’... 지긋지긋했다. 여기서의 내 역할은 ‘이상한 놈’. 도망쳤다.

대학생활은 그나마 괜찮았다. 새로운 얼굴들은 내 이런 점을 “타지에서 온 재미난 친구”로 해석해 받아줬고 나는 즐거웠다. 아직도 그들에게 감사하다. 만약 그들이 내 고향. 충주의 그들과 같은 태도를 보였더라면 나는 바뀌었을 것이다. 내 가치관은 이십대의 막바지, 이제야 어렴풋이 떠오르고 있는 중인데 그때의 나는 말랑말랑한 번데기 같았다. 그 시절의 나는 상처도 많았고 견뎌낼 여력도 없었다. 내 태도를 유지하며 외톨이가 되거나, 남들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며 살아남거나. 선택지는 둘 뿐이라 생각했다.

아마 이 여행자도 같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우리 동네는 원래 그러니까... 나는 이곳이 싫었다. ‘한국에 다시 돌아가게 된다 해도 이곳은 절대 아냐’ 매번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미워하는 법을 배웠다.


군대를 전역하고 서울로 향했다. 더 자유롭고 새로운 경험이 있는 곳. 이 새로운 환경이 나를 바꿔줄 거야. 하고 싶은 거 다 하자!

상경 후 3개월쯤 지났을 때 극심한 우울감에 빠진 적이 있다. 아침마다 타던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간 20년간 배운 ‘비교하기’와 ‘남과 같아지기’가 몸에 밴 탓일까. 타인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소리치던 촌놈은 이 도시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허나 이번엔 타인이 아닌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손가락질에.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은 그들을 신경 쓰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인가?’ 고민했다. 창피했다. 알게 모르게 조금씩 맞춰가기도 했다. 단정한 투블럭 머리와 검정색 슬랙스... 별로 즐겁지 않았다. 다시 도망쳤다.

충주 관아골, 사바이가든
“단지 여행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이라는 이유 만으로 얻어 잔 수많은 밤과 얻어먹은 수많은 밥들. 갚아주고 싶어요” - KBS 다큐 ‘도시, 다시 꿈꾸다’

나는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려는 찰나 코로나 사태로 귀국하게 됐다. 물론 지난 3년간의 경험과 추억, 이야기들은 고스란히 간직할 보물이 되었다. 모든 사람들과 모든 시간, 모든 공간이 머릿속에서 뒤섞이며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자신감을 잃었을 때, 문제에 마주칠 때면 이 이야기들은 내게 귀띔을 준다. 설령 잘못된 답이라 해도 괜찮다는 따듯한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때론 문제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는 안경이 되기도 한다. 이제 나는 이것들을 활용해 살아갈 궁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내가 받은 이야기들에 대한 보답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 마음들을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당연한 길일 수도 있다.

가게를 차리자!라는 단순하고 흐릿한 꿈에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계획했던 대로 일이 안 풀릴 때(그런 경우가 훨씬 많지만) 해결될 방안은 늘 존재한다는 법칙은 지난 시간에서 알아냈고 모든 문제는 이 법칙 아래 존재한다.


 그(신병흠)가 지난 8년간 여행하며 받은 수없이 많은 도움들을 갚을 방법은 ‘공간’이었다.

“예전의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그동안 받은 것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해요.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는 공간말이죠.” 

순회. 꼬리를 무는 뱀이다. 그의 확신에 찬 표정과 설렘은 내게도 전달되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고 있다.


2. 근데 이젠 아냐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서 그가 충주에 돌아왔다는 짧은 글과 사진을 한 장 보게 됐다. ‘만나보고 싶다’. 바로 달려갔다.


 여자 저차 고향에 돌아왔다. 짐을 풀고 옷장에 옷을 걸었다. 이제는 여기가 내 집이다. 오랜만에 밖으로 동네를 구경했다. 자주 갔던 카페, 고깃집, 옷가게, 시장. 그 후 며칠 동안은 계속 추억을 따라 구경만 다녔다. 여전하다. 골목에 그려진 낙서가 귀엽고 배가 고플 쯤 할 때 떨어지는 해가 예쁘다. 구제 옷가게 ‘보물섬’ 아저씨는 여전히 건강하시고 국밥집 할머니는 늘 ‘7억 5천만 원’이라 농담하신다. 물길을 따라 풀이 자라나 있고, 예전에 살던 아파트도 다녀왔다. 차를 타고 10분만 나가면 강가에서 모닥불을 피울 수도 있고 창가에 앉아 기타를 쳐도 뭐라 할 사람 없이 조용하다. 사실 나는 우리 동네가 좋았다. 그 좋지않던 기억들이 미웠던 탓이었을 텐데 이제는 그런 마음도 들지 않는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없던 탓은 나에게 있다. 그들은 그들의 말을 했을 뿐이다. 나는 내 길을 가면 된다. 이 생각이 들자 마음이 울렁울렁거렸다. 앞으로 재미난 일이 자꾸만 일어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냥 지나쳤을 엘리베이터의 아저씨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법을 호주에서 배웠다. 골목에서 길을 비켜주는 맞은편 차에게 엄지를 들어 올리는 법을 유럽에서 배웠다.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 법을 인도네시아에서 배웠다. 이렇게 많은 친구가 생겼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실 우리 동네는 예전과 똑같다. 물론 여전히 오버하지 말라 할 친구들도 있다. 바뀐 건 나다. 내가 웃는 법을 배웠고, 이건 내 유일한 무기다. 그러니까 나는 이러지 않았으면 안 됐다. 끝까지 남아 믿어줬던 몇몇 고향 친구들, 대학 동기들, 군대, 워킹홀리데이, 여행. 그 모든 일과 사람이 나를 만들어줬다. 고맙다. 고향에 돌아와 새로운 영감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렵다 얘기하자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라며 손뼉을 치게 만든다.     


 얼마 전 그에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책과 비슷한 경험을 했고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자 대부분의 문제들이 말끔히 씻겨 내려간 기분이 들었다는 이야기. 어쩌면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려도 사실 이 이야긴 ‘태도’에 관한 것이다. 그는 공감했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사실 우리 주변엔 마법 같은 일들이 언제나 벌어지고 있어요. 그저 못 보고 지나치는 것뿐이죠”

마법 같은 일들... 마법 같은 일들....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학창 시절 무심코 지나치던 골목 어귀에서 봤던 어떤 가게는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렇게 선택된 우주는 지금까지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여전히 진행 중이고 나는 그 끝이 아주아주 재미날 거라는 걸 확신한다. 왜냐면 지금까지 그래 왔으니까.  

룰루랄라

 실수는 놀림감이다. 능숙하지 않으면 시도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문화적 경향이겠지만 나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다. 아마 그 경쟁하는 시스템이 이 사회를 재미없게 만든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조금 안타깝다. 못해도 재밌으면 그만인데! 며칠 안 씻어도 안죽어. 나는 이 밤 아주 즐거웠다. 다들 마음 가는 대로 치고, 두드리고, 소리 지르고, 마시고, 피우고.

“ We love Chungju city! 우리는 충주를 싫어하는 법만 배웠잖아요. Cheers” 그날은 술을 너무 조금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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