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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May 20. 2021

회고록

그 동안 이렇게


  갑자기 추억팔이


오늘은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별다른 계획 없이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주 오랜만에 늘어지게 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다가 오랜 사진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2017년 11월 경 학교를 졸업할 쯤에 홍콩으로 취업을 나갔다. 때마침 만나던 친구와 헤어지며 “이 땅에 더 이상 볼일은 없다!”라는 마음가짐으로 떠났던 첫 번째 해외생활은 이후 큰 변화들을 가져왔다. 사실 몇 년도였는지, 나이는 몇이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아 인스타그램 피드를 통해 확인했다. 그만큼 시간은 내게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고 사실 여전히 그러하다. 홍콩 살이 중 만난 사람들, 일터에서 겪었던 수모와 재미, 눈만 뜨면 새로운 것들 천지였던 타국 생활은 매일이 신선했다. 이곳의 삶에 적응이 되던 시기에 어떤 친구에게서 호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두 어 번 정도 만나 맥주나 마시던 친군데 꼭 다녀와 보라며 여러 가지 정보들을 알려줬다. 영감이 됐다. 사실 새로운 것에 적응하기 시작하며 더 큰 어떤 것을 찾고 싶던 마음이 들기도 했고 때마침 회사와 불화가 생겨 퇴사를 결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호주로 떠날 준비를 했다.

함께 일하던 친구들(왼) 홍콩에 놀러온 고향 친구들 (중) 놀러온 가족들(오) 이때는 웃음이 어색했다
 2018년 말 두어 달간의 준비를 마치고 멜버른으로 향했다. 참 그사이에 친구와 베트남에, 가족들과 동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심사를 마치고 기차에 올랐다. 비가 내린다. 시골길을 달리던 중 언덕 위에서 뛰어다니는 캥거루 한 무리를 발견했다. 다시 새롭다. 한자가 아닌 영어로 쓰인 표지판, 다양한 인종과 언어. 유럽풍의 건물과 잘 정돈된 듯 지저분한 골목길, 우선 보름간 지낼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30kg 정도 되는 캐리어를 들고 낑낑대며 5층에 위치한 12인실 방에 짐을 풀었다. 며칠간은 동네를 구경하고 할 일을 시작해야겠다. 먼저 유명한 거리에 들렀다. 지금은 설레고 기대감에 부풀어 있지만 나는 어렴풋이 느껴졌다. ‘다다음주쯤이면 집도, 일도 못 구해서 쩔쩔매다가 이 거리에 주저앉아서 깡소주를 마시고 있겠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다행히 1주일간 부지런히 돌아다녀 지낼 곳을 찾았다. 조금 더 여유롭게 구경했다. 옆동네도, 바닷가도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냈다. 2주 뒤 통장잔고가 거의 바닥이 났다. 일자리를 빨리 구해야겠다.

 여차저차 일자리도 구하고 안정적으로 하루 일과도 보내고, 많은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멜번에서의 일상을 이어나갔다. 6개월이 지났을 무렵 북쪽으로 떠날 계획을 차렸다. 시드니에 살고 있던 고등학교 동창이 멜번으로 놀러 온 덕에 그들의 차를 얻어 타고 시드니로 향했다. 시드니에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브리즈번으로 간다.

 다시 일자리 구하기와 집 구하기가 시작됐다. 이번엔 더 빠르게 집을 구했지만 일은 구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방법에 익숙해지자 큰 지출 없이 알찬 시간들을 보내는 데에 기술이 생긴 탓이다. 한 달 정도 시간을 보내며 점점 이곳에 물들어 갈 무렵 한국에서 친구 둘이 도착했다. 대학시절 매일같이 붙어있던 녀석들인데 이제부턴 이들과 함께 움직인다.

 차를 사고 시골마을로 들어갔다. 비자 연장에 부합할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세운 계획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싸그리 무너지고 말았다. 일이 잘 해결되지 않아 공장과 농장 지역을 돌아다니다 어떤 날은 당장 지낼 곳이 없어 시골길에 차를 세워두고 한탄하며 시간을 보내고, 어떤 날은 별을 보러 산에 갔다가 사냥꾼들을 만나 벌벌 떨었던 적도 있다.(사실 아주 친절하신 분들이었고 그들에게서 사슴뿔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이 지역에서 Syu를 만나게 됐고 그때부터 넷이 함께 다녔다.

 일을 하는 데에도 수입이 자꾸 적자가 났다. 일을 많이 하지 못한 시기이기도 했거니와 아시안 농장 특유의 쓰레기 같은 운영방식 때문에 우리는 마트에서 소고기 잡뼈를 사 우려먹으며 몇 주를 버텼다. 당장 방세도 내기 힘들어지자 우리는 계획을 변경했다. 멜번으로 돌아가자, Syu도 호주에 막 도착한 참이라 아직 정보가 많이 없었을 때, 우선은 잘 알고 있는 도시로 가야했다. 다음날 아침 차에 짐을 싣고 몸을 구겨 넣고 출발했다. 다시 시드니를 거쳐 멜번으로 돌아간다.

 기름값을 제외하곤 거의 빈털터리인 신세, 잠은 차에서 자거나 갖고 있던 이불을 주차장 바닥에 깔고 잤다. 하루는 차 위로 올라가 몸을 뉘이기도 했다. 멜번에 도착하고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다.

YHA게스트하우스, 일자리를 바로 구하고, 매주 간신히 모은 돈으로 방세를 지불하며 살았다. 잔고에 여유가 있으면 몇 주 씩 한 번에 예약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럴 처지에 가깝지도 않았다. 때문에 매주 방을 옮기며 살았다. 약 두 달 후 지낼 곳을 구해 안정적인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사실 브리즈번에서 시골로 들어간 후부터 이때까지 재정적으로 가장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제일 재밌던 순간들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 남은 식재료들을 찾아 요리해먹고 친구들과 1, 2 달러짜리 동전을 모아 사 마시던 싸구려 와인. 통장에 찍힌 0.8달러 잔고를 확인할 때는 당장 돌아가고 싶었지만 고비를 넘기고 마트에서 사 마셨던 7달러짜리 소주는 정말이지 달콤했다.

 호주를 떠날 날이 다가오자 우리는 새로운 계획을 만들었다. 캠핑카를 빌려 사막지대를 지나 서쪽 도시 퍼스에 가는 것. 비싼 돈을 지불하고 렌트를 하면 언제든 출발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Relocation이라는 시스템을 이용해 하루에 1달러 + 기름값 지원이라는 수에 초점을 맞췄다. 다행히 계획하던 시기에 적절한 매물이 올라와 신청하고 다시 짐을 꾸렸다.

첫 룸메이트 예찬과 친구 토모키
단짝 John 점점 나를 찾는 중
거지 사인방과 YHA 식구들
Belles 동료들 (Goergia, Carlos, Saugat)


 친구들은 호주에 남고 나는 홀로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후에 말레이시아를 거쳤다가 귀국. 이번엔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하리와 동네 아이들

오스트리아에선 고독을 보내며 나를 찾는 방법을 알아냈고, 전보다 훨씬 많은 친구들과 더 자연스러운 생활을 이어갔다. 더 많이 떠났으며 더 안정적이었다. 무엇보다 점차 완성되가는 내 모습에 만족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린 시절 꿈꿨던 모습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구나. 그동안 잘 느끼지 못했다. 나는 불만족에만 눈길을 주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는데 이미 일은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고민하던 모습들은 확신이 들어차는 순간 내 모습인 것이었다. 호주에 처음 도착하던 날, 말도 잘 못하던 놈이 무슨 패기로 그렇게 돌아다녔을까. 그 순간에는 별생각 없었던 듯했는데. 기특하다 과거의 나.

주정뱅이들 (태성, 초롱, Lara, Bella, Mary, Bella 동생)
안녕



 사진을     천천히 훑어보며 그날들을 상기해봤다. 브리즈번 거리에서 더위에 지쳐 잠시 앉아 마셨던 슬러쉬, 길리섬 골목길에서 사귄 친구,    가족들과 여행했던 비엔나 길거리를 이제는 살고 있는 동네라며 그때를 회상하던 . 사실 반짝이고 환상적인 풍경의 사진들은  번이고 봐서 그런지 크게 감흥이  느껴졌다. 사진에 담기지 않은 그날의 냄새나 온도는  머릿속에서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감지한 그날의 감각들, 이야기들이 생생하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치 않다. 결국엔 상황이고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바래지겠지만 사라지진 않는다. 경험과 존재에 소비하는 것에  이득이란 이런 걸까. 현재의 프레임으로  과거는  아름답다지만 어쩌면  고행길에 올랐던 당시에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고난은 후에 재미나게 기억될 순간이니 지금은 아름다운 순간이 맞다. 그러니 오늘도 열심히 카트라이더를 하고 책을 읽고 이렇게 추억팔이를 하는 내게 박수를 보내야겠다!! 기특하다 오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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