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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rip Feb 14. 2022

4238일 남았네요?

멋진 파라다이스

유토피아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었다. 모두가 태어남과 동시에 해야 할 일과 수명이 정해졌다. 아무도 아프지 않고 누구도 고민하지 않았다. 진실로 행복한 세상이다.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 누구든 주어진 일에 몰두하며 완벽한 식단과 학습으로 하루를 보내고 규격화된 공간으로 들어가 잠을 청한다. 작은 나무 방에 두어 개의 캡슐이 우리의 쉼터다. 정해진 때가 되면 우리는 관리자가 쥐어주는 주황색 알약을 먹고 캡슐로 들어간다. 숨을 고를 세도 없이 캡슐은 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땅속으로 들어가 주황빛과 함께 사라진다. 흔적도 없이, 심지어 캡슐 출입문이나 땅의 구멍 같은 균열도 메워지며 무엇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죽음, 이에 불평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진실로 행복한 세상을 완벽히 살아가는데 뭐가 문제야?”

바보 같아.

 


 일터에서 돌아왔다. 엊그제 심어뒀던 몇 개의 씨앗이 금세 잎을 틔웠다. 모래 대용으로 넣어두었던 영양 밀가루에 영양토를 섞어주기 위해 화분을 들척거렸다. 완벽히 배합된 밀가루 덕에 식물의 뿌리가 비대해졌다. 잎은 아직 두 번째 새싹을 막 틔워낼 참인 데에도 뿌리만큼은 주먹보다 약간 컸다. 총각무 같기도 하고 커다란 더덕 같기도 하다. 아마 이대로 얼마만 더 놔두면 알아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리라. 생각해보니 심어뒀던 모든 씨앗이 문제없이 자라났다. 아마 이대로 얼마만 더 놔두면 죽는 녀석 하나 없이 건강히 자라겠지.. 그에 비해 화분이 너무 작다. 에휴.


 이제 내 차례다. 나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다. 관리자는 내게 지금까지 주위에서 수어 번 봤던 주황색 알약을 하나 쥐어줬다.

“여자 친구분도 함께 가실 건가요?”.

그녀가 대답한다.

“네!”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잠시 침묵했다. 재미없어.

“나는 여기서 행복하지 않았어”

 가족들과 주변인들에게 덤덤히 이야기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표정 없는 얼굴로 어리석은 아이처럼 물음표만 띄운다. 바보 같고 재미없다. 아무도 아파하지 않으려 하고, 아무도 고민하지 않으려 한다. 고통과 걱정 없이 어떻게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가. 그 모든 과정이 결국 행복이라는 두리뭉실한 표현일 뿐인데. 아무도 이 시스템에 맞서지 않는다. 죽음에 분노하고 슬퍼하는 당연한 생체적 반응마저 없는 우리를 진정으로 생명이라 할 수 있을까. 온갖 감정들을 내려놓으며 무력하게 알약을 집어 든다. 나 역시도 시스템의 부분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녀는 수명이 얼마나 남아있나요?”

관리자는 잠시 기다려보라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암산을 시작한다.

“음.. 오늘로부터 4238일 정도 남았네요”

아.. 아직 10년은 더 남았구나.. 나 혼자 떠나는 게 맞겠다. 곧장 그녀에게 가 사실을 일러줬다.

“아? 그럼 아무래도 나는 남아있는 게 맞겠구나!”

그녀도 동의한다. 죽음에 걱정하지 않는 우리는 수명을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살고 있었구나. 관리자는 알아서 하라는  자리를 떠났다. 보통은 알약을 먹고 순순히 생을 마감하는 가보다.  강압적이지 않은 태도마저 우리의 무력함과 순응에서  것인가.

이 모든 과정들이 마치 옷가게에서 도움을 묻는 종업원처럼 차갑고 침착하며 무관심하게 흘러갔다.


 캡슐 앞 나무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슬프다. 경주마처럼 시야를 가리고 이것이 세상에 전부인 양 떠들어 대는 이 시스템도, 그 좁은 세상에서 한정된 감정과 의미만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도, 결국 무력하게 순서를 받아들이는 나도. 나는 이것들에 분노한다. 화가 치밀어 올라 눈물이 난다. 숨이 찰 정도로 소리 내어 울었다. 코가 막히고 목구멍이 꿀렁거린다. 약간 매운맛이 느껴진다. 가슴이 위아래로 크게 들뜬다.


잠에서 깼다. 늘 아침마다 보는 나무 천장과 나무벽, 레몬색 배게를 배고 있는 그녀도 보인다. 안도감에 더 크게 울었다. 한 30분 동안 내리 감정을 쏟아냈다. 어머니 꿈을 꾼 이후로 이렇게 울어본 게 얼마만인지..


2022년 2월 14일

오전 7:40분부터 오전 8:50분까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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