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지
퇴근 정리 10분 전 매장 밖 정좌에 앉아 흡연을 하고 있다. 날이 따듯해지고 덕분에 선선한 바람을 오랜만에 감각한다.
이전에 환경이 좋지 않은 근무지에 소속되어 있었을 때는 매일 아침 매장 앞에 서서 한숨을 쉬곤 했다.
“들어가기 싫다. 저 인간이랑 또 10시간을 붙어있어야 하네.. 해야 할 일도 너무 많다.”
구태여 가게 앞에 앉아 1분 1분 시간을 확인하며 버팅기고 있다가 결국 무력하게 매장으로 들어간다. 약간은 경직된 자세로 근육들에 힘을 주고 자판기처럼 명령에 따라 몸을 움직인다. 괜히 급한 척 화장실로 가 변기에 앉아 쉬기도 하고 주문하지 못한 재료가 떨어졌다 확인이 되면 반가웠다. 마트 가는 길에 바깥공기 좀 맡을 수 있겠구나. 그래서 아직도 이태원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그 순간의 감정들이 생생하다. 이제는 느낄 필요 없는 감정들에 해방감을 느낀다. 졸업한 학교 앞에서 느껴지는 그런.. 무언가 배우며 성장한다는 사실이 그 적었던 임금과 괴팍한 셰프에게서 버티게 해 줬던 것 같다. 버틴다는 표현이 맞나. 아무튼
그렇게 이곳저곳, 이나라 저나라, 어느 도시에서도 비슷한 일을 했다. 더 다양한 환경이나 업무, 사람, 적고 많은 수입들. 어느 곳은 50만큼 좋았고 어느 곳은 30만큼 싫었다. 그 장소들을 떠올리면 판단들에 따라 공기의 감촉이나 색깔도 다르게 기억한다.
퇴근 정리 10분 전, 잠깐 숨을 돌릴 겸 바깥으로 나왔다. 주말마다 하는 캠프파이어용 장작더미 옆에 있는 작은 정좌, 나무 팔레트를 쌓아 만들었다. 사람들을 구경한다. 요새 들어 부쩍 따듯해진 날씨가 선선하다’라는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자갈을 잔뜩 뿌려놓은 마당에 왕벚꽃나무 두 그루, 열개가 조금 넘는 나무 테이블에 사람들이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다. 봄바람.
어느샌가부터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도 금세 시스템을 파악하고 적응하는 나를 발견했다. 더 효율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동료들과 의사소통을 한다. 이제는 부담스럽지 않다. 자연스럽게 업무의 완급을 조절하고 그 쪼개진 시간에 나무 팔레트 정좌에 앉는다. 무언가 오묘한 뿌듯함. 어떤 때에는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 들었지만 역시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모든 시간이 어떤 방향에서든 소중했다. 오늘의 내가 출근 전 한숨 쉬지 않는 이유는 그 많은 버팅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어떠한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부터 발소리를 내며 마당을 지나면 먼저 고양이가 달려 나온다. 밥 달라고. 장작더미 옆에 벽돌로 만든 작은 집 앞에 사료를 부어주고 업무를 시작한다. 가끔 창밖으로 벚꽃과 유채꽃을 구경한다. 점심시간에 맥주를 따라 마시면서 책을 읽고 가끔 뒷마당에서 요가도 한다. 이제는 시계를 쳐다보며 퇴근시간만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역시나 퇴근이 제일 좋지만 ㅎㅎ
아무래도 우리 삶은 일과 떨어질 순 없는 것 같다. 몰입의 즐거움. 미하이가 이야기했던 대로 우리는 우리의 일을 사랑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서는 스스로의 가치를 오판단하여 심히 우울할 때도 혹은 지나치게 자만할 때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다. 나 또한 그랬던 적이 있으니까. 그러나 이것들에 어떠한 판단을 두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니 한결 만족스럽고 충만해졌다. 때문에 이것들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고 하루 끝에 편안히 잠들 수 있게 되었다. 몰입. 이제 한 7년 정도 이 일을 해왔는데 적성에 잘 맞는 듯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