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이 인간사에 미친 영향 ①
역사(歷史)를 뜻하는 ‘history’의 어원은 라틴어‘historia’로부터 유래되었고 이는 그리스어 ‘ ἱστορέω(historéō)’ 로부터 유래되었다. 원래 의미는 ‘조사’, ‘조사를 통한 지식’을 뜻하였고 이런 의미를 사용하는 모습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historia aninuliumn]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역사(歷史)는 사실에서 출발해 과학을 껴안으며 예술로 완성된다.
<출처 : 유시민(2018), 역사의 역사, 돌베개, p16>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역사(歷史)를 ‘인간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으로 표현한다. 즉 인간 사회의 변화를 사실 바탕으로 기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역사(歷史)는 반드시 사실을 바탕으로 쓰인다. 만약 여기에 사실이 결여되었다면 우리는 그것은 역사라 부르지 않고 소설 또는 신화 정도로 불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과거 사실 기록 중 역사가의 생각 또는 철학에서 중요하거나 흥미가 많은 사건을 중심으로 엮어낸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나 생각에 따라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도 역사가마다 평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껏 이러한 역사서(歷史書)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사실은 그 지역 문명의 흥망성쇠(興亡盛衰), 즉 흥하고 망하고 성하고 쇠한 이야기였고 흥하고 망하고 성하고 쇠한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다루던 부분 또는 기록은 그 지역 문명의 지배자, 군대, 전쟁, 사회, 문화의 발달 등이었다.
시카고 대학의 역사학자 윌리엄 H. 맥닐(William H. McNeill)도 [The Rise of the West: A History of the Human Community]를 집필하기 위해 스페인의 멕시코 정복에 대한 문헌을 찾아보게 되었다. 이후 적은 수(약 600명)의 스페인 군대가 방대한 인구를 가진 아메리카 인디언을 상대로 승리한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윌리엄 H. 맥닐은 어느 문헌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멕시코 정복에 관한 기록을 보게 되고 이 의문에 대한 해답으로 전염병을 지목하였다. 하지만 과거 역사가들의 시선에서 전염병은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일이었으며 전염병으로 인해 나타나는 상황은 미생물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부족하였기에 정확한 인과 관계를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역사가는 역사서에서 전염병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윌리엄 H. 맥닐은 스페인의 멕시코 정복에서 나타난 전염병의 위력이 작지 않음을 확인하고 인류사에서 전염병의 영향력을 제대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Plagues and Peoples)]에서 과학적 사실과 이론을 바탕으로 세계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끼친 전염병을 추적하고 확인하여 역사 안에서 인류사를 변화시킨 요인으로서 전염병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에서 저자(윌리엄 H. 맥닐)가 외면받았던 전염병에 대한 사실과 영향력에 대하여 과학을 껴안고 서술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윌리엄 H. 맥닐)는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Plagues and Peoples)]에서 독특하게 인류 역사의 설명에 기생(寄生, parasitism)이라는 개념을 적용하였다. 단순히 적용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생이라는 개념을 확장해 미시 기생과 거시 기생이라는 개념까지 만들어냈다. 여기서 미시 기생은 질병의 감염원이 동물에 감염되는 현상을, 거시 기생은 포식자가 피식자를 잡아먹는 포식과 피식의 관계를 인간의 지배와 피지배 관계에 적용하여 나타낸 것이다. 결국 저자는 기생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인류의 역사에서 미생물과 문명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설명하고자 하였고 기생이라는 개념은 이 책에서 중요한 설명 체제로서 존재하게 된다. 저자가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인류의 역사 속 전염병이기에 미시 기생을 거시 기생보다 조금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여기서 미시 기생에 관여하는 생물체는 주로 미생물과 인간 또는 미생물과 동물이고 미생물은 전염병을 유발하는 생물체를 주로 의미한다.
생물은 충분한 먹이와 공간이라는 환경을 주면 개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이를 개체군의 잠재(이론적) 생장(성장)(Exponential growth)이라고 한다. 그러나 생물체가 살아가는 환경은 개체 수가 적을 때는 개체에 주어지는 먹이나 공간이 충분할 수 있으나 개체 수가 증가할수록 먹이와 공간이 줄어들게 되고 그로 인해 개체군의 크기는 한계를 보여주게 된다. 이를 그래프로 표현한 것이 개체군의 실제 생장(성장)(Logistic growth) 곡선이라 한다. 실제 생장 곡선을 잘 들여다보면 잠재 생장 곡선보다 느리게 증가하기도 하고 개체수 증가에 한계가 있는데 바로 먹이, 공간, 미시 기생과 거시 기생(환경) 때문이다.
1859년 영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오스트레일리아에 처음으로 야생 토끼를 이주시켰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야생 토끼의 천적이 없고 먹이와 공간이 충분하게 있었기에 토끼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이론적 생장 곡선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늘어난 토끼는 오스트레일리아 생태계와 그곳에 사는 있는 인간에게 피해를 주기 시작하였고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브라질 야생 토끼 풍토병인 점액종 바이러스를 오스트레일리아로 들여와 감염시켰다. 폭발적으로 감염된 토끼들은 90%의 치사율을 나타내었고 그 결과 토끼의 개체수는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3년에 걸쳐 기생체(점액종 바이러스)와 숙주(야생 토끼)의 상호적응 과정이 일어났고 이후 주기적 발생 시기와 질병이 거의 사라져 없어진 것처럼 보이는 시기가 반복되는 모습을 보인 후 토끼의 개체수도 안정되어 갔다. 7년 후 점액종 바이러스에 의한 야생 토끼의 치사율은 25%로 감소하였고 토끼의 수도 적정 수준을 찾아갔다. 이는 마치 1995년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던 큰 사슴(Elk)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해 늑대를 재도입한 것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저자의 의도대로 야생 토끼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준 점액종 바이러스의 영향력과 그 이후 과정은 저자가 설명하는 면역력이 전혀 없는 인간 집단이 천연두와 페스트 같은 전염병을 처음 맞이했을 때부터 적응하기까지의 과정과 비슷함을 알 수 있었다.
지구 상 역사에서 인간이 최상위 포식자가 된 이후 인구수는 끊임없이 증가해왔다. 물론 전쟁, 기아, 전염병에 의해 증가 속도가 느려지거나 잠시 감소한 적은 있지만 인구수는 지속해서 증가한 결과를 보인다. 여기서 인구수 증가를 느리게 하거나 인구 감소를 유발하는 모든 요인을 환경 저항(Environmental resistances)이라고 하며 전쟁, 기아, 전염병 등이 해당한다.
문명과 기술의 발달에 따른 인구수 증가와 그로 인해 나타나는 전쟁과 무역, 문화의 번영은 대대로 역사가들에게 관심 있는 소재거리였고 관련된 기록도 많았다. 특히 전쟁과 무역 전후에 나타난 사회적 변화, 문화의 발달에 대한 기록은 역사가의 인과적 상상력에 큰 관심거리였다. 하지만 전염병은 그렇지 못하였다. 그렇기에 저자는 기본적인 전염병에 대한 속성, 인류 시대별 문명의 특징, 지리적 특징에 대해 사실을 기반으로 시대별 전염병과 인간의 대응 또는 인류사를 원시 수렵 사회부터 시작하여 기원후 1700년 이후 의학과 의료조직의 변화까지 서술하며 전염병이 절대 가벼운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역사의 중요한 변화 요인 중 하나임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설명하는 원시 수렵 사회부터 시작한 전염병에 의한 인류사를 들여다보면 천연두와 페스트가 유행했던 과거의 인류가 얼마나 무기력해졌을지 공감이 되며 아메리카 대륙의 아스테카 제국 사람들의 절망감이 어디서부터 출발하였는지 납득이 되었다.
다행스럽게 1900년대부터는 의학과 보건 상식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전염병에 대한 인간 사회의 대응과 전염병의 양상이 변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균과 바이러스를 발견함으로써 전염병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이 달라진 것이다.
달라진 사람들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마스크 착용이다. 기록을 보면 1918년 인플루엔자(스페인 독감)가 유행할 당시에도 마스크 착용의 적극적 도입이 논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마스크 착용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거부 운동을 벌였고 그사이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 인구의 1/30에 해당하는 4~5천만 명의 피해를 주고 말았다. 100년 전과 비슷하게 최근 COVID19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을 때 이를 예방하기 위한 마스크 착용을 모든 나라가 권장하였다. 반발하는 일부 사람들도 있었으나 시간이 흘러 이제는 마스크 착용을 너무나 당연하게 하는 세상이 되었다. 과학의 발전과 사람들의 인식 개선이 진보한 것이다. 결국 원시시대부터 꾸준하게 전염병에 대한 대응 방법을 찾아낸 인간. 그러한 인간에게 새롭게 나타나는 또 다른 전염병.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인류가 겪어야 할 미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리들의 과거를 우선 올바로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점에서 많은 영향을 끼친 전염병의 역할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인간의 창의와 지식, 제도가 아무리 바뀌더라도 인간은 기생생물에게 취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인류의 출현 이전부터 있었을 각종 전염병은 앞으로도 인류와 함께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또한 과거에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질병은 인간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기본적 변수인 동시에 결정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윌리엄 H. 맥닐(2019),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 한울엠플러, p317>
최근 끝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COVID19의 미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영향을 주었던 전염병의 역사를 올바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최근 세계적으로 경제, 사회, 보건, 문화 흐름의 거대한 줄기를 바꾼 COVID19와 같은 전염병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할 듯하다.
필자가 여기서 제시한 주장은 아직 추측이나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윌리엄 H. 맥닐(2019),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 한울엠플러, p18>
역사학자로서 첫 도전이기에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의 주장이 검증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역사학자로서 명성이 높은 저자가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함을 덤덤히 보여주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한편 추측이나 가설에 불과하다는 저자의 주장은 역사 속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저자의 상상력이라는 옷을 입고 우리에게 전달된다. 옮긴이가 강조했듯이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에서는 역사의 구성 요소로서의 전염병이 아니라 전염병의 역사에 따라 인류의 변화를 해석해주고 있다. 처음엔 COVID19의 미래를 이해하고자 이 책을 찾아보긴 했지만, 저자가 새롭게 시도한 전염병의 역사를 일반 역사 안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바라보는 신선하고 새로운 시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워낙 촘촘하게 각 부분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보니 저자가 고백했던 추측이나 가설에 지나지 않는 주장이라는 설명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온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과 시대별 지도가 모두 책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점은 읽는 사람으로서 유의하며 읽고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을 대하는 개인적인 나의 태도이다.
지은이 : 윌리엄 H. 맥닐(William H. McNeill)
제목 : 전염병과 인류의 역사(Plagues and Peoples)
판사항 : 재판
옮긴이 : 허정
출판사 : 한울엠플러(주)
출간 연도 : 2019.12.20.
페이지 : 총 328면
Neil A Campbell, Lisa A Urry, Michael L. Cain, Steven A Wasserman, Peter V Minorsky, Jane B. Reece(2018), Biology 11th ed., Pearson
William J. Ripple, Robert L. Beschta(2011), Trophic cascades in Yellowstone: The first 15 years after wolf reintroduction, Biological Conservation 145 (2012) 205–213
유시민(2018), 역사의 역사, 돌베개 p13-17
위키피디아 아리스토텔레스 [동물의 역사] https://en.wikipedia.org/wiki/History_of_Animals
위키피디아 역사의 기원 https://en.wikipedia.org/wiki/History
제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독감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591373&cid=69584&categoryId=69584
제레드 다이아몬드(2014), 총, 균, 쇠. 문학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