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글씨 쓰기 과제를 통해 알게 된 남자아이들의 글씨 쓰기
장마가 슬금슬금 다가오는 6월 중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4개월쯤 되니 학교에서 주는 숙제가 조금씩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숙제가 힘든 건지 숙제는 힘들지 않은데 아이가 힘들어해서 숙제가 힘들어 보이는 건지 구별이 되지는 않지만 내(아빠)가 보기에 우리 아이에겐 조금 어려워 보일 때가 있다.
숙제하기 싫은 아이 마음과 그렇지 않아도 짧은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집중력이 만나면 작은 과제가 주어져도 아이가 숙제를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약 1시간. 나는 그걸 옆에서 지켜보다가 아이가 힘들어하면 달래면서 끝낼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기에 아이의 숙제가 끝날 때쯤엔 덩달아 같이 만세를 부르고 싶다.
그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뭐니 뭐니 해도 문장 바르게 써오기(바르게 글씨 쓰기 숙제).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이 주신 15개 문장이 적힌 학습지 1장과 빈칸으로 된 학습지 1장을 받아오면 아이는 집에서 빈 학습지에 또박또박 바르게 글씨를 써서 다시 가져가면 된다.
책상에 앉아 글씨 쓰기 숙제를 하고 있는 아이를 보니 내가 근무하던 고등학교의 남학생들이 떠올랐다. 여학생과 다르게 남학생의 글씨는 알아보기 힘든 글씨가 대부분이다. 어느 정도의 악필이냐면 선생님들끼리도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면 서로 보여주며 물어보기도 하고 정말 모르겠으면 글씨의 주인인 남학생을 불러 물어본다. 문제는 대부분 학생들이 자신이 쓴 글씨를 못 알아본다는 데 있다. 당시에는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글씨를 못쓰는 이유를 단순하게 어렸을 때 글씨를 많이 써보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보니 수많은 이유 중 몇 가지는 알게 되었다.
첫 번째, 남자아이들은 글씨 쓰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손으로 연필을 잡고 글씨 쓰는 일은 생각보다 가만히 않아서 오랜 시간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이다. 게다가 시각적인 자극에 민감한 남자아이들은 글씨 쓰는 일보다 공을 가지고 놀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일이 더 재밌다. 그러다 보니 글씨 쓰는 것에 흥미가 없고 빨리 끝내고 싶어 한다. 빨리 끝내려고 하다 보니 글씨는 대강대강 쓰게 되고 글씨를 쓰는 습관은 나쁜 상태로 굳어지기 마련이다. 찾아보니 이럴 때는 아이들이 평소 관심 있는 대상을 가지고 글씨 연습을 하게 하면 된다고 한다.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로봇 이름, 공룡 이름, 곤충 이름 등 말이다.
두 번째, 손가락을 섬세하게 움직이는 근육의 발달이 늦다.
손가락을 섬세하게 움직이는 근육은 글씨 쓸 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때 손가락을 작게 섬세하게 움직이는 근육을 소(작은) 근육이라 하는데 소근육 발달이 여자 아이들보다 남자아이들이 늦다고 한다. 소근육 발달이 느리면 연필을 천천히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이 어려워지고 천천히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이 어려워지면 글씨 모양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노력한 것에 비해 아이들의 글씨체는 쉽게 예뻐지지 않는다. 노력에 비해 글씨체가 예뻐지지 않으니 아이는 글씨를 쓰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싫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 도움 되는 것은 종이 접기나 작은 블록 놀이. 종이 접기나 작은 블록 놀이를 통해 손가락 소근육을 발달시켜 손가락을 섬세하게 움직이는 연습을 자꾸 하면 글씨 쓰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세 번째, 연필 잡는 손가락 모양이 잘 잡혀있지 않다.
어른들이 연필을 잡는 손 모양은 사실 제각각일 수 있고 글씨를 자신만의 필체로 잘 써나간다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아이들이 글씨를 처음 연습할 때 연필 잡는 손 모양은 정말 중요하다. 연필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손 모양은 손가락에 힘을 과도하게 유발하며 편안하게 글씨 쓰는데 방해를 한다. 그러니 아이가 처음 글씨 쓰기 연습을 한다면 가능하면 연필을 잡는 손 모양은 정석대로 가져가는 게 좋다. 아이가 연필 잡는 법에 어려움을 호소할 때는 점보 삼각 연필이 도움 된다. 실제 아이가 글씨 쓰기 연습을 힘들어하길래 동네 문방구에서 점보 삼각 연필을 사다 주었더니 잡기 편하다고 좋아했다. 나도 점보 삼각 연필을 잡아보니 연필 잡는 손 모양이 쉽게 나와 편하게 연필을 잡을 수 있었다.
네 번째, 글씨 연습과 학습을 분리시킨다.
아이는 글씨 연습할 때는 연필 잡는 법, 글씨 쓰는 방법 등을 익힌다. 하지만 학습할 때 글씨 모양과 연필 잡는 손 모양을 지적하게 되면 학습에 방해가 되므로 학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아이가 학습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만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 글씨 연습과 학습을 분리시켜주는 게 좋다고 한다. 글씨 연습은 별도로 하루에 20~30분 정도 하고 학습을 할 때는 글씨 모양이나 연필 잡는 법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 것이다. 대신 학습할 때 글씨 모양이 신경 쓰인다면 예쁘게 쓴 글씨에 대해서만 칭찬을 가끔(3~4일에 한두 번) 해주면 좋을 듯하다.
다섯 번째, 글씨체는 저학년에서 잡아주어야 한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의 학습량은 늘어나고 글씨 쓰는 법을 따로 연습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리고 글씨 쓰는 법은 습관처럼 굳어져 고치기가 더욱 어려워지므로 되도록 저학년일 때 글씨 연습을 하여 글씨체를 잡아주도록 해야 한다.
여섯 번째, 칭찬은 예쁜 글씨보다 노력하는 모습과 발전하는 모습에 해주어야 한다.
예쁜 글씨는 아이가 글씨 연습을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나오기 마련이다. 결국 이것도 시간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가 노력하는 것을 지속시킬 수 있는 칭찬을 해주어야 한다. 예쁜 글씨보다 아이가 노력하는 모습과 아이의 글씨가 발전하는 모습에 해주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우리 아이에게 해당되는 것은 첫 번째, 네 번째, 여섯 번째 이유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3월부터 내내 했던 글씨 쓰기 연습은 좀 질렸고, 다른 공부하다 너무 날림으로 쓴 글씨를 아빠가 지적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칭찬해주어야 하는 데 결과에만 칭찬을 해주었다. 아빠의 반성이 필요한 지점 같다.
오늘도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경필 쓰기 숙제를 내주셨다. 아이가 힘들어하더니 눈물을 찔끔 흘린다. 눈물이 난 아이를 안아서 가만가만 다독여주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쉬었다 하고 싶어 하면 쉬었다가 하게 해 준다. 다만 아이가 글씨 쓰기를 힘들어한다고 해서 부모가 먼저 포기하는 건 안된다. 이럴 때 가질 마음 가짐은 ‘느려도 괜찮아 포기하지 않고 약속한 시간 안에 해내기’ 15개의 짧은 문장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총 1시간. 아이 옆에서 기다리는 마음은 무겁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해서 옆에 앉아 책을 보면서 기다렸더니 어느새 아이가 스스로 마무리를 하였다.
아이가 힘들어할 때마다 이유를 찾아보고 고민해보지만 사실 기다려주어야 하고 아이가 겪고 깨달아야 하는 일이 태반이다. 하지만 세상의 일이 그렇듯이 그런 일을 겪으면서 오늘도 육아 휴직한 어른(나)은 부모로서 아이는 어른으로서 커가고 있다.
** 상단 이미지 Photo by Samuel Rios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