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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Aug 15. 2022

여름 방학 숙제.. (어려운) 그림일기!?

아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어떻게 쓰기로 했지? 어떻게 시작하기로 했지? 엄마. 나 어떻게 시작하기로 했어?

와이프: (당황하며) 엄마한테 이야기해주지 않았는데?

아이: (어쩔 줄 몰라하다가 결국 짜증을 내고 울음이 터진다.) 엉엉…ㅠㅠ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난 뒤 글씨 쓰기 연습을 하더니 7월부터 그림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초등학교 1학년 1학기에 그림일기 쓰는 것이 조금 빠른가? 생각했으나 아이에게 표현은 하지 못하고 지켜보고 있었더니 선생님이 이번 방학 숙제로 내어준 그림일기 쓰기를 하다 아이 감정이 폭발했다.


옆에서 지켜본 결과 아이가 그림일기를 쓰는데 조건이 다섯 가지가 있다. 세상에 글씨도 또박또박 쓰는 연습을 하는 아이들인데 조건이 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1. 날씨를 풀어서 써야 한다. (예: 해가 휴가 간 날, 구름이 화난 날 등등)

2. 접속사를 쓰면 안 된다. (예: 그러나, 그리고, 그런데 X)

3. 문장의 끝을 ‘~~ 다.’로 마무리해야 한다.

4. 관용어를 써야 한다. (예: 눈에 불을 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다. 등등)

5. 분량을 다 채워야 한다.


이 다섯 개의 조건을 채우면서 일기를 쓰다 보니 아이의 상상력은 제한되고 그림일기 쓰기는 고통의 일기 쓰기가 되어 버렸다. 심지어 방학 중 일주일에 1편은 독서 일기, 1편은 그림일기를 써야 하니 방학 중 일주일에 두 번이 고통의 날이 되어버렸다. 다섯 개의 조건을 천천히 살펴보니 나도 하기 힘든 조건이 많기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아이에게 내색하지 않고 아이 옆을 지켰다.

그러다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이면 옆에서 기다리는 나도 와이프도 같이 마음이 쓰여 도와주려 질문을 해보지만 마음껏 잘 쓰고 싶은 아이는 선생님이 제시한 조건이 만든 작은 새장 속에 생각이 갇혀버려 생각이 떠오르지 않나 보다.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아이는 일기장을 앞에 두고 몸부림을 치며 괴로워하다 울음이 터졌다. 울음이 터진 아이를 어르고 달래 보지만 그림일기 쓰는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아이는 울면서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마음이 조금 진정된 우는 아이를 안아 주기 위해 양팔을 벌려 아이를 향하자 힘들었던 아이는 냉큼 아빠 품에 안겨 마음을 마저 진정시켰다. 그런 아이에게 괜찮다고 조건을 다 맞추기 어려우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거라고 다독여 본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괜찮으니 우선 하고 싶은 대로 해보자고 해본다. 아빠의 다독임에 아이는 조그마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아빠를 꼭 끌어안는다. 다행이다.


부디 어려운 그림일기 쓰기로 우리 아이가 글쓰기에 마음을 닫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단 이미지 Photo by Green Chamele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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