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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Aug 25. 2022

방학 숙제를 잘 마무리하면.. 선물(?)

여름 방학 동안 아이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수학 4쪽, 영어 퀴즈 2개를 하기로 약속했다. 사실 아이가 주도적으로 하겠다고 약속했다기보다 부모가 70%의 의견을 내고 아이가 30% 정도의 의견을 내어 이야기해보고 적정선에서 타협을 본 공부량이었다. 와이프는 아이가 매일매일 약속한 공부량을 잘 마칠 수 있도록 체크표를 만들어 주었고 아이는 매일 자기가 한 공부를 형광펜으로 체크하였다. 처음으로 해보는 체크에 아이는 열심이었고 나는 그런 아이에게 매일 해야 할 공부량을 알려줘야 했다. 매일매일 알려주는 공부량에 아이는 점점 지쳐갔지만 알려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겠지 하며 매일매일 알려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체크표를 보았더니 맨 마지막에 조그마하게 [빛나는 하루 모두 성공이면 에버랜드 기념품 선물!!]이라 적혀 있는 걸 봤다. 아마 와이프가 방학 동안 아이가 공부를 끝까지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를 마련해주느라 이런 약속을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 학교에서도 칭찬 스티커 40개, 60개를 채우면 조그마한 선물을 해주기로 했었던 기억이 스치면서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이런저런 외적인 동기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이가 열심히 공부한 결과나 착하게 행동한 결과로 선물을 사주는 것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서 와이프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아이는 와이프와 신나서 한참 선물을 고르고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아이는 에버랜드 사파리 기념품점에서 만난 쌍안경이 가지고 싶다고 했고 와이프는 사파리 기념품점에서 쌍안경을 사줄지 아니면 그냥 인터넷에서 쌍안경을 사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옆에 붙어 앉아 아이와 와이프 셋이 모여 한참을 고민을 하다 선물을 어느 정도 고르고 나자 아이는 신나서 자기 방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려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와이프랑 나란히 앉아 있던 나는 선물에 대해 조심스레 와이프한테 이야기를 꺼냈다. 


나: 준형이 선물 사 주는 거 있잖아.. 공부 잘했다고 아니면 약속 잘 지켰다고 선물 사 주는 거.. 이번까지만 하고 다음에는 안 하면 안 될까? 공부 잘했다고 뭐 사주는 건.. 잘 모르겠어서 그래.. 


와이프가 이야기를 듣더니 잠시 생각에 빠졌다. 


나: 공부 잘하거나 열심히 하는 건 준형이한테 좋은 건데 그걸 꼭 선물까지 사줘야 하나 싶어서.. 선물이나 필요한 물건은 우리가 들어보고 필요하다 싶으면 사주면 될 것 같아.. 그리고 선물 받을 날은 많으니까. 생일도 있고,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등등 선물 줄 일은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자기는 어떻게 생각해?


와이프: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래~ 그럼 이번까지만 사주고, 이렇게 사주는 건 하지 말자!


다행히 와이프도 나의 의견에 동의해 주었고 아이의 선물은 기념일에만 사주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사실 꼭 필요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항상 아이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쉽지 않았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 있고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다행히 와이프는 흔쾌히 아이 교육에 대한 방향을 바꾸는 것에 동의해주었고 이야기는 잘 마무리되어 내심 고마웠다. 


수많은 교육 이론가들 또는 학습 코칭을 하는 사람들은 공부를 잘해서 또는 약속을 잘 지켜서 보상을 주는 것은 단기간 성과를 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아이를 성공에 이끌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렇기에 아이가 무언가 잘했을 때 선물을 주지 말라고 한다. 나중에는 아이가 선물(보상)을 가지고 거래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아이도 올해 초에 집안일을 하면 "아빠 뭐해줄 건데?" 또는 "엄마는 뭐해줄 건데?"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선물(보상)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건 선물을 주면서 아이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조금 더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길이기에 조금 더 섬세하고 정교하게 아이를 대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밖에 없는 내 아이의 부모이기에 남들과 무게가 같지 않음을 이해하고 천천히 내가 고민한 길을 오늘도 아이와 함께 걸어가야겠다. 부디 내가 선택한 길의 끝에 행복이 있길 기도해 본다. 


Photo by Glenn Carstens-Peter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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